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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1(2022)년 8월 13일
 

한편의 미술작품에 깃든 이야기

 

- 유리(직업; 미술가, 주소; 유럽)독자의 요청에 대한 해답 -


한손에는 기관단총을 으스러지게 틀어쥐고 불뿜는 적의 화점을 향해 몸을 솟구치는 영웅전사의 불굴의 모습을 형상한 유화 《조국을 위하여》.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열여덟의 애젊은 가슴으로 적의 화구를 막은 리수복영웅을 형상한 이 미술작품은 화가 홍종원선생이 그린것이다.

주체43(1954)년 여름 홍종원선생은 어느 한 신문을 보다가 리수복영웅에 대한 기사를 읽게 되였다.

...

하나밖에 없는 조국을 위하여

둘도 없는 목숨이지만

나의 청춘을 바치는것처럼

그렇게 고귀한 생명, 아름다운 희망

위대한 행복이 또 어디 있으랴


조국수호정신이 맥박치는 한편의 시와 함께 피끓는 가슴으로 적의 화구를 막아 아군의 진격로를 열어놓은 영웅의 모습은 화가에게 우리 인민군용사들의 숭고한 정신세계를 뚜렷하게 보여줄수 있는 가장 전형적인 모습으로 안겨왔다.

그 모습을 화폭에 담으려는 강렬한 지향을 안고 홍종원선생은 그길로 배낭을 메고 리수복영웅이 최후를 마친 무명고지로 달려갔다.

영웅의 붉은 피가 스며있는 무명고지의 모든것을 직접 눈으로 보니 이름할수 없는 흥분으로 온몸이 달아올랐다.

영웅은 어떤 자세로 화점을 향해 몸을 날렸을가?

적화구를 쏘아보는 영웅의 얼굴표정은?

땅을 박차고 몸을 솟구칠 때 기관단총을 으스러지게 틀어잡은 영웅의 손과 억센 팔뚝의 긴장감, 온몸에서 뿜어져나오는 불타는 적개심을 어떻게 해야 진실하게 그려낼수 있을가?

사색의 심연에 빠진 그는 무명고지를 수십번이나 오르내리며 영웅이 최후의 순간에 몸을 벌떡 일으켰던 그 위치에 엎드려보기도 하고 일어나보기도 하면서 명화폭을 구상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불타던 나무들, 한줌한줌의 흙, 폭격과 포격에 부서진 바위들을 하나하나 살펴가며 습작하기를 그 몇번, 영웅의 얼굴모습과 비슷해보이는 군인들을 찾아 수십명이나 속사하였고 여러 형태의 구도잡기를 반복하여 작품을 만들어보았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최후순간의 긴박감, 화점으로 육박하는 운동감이 부족해보였다.

안타까움에 모대기던 그는 리수복영웅이 최후를 마친 시간에 다시 무명고지를 찾았다.

그랬더니 아아한 산발들과 푸름푸름 밝아오는 새벽하늘, 거무스레한 대지가 뚜렷한 대조를 이루며 그의 눈에 명화폭으로 안겨오는것이 아닌가.

그는 마침내 종래의 원형구도에서 벗어나 대각선의 구도를 잡았다.

대각선으로 올리뻗은 산릉선과 적의 화점을 향하여 내달리려고 금시 몸을 솟구치는 불굴의 용사, 두발로 대지를 힘있게 디디고 오른손으로 기관단총을 억세게 틀어잡고 적의 화구를 노려보는 영웅의 모습이 또다시 눈앞에 생생히 떠오르는것만 같았다.

그는 번개같이 다시 작품초안을 그렸다.

마침내 그림이 완성되였을 때 사람들은 훌륭한 작품이 태여났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태여난 유화 《조국을 위하여》는 주체44(1955)년에 공화국에서 진행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1등으로 입선되였다.

지금 공화국의 일터와 학교마다 걸려있는 유화 《조국을 위하여》는 홍종원선생이 주체48(1959)년에 다시 그린 그림이다.

홍종원선생이 유화를 다시 고쳐그릴 생각을 가지게 된것은 주체47(1958)년에 위대한 수령님께서와 위대한 장군님께서 리수복영웅의 고향집을 찾아주시였다는 감동적인 소식에 접한 후였다.

그는 리수복영웅의 고향집에 가보지 못했던 자신을 후회하였다.

영웅의 심장속에 간직된 조국애, 고향에 대한 열렬한 사랑의 감정이 어떻게 축적되였는가를 미처 다 헤아려보지 못하고 너무 서둘러 붓을 든 자책에 잠겨있던 그는 그림을 다시 그릴것을 결심하고 리수복영웅의 고향집이 자리잡은 순천을 찾았다.

거기에서 그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큰 충격을 받아안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쟁이 끝난지 얼마후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의 영웅관을 찾으셨을 때 리수복영웅의 사진앞에서 오래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하시다가 학생복을 입은 사진이 아니라 군복을 입은 사진으로 형상하도록 하신 이야기, 고향집을 찾아주시였을 때 영웅이 공부하던 방에도 몸소 들어가보시고 그의 영웅적위훈을 교과서에도 써내라고 교시하시였다는 이야기, 위대한 장군님께서 같이 온 학급동무들과 함께 영웅이 즐겨읊던 장편서사시 《백두산》이 적혀있는 책도 보아주신 이야기, 집주변을 깨끗이 정리해주시고 영웅을 깊이 추억하시며 사랑을 베푸시였다는 이야기…

사연깊은 뜨락을 오래도록 거닐고 동구밖 멀리까지 나와 영웅의 고향집을 다시 바라볼수록 영웅의 성장의 뿌리가 무엇이고 값높은 위훈의 원천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더욱 깊이 체험하게 되였다.

(무명고지의 한치땅도 영웅에게는 곧 고향집뜨락이였고 조국이였으며 수령님께서 안겨주신 삶의 터전이였다. 그래서 조국을 위하여 청춘을 바치는것처럼 그렇게 고귀한 생명, 아름다운 희망, 위대한 행복이 또 어디 있으랴 하고 자기의 심정을 격조높이 시로 표현한것이 아닌가.)

이 류다른 체험을 안고 그는 또다시 무명고지를 찾았다.

영웅이 최후의 순간에 내린 돌격구령이 다시금 귀전에 메아리쳐오는듯 하였고 증오로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방불하게 눈앞에서 얼른거리였다.

비로소 그는 첫 그림에서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가를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조국수호전에로 불러일으키는 영웅의 돌격구령이 오늘도 래일도 계속 메아리쳐나오게 해야 한다. 그 숭고한 넋의 메아리가 후손들의 심장을 쾅쾅 울리게! 이 그림은 마땅히 영웅이 영웅을 계속 낳게 하는 화폭으로 되여야 한다. 그러자면… 그러자면 증오로 서리발치는 그의 눈빛에서도, 근엄한 얼굴표정과 기관단총을 억세게 틀어쥔 저 팔뚝에서도, 힘있게 땅을 박차는 저 다리에서도 돌격구령이 세차게 뿜어져나와야 한다.)

화폭구성은 본래대로 하고 어두운 화면을 더 밝고 대조적으로 하면서 새벽노을속에 영웅이 솟구치게 하였다. 화점에서 나오는 불줄기의 섬광이 반사되여 번뜩이는 영웅의 눈에서 쏟아져나오는 증오가 그대로 돌격구령으로 느껴지게, 온몸에서 뿜어져나오는 원쑤격멸의 기상이 그대로 진격의 구령으로 메아리치게 하고싶은 충동에 휩싸여 그는 붓을 달렸다.

이렇게 되여 그는 원작의 미흡한 부분들을 고쳐 다시 그린 유화 《조국을 위하여》를 내놓게 되였다.

주체54(1965)년 3월 조선미술박물관을 찾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홍종원선생이 다시 그린 유화 《조국을 위하여》를 보시고 잘 그렸다고 하시며 이 그림을 군인들의 병실에도 걸어놓게 할데 대한 분에 넘치는 치하의 교시를 주시였다.

하나밖에 없는 조국을 위하여 둘도 없는 청춘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바쳐야 하는가를 말없이 가르쳐주는것으로 하여 년대와 년대를 이어오며 명화폭으로 길이 전해지고있는 유화 《조국을 위하여》.

오늘도 이 명화를 보며 새 세대들은 인민군용사들이 발휘한 불굴의 정신을 피줄기로 넘겨받아 사회주의조국을 목숨바쳐 지켜갈 조국수호의 맹약을 굳게 다지고있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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