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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1(2022)년 8월 14일
 

70여년과 7일간​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 만사람을 따뜻하고 너그럽게 대해주시고 넓은 도량으로 안아주시였기에 어제날 민족앞에 죄를 지었던 사람들까지도 수령님을 재생의 은인으로, 민족의 어버이로 따르며 조국과 인민을 위한 길에서 생을 빛내일수 있었다.》

조국과 민족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시며 한없이 넓은 도량과 비상한 감화력으로 온 겨레를 따뜻이 품에 안아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대해같은 사랑은 민족성원모두의 운명을 꽃펴주고 값높이 빛내여주는 영원한 생명의 젖줄기였다.

위대한 사랑속에 생을 빛내인 사람들중에는 자기가 걸어온 반공의 70여년과는 달리 인생의 새 길을 걸은 세계평화련합 총재였던 문선명선생도 있다.

과연 여기에는 어떤 사연이 깃들어있는것인가.

평안북도 정주태생인 문선명선생으로 말하면 미제가 일으킨 지난 조선전쟁시기 남조선으로 나가 《통일교》의 교주가 되여 반공을 웨치던 사람들중의 한사람이였다. 선생이 반공으로부터 련공련북에로 인생전환을 하게 된데는 민족대단합의 위대한 사상과 리념으로 온 민족을 안아주시는 절세위인들의 한없이 넓은 도량과 포옹력, 뜨거운 사랑과 은정이 있었기때문이다.

선생이 《통일교》의 이름을 《세계평화련합》으로 바꾼 후 자기 고향 정주를 방문하게 해달라는 요구를 공화국에 제기해왔을 때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대범한 아량으로 선생의 소청을 너그러이 받아주시였다.

이렇게 되여 문선명선생은 주체80(1991)년 11월 30일부터 12월 7일까지 평양을 방문하게 되였다.

그때 그의 나이는 어언 70고개를 넘긴 인생의 황혼기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선생의 평양방문에 아무런 불편도 없도록 특별비행기를 띄워주시고 일군들이 동포애의 정으로 따뜻이 맞이하도록 하시였으며 가족, 친척의 비행장마중으로부터 고향인 정주방문 등 은정어린 조치들을 취해주시였다.

그리고 일행이 떠나기 전에는 친히 문선명선생을 만나주시고 기념촬영과 오찬까지 함께 해주시였다.

자기의 불미스러운 과거를 탓하지 않으시고 한량없는 사랑과 믿음을 안겨주시는 어버이수령님의 숭고한 풍모에 감격한 선생은 수령님께서 자기의 고향방문신청을 받아주시여 평생의 소원을 풀어주신것만도 고맙기 이를데 없는데 친히 만나주기까지 하시니 너무도 감동되여 자신의 심정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자기가 살던 정주 고향집과 가족, 친척들모두가 건재한걸 보니 그동안 공화국을 비난한것이 얼마나 잘못된것인가를 뼈저리게 느꼈다고, 앞으로는 반공을 하지 않고 통일을 하는데 앞장서겠다고 진정으로 말씀올렸다.

이때부터 문선명선생은 조국통일과 민족대단결을 위한 인생의 새로운 길에 들어서게 되였다.

선생이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길에 나설수 있게 된 계기는 조국방문의 짧은 나날이였다. 선생이 7일간의 조국방문으로 70여년동안 추구한 반공을 부정하고 련공련북에로의 인생전환을 할수 있은것은 민족적량심을 가지고 조국통일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과거를 불문하고 민족을 위한 길에 나서도록 이끌어주시는 민족대단결의 구심점, 인간사랑의 대성인이신 어버이수령님위대한 장군님의 대해같은 사랑의 손길이 있었기때문이며 절세의 위인들의 천출위인상에 매혹되였기때문이였다.

주체81(1992)년 11월 선생은 어느 한 글에서 《남북통일을 위해서 모든 정당은 자기 리해관계를 떠나 초당적으로 협력》할수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의 민족대단합사상을 옹호하였으며 민족의 화해와 단합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다. 이에 대하여 남조선출판물들은 《평생을 반공운동에 바쳐온 그가 보여준 행동은 말그대로 엄청난 충격이였다.》고 놀라움을 표시하였다.

문선명선생에 대한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과 믿음은 그후에도 계속되였으며 그가 조국통일을 위한 사업에서 더 많은 일을 할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힘이 되였다.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들의 사랑그대로 문선명선생에게 조국과 겨레가 추억하는 영생하는 삶을 안겨주시였다.

주체101(2012)년 9월,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문선명선생이 병환으로 사망하였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못내 가슴아파하시며 평양에서 그를 추모하는 행사를 크게 하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을뿐아니라 나라의 통일을 위해 기울인 그의 노력을 잊지 않으시고 친히 유가족들에게 조전과 함께 자신의 명의로 된 화환도 보내주시였다. 그러시고는 그에게 조국통일상을 수여하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으며 서거 3년에 즈음하여 또다시 문선명선생의 유가족들에게 조전을 보내시였다.

절세위인들의 믿음과 은정속에 어지러운 과거와 결별하고 통일애국의 길을 걸은 문선명선생.

정녕 70여년과 7일간의 이야기는 오늘도 절세위인들의 뜨거운 광폭정치, 인덕정치의 뚜렷한 자욱으로 겨레의 심장속에 길이 남아있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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