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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1(2022)년 9월 12일
 

태양의 품속에서 영생하는 애국의 삶​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오늘 우리의 당원들과 근로자들속에는 누가 보건말건, 알아주건말건 묵묵히 자기가 맡은 초소에서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얼마전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는 나라일에 그처럼 바쁘신 속에서도 공훈도로관리공인 성간군도로보수관리대 구봉령가족소대장 김성녀녀성의 서거에 깊은 애도의 뜻을 표시하여 몸소 고인의 령전에 화환을 보내시였다.

구봉령이라는 지명과 함께 우리 인민들과 해외동포들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김성녀녀성,

그는 지금 우리곁에 없다. 하지만 그의 삶이 애국과 량심의 거울로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뚜렷이 새겨지게 된것은 과연 무엇때문인가.

지금으로부터 22년전 8월의 마지막날이였다.

한가정의 가장인 김성녀녀성은 이날도 함께 가족들과 아침일찍 구봉령마루에 올라 도로상태를 돌아보고 작업을 하고있었다.

오전시간도 퍼그나 흘러간 때 뜻밖에도 그는 혁명령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을 몸가까이 만나뵙게 되였다.

차에서 내리신 어버이장군님께서는 만면에 환한 미소를 담으시고 그들에게로 다가오시여 김성녀녀성과 가족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주시며 수고한다고 다정히 말씀하시였다.

김성녀녀성이 올리는 인사를 정답게 받아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잠시 그를 바라보시다가 거쿨진 그의 두손을 뜨겁게 잡으시고 어루만져주시며 목이 메여 흐느껴우는 그의 마음이 진정되기를 기다리시는듯 조용히 눈길을 돌리시여 굽이굽이 뻗어간 도로를 바라보시였다.

억척으로 다져진 로반이며 패인자리 한점없이 반듯하게 정리된 령길, 잘 째진 물홈이며 길옆에 곱게 피운 아름다운 꽃들…

이 모든것을 새기시려는듯 오래도록 바라보시던 그이께서는 김성녀녀성이 진정되자 그와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김성녀녀성과 이야기를 나누시는 과정에 그의 셋째딸이 중학교를 졸업하고 단발머리로 도로관리원이 되던 날 자작시를 지었다는 말을 들으시고는 그의 자작시도 들어주시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어리신 나이에 《배움의 천리길》을 걸어 조국으로 나오시던중 여기 구봉령마루에서 빼앗긴 조국산천을 굽어보시며 조국해방의 새날을 구상하신 뜻깊은 내용을 담고있는 이곳 유래비의 비문에 김성녀녀성이 곡을 붙여 노래를 지었다는 말을 들으시고는 그와 함께 가족들이 부르는 노래도 들어주시였다.

자작시랑송이 끝나자 제일먼저 박수를 쳐주시며 아주 잘 읊는다고, 자기 일터에 대한 자랑과 긍지감,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절대로 이런 시구절이 나올수 없다고 치하해주시고 노래가 끝났을 때에도 인자하게 웃으시며 제일먼저 박수를 쳐주시였다.

심심산속에서 온 가족이 오래동안 도로관리를 해오고있는 그들의 애국적소행을 높이 평가하해주시며 자신께서는 이런 훌륭한 인민들을 만난것이 더없이 기쁘다고 하시면서 령길에서 만난 기념으로 그들과 함께 기념사진도 찍어주신 어버이장군님.

그때로부터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김성녀녀성은 한모습으로 구봉령의 도로들을 알뜰히 관리하는데 자기의 모든 정력을 바치였으며 온 가족이 애국충정의 길을 이어가게 하였다.

김성녀녀성이 지닌 애국의 마음을 귀중히 여기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는 공훈도로관리공인 그를 영광의 대회장들에도 불러주시고 몇해전에는 은정어린 여든돐생일상까지 보내주시는 뜨거운 사랑을 베풀어주시였다.

이제는 구봉령의 령길들에서 김성녀녀성의 모습을 더는 볼수 없다.

그러나 은혜로운 태양의 품이 있어 그의 자손들은 애국을 깨끗한 량심으로 더욱 가슴깊이 간직하고 구봉령의 령길을 굳건히 지켜가고있다.


- 김성녀녀성과 그의 가족들(자료사진) -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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