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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1(2022)년 7월 11일
 

인민의 어버이의 무한한 인정의 세계

 

영원한 우리 수령 김일성동지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온 나라 인민의 가슴에 열화같은 흠모의 정이 더욱 뜨겁게 끓어번지는 7월이다.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지극히도 인민을 사랑해주신 어버이수령님의 친근하고 인자하신 모습을 세월이 흐르고 강산이 천만년 변해도 우리는 잊을수 없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는 고결한 인품과 덕망을 지니신 위대한 인간이시였다.》

인민을 위한 헌신의 길에 어버이수령님께서 남기신 눈물겨운 하많은 이야기들중에는 해방직후의 어느날 한 할머니를 위해 기울이신 사랑의 이야기도 있다.

어느 한 시장에서였다.

그날 어버이수령님께서 부관만 데리고 시장을 돌아보시는데 때는 파장무렵이여서 사람이 얼마 없었다.

싸전, 포목전, 어물전을 비롯하여 시장의 여러곳을 일일이 돌아보시면서 수요와 가격 등 인민생활과 관련된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뜻밖의 일에 접하게 되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을 미처 알아뵙지 못한 웬 할머니가 수령님앞을 막아나서며 풋당콩을 사달라고 하였던것이다.

보매 장사라고는 통 해보지 못한 순박한 할머니같았는데 앞에는 풋당콩이 든 큼직한 자루가 놓여있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풋당콩꼬투리를 몇개 집어드시고 살펴보시며 값을 물으시였다.

할머니는 값을 부르더니 눅게 팔겠으니 어서 사가시라고 하면서 많이 담아서 흘러내리는 풋당콩을 자꾸만 되박우에 덧얹어놓는것이였다.

그러는 할머니에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할머니, 풋당콩이 잘 팔리지 않는 모양입니다라고 하시며 한되박 사겠다고 하시였다.

할머니옆에는 나어린 처녀애가 오도카니 앉아있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애에게 눈길을 주시며 손녀인가고, 왜 손녀애까지 데리고나왔는가고 물으시였다.

할머니는 한숨을 지으며 말씀올리였다.

시장이 무슨 좋은데라고 앨 데리고나오겠수. 치마가 없다고 학교에 못 가겠다 해서 풋당콩을 팔아 해주마 했더니 저렇게 따라나왔수다래. 그런데 풋당콩이 팔려야지요.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못내 안색을 흐리시며 이제 조금만 참으시라고, 나라가 해방되였으니 이제 다 잘살게 된다고 말씀하시였다.

저애 치마감이나 하나 끊게 이 풋당콩을 다 사주시우다.

할머니는 경황없이 졸랐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러는 할머니에게 할머니, 이 풋당콩이야 집에서 맛이나 보려고 터밭에 몇평 심었겠는데 내가 다 사가면 집에서는 애들에게 풋당콩맛도 못 보이지 않겠습니까, 나는 한되박만 사겠습니다라고 하시면서 값을 치르시였다.

할머니와 헤여지기에 앞서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 돈으로 저애 치마감을 끊으라고, 앞으로는 할머니 같으신분들이 애들옷때문에 이렇게 고생하시는 일이 없을것이라고 하시였다.

돈을 세여보던 할머니는 그만 굳어졌다. 자기가 엄청나게 많은 돈을 받았기때문이였다.

우리 인민모두가 꿈결에도 잊지 못하는 어버이수령님의 인정의 세계는 이처럼 한없이 뜨겁고 다심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그날의 그 교시가 오늘은 빛나는 현실로 꽃펴나 우리 공화국에서는 그 어떤 조건과 환경에서도 자라나는 후대들에게 새 교복을 안겨주는 사업이 당과 국가의 일관한 정책, 영원한 국책으로 되고있으니 절세위인들의 하늘같은 은덕에 우리 인민들은 고마움의 인사를 삼가 드리고있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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