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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1(2022)년 6월 24일
 

분교가 생겨나게 된 사연​

 

우리 공화국에서 아이들은 나라의 왕으로 떠받들리우며 마음껏 배우고 고운 꿈과 희망을 활짝 꽃피우고있다.

내 조국의 자랑찬 이 현실은 어린이들과 학생소년들을 억만금의 금은보화에도 비길수 없는 귀중한 보배로, 희망과 미래의 전부로 여기시며 아이들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열화와 같은 정과 사랑에 그 뿌리를 두고있다.

그에 대한 하많은 사실들가운데는 분교가 생겨나게 된 이야기도 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후대들을 위해서는 아까울것이 없습니다.

해방의 새봄을 맞이한 조국땅이 끝없는 환희와 기쁨으로 설레이고 새 생활창조에 일떠선 인민들의 힘찬 노래소리가 온 강산에 울려퍼지던 주체36(1947)년 9월말 어느날이였다.

인민의 새 나라를 세우시려 끊임없는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두메산골 양덕땅에 찾아오시여 사랑의 자욱을 새기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새 조선건설에 이바지할 일념을 안고 이곳 양덕군의 인민들이 자체로 지은 발전소를 돌아보시고 큰길가로 나오실 때였다.

길가에서 몇명의 학생들이 한데 몰켜 서성거리고있었다.

이것을 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에게로 다가가시여 무엇을 하는가고 물으시였다.

함께 공부하는 동무가 앞산에 있는 학교에서 내려오지 않아 기다리고있다는 그들의 말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두손을 허리에 얹으시고 그리 높지 않은 산중턱에 성벽으로 둘러싸여있는 학교건물을 한동안 바라보시였다.

양암성이라고 일러오는 그 성안에는 옛날부터 향교가 있었는데 마을에 새 학교를 지을 때까지 그 향교건물을 림시교사로 리용하고있었다. 그들은 모두 이 학교학생들이였는데 집이 멀어 혼자 떨어지면 갈수 없기때문에 공부가 끝나면 이렇게 서로 기다렸다가 모두 함께 가군 하였던것이다.

학생들의 말을 통하여 이러한 사연을 알게 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근심어린 안색으로 제일 먼데서 다니는 학생의 집이 여기서 몇리나 되는가고 다시 물으시였다.

그 물으심에 한 학생이 아호비령밑에서 다니는 동무도 있는데 거리가 약 40리가량 된다고 말씀드렸다.

허리에 흰구름을 두르고 저멀리 아득히 솟은 아호비령쪽으로 눈길을 주신채 40리나 되는 곳에 다닌단 말이지, 너무 멀구만라고 누구에게라없이 조용히 되뇌이시던 그이께서는 그 먼데서 계속 통학하는가, 비와 눈이 많이 오는 때는 어떻게 다니는가, 학교로 오가는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가 등을 하나하나 물으시였다.

그에 대한 학생들의 말을 다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말 학교가 멀어 공부하기 힘들겠다고 걱정하시였다.

그러자 한 학생이 한발 나서며 《일없습니다. 해방전에는 학교에 가고싶어도 학교가 없어 가지 못했는데 지금은 장군님께서 학교를 세워주시여 우리같은 농사군의 아이들도 마음껏 공부할수 있게 되였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는 학교가 멀어도 공부할수 있으니 좋습니다.》라고 당돌하게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기특하신듯 그의 잔등을 가볍게 두드려주시며 그렇게 생각하고 학교에 다니면 공부를 잘할수 있다고, 너희들의 말을 들으니 나도 좀 마음이 놓인다고 하시였다. 하지만 그이의 안광에는 더 짙은 그늘이 비끼였다.

한동안 아무 말씀없이 학생들의 옷차림을 바로잡아주시던 그이께서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앞으로 면소재지에는 중학교를 하나씩 내오도록 하자고, 여기와 같이 산간지대에서 10리이상 먼데서 다니는 학생들이 있는 곳에는 분교를 내오도록 하자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나라가 해방된지 두해밖에 되지 않아 모든것이 부족하고 하여야 할 일도 많지만 무엇보다먼저 여기 실정과 같은 모든 곳에 하루빨리 분교를 내오도록 하여 우리 어린이들이 먼데서 학교를 다니며 공부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거듭 강조하시였다.

잠시 동안을 두시였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지난날 결사의 각오를 품고 천신만고를 다 겪으며 일제놈들과 피흘려 싸워 조국의 해방을 이룩한것도, 지금 모든것이 부족한 속에서도 부강한 새 조국을 건설하는것도 구경은 후대들을 위한것이 아닌가고 하시면서 후대교육사업을 위해서는 하나도 아낄것이 없다고 힘주어 교시하시였다.

후대교육에 대한 그이의 숭고한 뜻이 어린 교시를 받아안으며 일군들은 조국땅 그 어디에나 학교와 분교가 새로 일떠서 우리의 어린이들이 아무 근심걱정없이 행복하게 배우며 자라날 창창한 미래를 그려보았다.

분교!

참으로 그것은 중중첩첩 시련이 가로놓였던 건국의 첫새벽에 그 누구도 생각할수 없었던 문제였다.

오직 후대들에 대한 사랑을 천품으로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만이 구상하시고 실현하실수 있는 뜨거운 사랑의 배움터였다.

그때로부터 우리 공화국에는 분교가 많이 생겨났으며 오늘은 외진 섬마을이나 림산마을을 비롯하여 그 어디에나 학생들이 있는 곳이면 사랑의 분교가 배움의 문을 활짝 열고 그들을 반겨맞고있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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