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손전화홈페지열람기
날자별열람
 

서울상공에 울려퍼진 승리의 목소리​

 

(주소: 중국 장백조선족자치현, 이름: 리진숙으로 등록한 독자의 요청에 대한 회답 기사)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조국해방전쟁의 승리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숭고한 애국주의와 대중적영웅주의의 승리였고 불의와 반동에 대한 정의와 진보의 승리였으며 력사의 퇴물인 자본주의에 대한 인류의 미래인 사회주의의 승리였습니다.》

남조선을 강점한 첫날부터 침략전쟁도발준비를 다그쳐오던 미제와 남조선괴뢰도당은 마침내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불의에 공화국북반부를 반대하는 전면적인 무력침공을 개시하였다.

평화로운 이 땅에 전쟁의 불을 지른 침략자들은 전전선에서 발악적인 공세에 나섰지만 강철의 령장의 부르심을 받들고 떨쳐나선 영용한 인민군대의 반격앞에 넋을 잃고말았다.

72시간안에 조선을 정복할것이라고 호언장담하며 접어들었던 가증스러운 침략의 무리들.

허나 그 72시간안에 서울상공에 울려퍼진것은 무엇이였던가.



《…서울시를 포위하고 시내에 돌입하여 서울시를 해방시키기 위한 과감한 시가전을 전개하고있던 인민군부대들은 금 28일 3시 30분에 서울중심지대에 돌입하여 리승만괴뢰정부의 소위 중앙청을 비롯하여 …중요기관들을 차지하였다. …

28일 11시 30분에 이르러 …서울을 리승만매국역도들의 통치로부터 완전히 해방시키였다.

해방된 서울시민들은 인민군대를 열광적으로 환영하고있으며 영웅적인민군대의 각종 부대들은 패잔병들을 추격하여 남으로 진공을 계속하고있다.》

전쟁이 시작되여 드세찬 반공격으로 72시간만에 적의 아성인 서울을 해방하고 장악한 방송국에서 우리의 방송원이 전한 이 보도는 전세계를 들었다놓았다.

하다면 어떻게 되여 식민지통치의 아성이였던 서울의 한복판에서 조선중앙방송이 그렇듯 힘있게 울려퍼질수 있었던가.

1950년 6월 28일 새벽, 서울로 향한 도로를 따라 찦차 한대가 질풍같이 달리고있었다.

비가 억수로 퍼붓고 흙탕물이 도랑을 이루며 흘러 도로는 순탄치 않았으나 이 차가 지나갈 때면 모든 경비초소들과 도로교차점들에서는 최우선으로 차단봉을 열어주었고 남진하는 군용차들과 대렬들이 서로마다 길을 내주었다.



그 차가 바로 서울방송국을 장악할데 대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특별과업을 받은 조선중앙방송위원회 방송원 리상벽의 일행을 태운 차였다.

그렇게 달리고달려 서울방송국에 도착한 리상벽방송원 일행이 방송실을 찾아 방송국청사안을 돌아보는 순간 괴뢰군장교복을 입은 한놈이 갑자기 나타나 《야, 여기 스타디오(방송실)가 어디야!》하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아마 그놈은 우리 방송원일행을 서울방송국 직원들로 알고있은 모양이였다.

놈들이 최후발악을 하면서 마이크를 찾고있다는것을 안 리상벽방송원은 순간 품속에서 권총을 꺼내 그놈에게 섬멸의 총탄을 퍼부었다.

그때를 회상하며 후날 리상벽인민방송원은 그 권총이 바로 자기를 비롯한 방송원들의 신변안전을 걱정하시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수여해주신 권총이였다고, 그 총에는 어떤 정황속에서도 끝까지 살아 싸우는 조선의 기상, 조선의 목소리를 높이높이 울려가길 바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기대와 믿음이 어려있는 사랑의 무기였다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군 하였다.



이렇게 울려퍼진 우리 방송원들의 전시방송이였고 그들의 목소리는 곧 싸우는 조선의 목소리로 온 세상에 힘있게 울려퍼져갔다.

《28일 서울을 해방시킨 인민군 각 병종부대들은 적패잔병들을 추격하여 인천 대전방면으로 진격중에 있다.

이 진격행정에서 일부 부대들은 작 28일 17시경에 금포비행장을 점령하였다. …

인민군부대들의 맹렬한 공격에 의하여 동해안 강릉 삼척방면의 적 제8사, 춘천 홍천 가평방면의 적 제6사는 궤멸당하고 현재 무질서하게 패주중에 있다.》

《…미군항공부대들과 함대들은 …도시와 농촌들에 대하여 무차별적폭격과 함포사격을 감행하여 학교, 병원, 극장 등 문화시설들과 주민들의 주택들을 파괴하며 평화적로력에 종사하고있는 주민들과 부녀자들을 야수적으로 살해하고있다. …》

아침에도 울리고 저녁에도 울리며 인민군용사들과 후방인민들의 가슴마다에 승리의 신심과 원쑤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을 백배해준 전시방송원들의 목소리.

이는 곧 원쑤의 머리우에 퍼붓는 수천수만개의 위력한 폭탄과 같았고 지칠줄 모르는 전선원호의 힘으로 되였다.

당시 12살이였던 평양시 동대원구역 신흥2동에 사는 장춘옥로인은 지금도 그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한밤 자고나면 서울해방, 또 몇밤 자고나면 대전해방, 정말 전선의 소식을 전하는 방송원들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후방의 남녀로소가 모두 기뻐했지요. 그 기쁜 소식에 밤가는줄 모르고 끊어진 다리를 복구하고 밭을 갈고 씨를 뿌리였고 모두가 전선원호도 성심성의로 하였습니다.》

우리의 전승, 위대한 승리자의 명절인 7. 27은 이렇게 찾아왔다.

1953년 7월 27일 조선중앙방송은 드디여 조국해방전쟁의 마지막보도를 전했다.

《지구상에 그 어느 곳에서 어떠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막론하고 선량한 량심을 가진 사람들의 시선은 오늘 조선의 판문점에로 집중되였다.

조국해방전쟁의 3년은 조선인민이 간난신고를 극복하고 무비의 용감성과 영웅성을 시위한 3년이였으며 찬란한 승리로써 충만된 3년이였다. 조선전쟁은 우리 힘의 강대함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전승의 소식을 알리는 방송원들의 목소리가 승리의 7월의 하늘가에 높이 울려퍼진 그때로부터 예순아홉해가 흘렀다. 하지만 그때로부터 이 땅에서는 승리의 소식을 전하는 방송원들의 목소리가 그친적 없다.




위대한 수령을 대를 이어 높이 모시고 사는 인민, 수령의 사상과 령도를 충직하게 받들며 결사관철의 정신으로 실천해가는 불굴의 인민이 사는 내 조국의 하늘가에는 앞으로도 영원히 위대한 승리를 전하는 목소리가 끝없이 울려퍼져갈것이다.

본사기자 남 진

 

이전 제목   다음 제목

←되돌이 추천하기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