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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1(2022)년 6월 13일
 

태양의 품속에서 영생하는 항일혁명투사들(1)​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항일혁명투사들은 간악무도한 강도 일제와 맞서 싸우는 어려운 조건에서도 혁명승리에 대한 드놀지 않는 신념을 지니고 모진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며 굴함없이 투쟁하였기에 조국해방의 날을 맞이할수 있었으며 값높은 삶을 빛내일수 있었습니다.》

지난 4월 조선인민혁명군창건 90돐에 즈음하여 대성산혁명렬사릉을 찾으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는 조선혁명의 개척기에 위대한 수령님을 단결의 중심, 령도의 중심으로 받들어모시고 혈전만리를 헤치며 우리 혁명의 만년재보인 백두의 혁명전통을 창조한 항일선렬들의 공적과 만고의 항쟁사를 경건히 회억하시면서 김책동지, 안길동지, 류경수동지, 최현동지의 반신상에 꽃송이를 진정하시고 혁명렬사들에게 숭고한 경의를 드리시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몸소 꽃송이를 진정하시고 숭고한 경의를 드리신 항일혁명투사들.

그들의 삶은 과연 어떠하였기에 우리 원수님 그토록 잊지 못해하시며 영생의 언덕에 높이 내세워주시였는가.

그들의 생은 우리 후대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주고있는가.


충신의 귀감 김책동지


김책동지는 일편단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우리 민족의 태양으로 높이 모시고 항일무장투쟁과 해방후 새 조국건설의 초행길도 함께 헤치였으며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시기에도 수령님을 받들어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충실하였던 위대한 수령님의 가장 가까운 혁명전우, 혁명동지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통일단결의 중심, 령도의 중심으로 높이 받들어모시고 전진하는 조선혁명의 새로운 격류속에서 혁명의 참된 진리를 체득한 김책동지는 주체16(1927)년부터 혁명에 참가하여 반일지하단체에서 투쟁하다가 그해 가을 일제경찰에 체포되여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여러해동안 감옥생활을 하였다. 그후에도 적들에게 체포되여 중국의 길림 등지에서 여러번 감옥생활을 하였으나 그때마다 혁명적절개를 지켜 굴함없이 싸웠다.

김책동지는 주체21(1932)년에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한 후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전략전술적방침을 높이 받들고 중국 동북지방의 넓은 지역에서 적극적인 정치활동을 벌려 인민들에게 혁명의 진리를 심어주며 항일무장투쟁의 대중적지반을 확대해나갔다.

특히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체25(1936)년 5월 조국광복회를 창건하신 감격적인 소식에 접한 후 북만땅에서 조국광복회의 기치아래 광범한 대중을 묶어세우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리였고 령활한 군사행동으로 일제침략자들에게 련속 심대한 타격을 안기여 조선인민혁명군의 필승불패의 위력을 시위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이 이룩된 후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새 조국건설로선을 받들고 정력적으로 활동한 김책동지는 함경남도에 파견되여 사업하던 시기 종파분자들이 《서울중앙》이니 뭐니 하면서 날뛰자 조선혁명가들과 전체 인민들의 한결같은 지향을 담은 충성의 구호 《우리 민족의 영명한 령도자 김일성장군 만세!》를 함흥시안의 곳곳에 크게 내붙이고 종파분자들의 책동을 준렬히 폭로단죄하면서 인민들을 위대한 수령님의 두리에 튼튼히 묶어세워나갔다.

김책동지는 평양학원 초대원장으로,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와 북조선인민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창건된 후에는 내각부수상 겸 산업상으로 일하면서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전사는 수령님의 교시를 한치의 드팀도 없이 무조건 제때에 철저히 관철하여야 한다는것을 실천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관철하는 사업에서 매우 엄격하고 원칙성이 강하면서도 혁명동지들과 인민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혁명적이며 인민적인 품성으로 하여 인민들의 존경을 받은 김책동지는 조국해방전쟁시기 군사위원회 위원 및 전선사령관으로서 위대한 수령님의 독창적인 전략전술적방침을 높이 받들고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적극 투쟁하였다.

김책동지는 비록 대학공부도 못하고 경제와 기술도 배운것이 없으며 나라의 형편이 오늘의 경제적조건과는 대비조차 할수 없이 어려웠지만 사소한 리유와 구실도 없이 신념화된 충실성 하나만을 가지고 맡겨진 중책을 훌륭히 감당해나갔다.

하기에 언제인가 김책동지의 한생에 대하여 이야기하시는 기회에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혁명가에게 있어서 자기 수령에 대한 충실성은 시작부터 끝까지 한결같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김책동지의 충실성은 항일혁명투쟁시기는 물론 해방후 새 조국건설을 위한 어려운 나날에도, 준엄하였던 조국해방전쟁의 불길속에서도 드팀이 없고 변함이 없었다고 교시하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책동지의 서거에 못내 가슴아파하시면서 전쟁의 나날에는 원쑤들이 그의 시신에 못된짓을 하지 못하도록 특별대책도 취해주시였으며 해방후 공화국창건을 기념하여 그와 함께 찍으시였던 사진을 평생토록 자신의 금고속에 소중히 보관해오시였다.

정녕 김책동지의 한생은 혁명가들이 수령이 제시한 로선과 정책, 명령지시를 어떻게 관철하여야 하는가를 산모범으로 보여주었고 신념화된 충실성만 지니면 그 어떤 난관이 앞을 가로막아도 점령 못할 요새가 없다는것을 실천행동으로 깨우쳐주었다.

김책동지를 그토록 잊지 못해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책시, 김책제철련합기업소, 김책공업종합대학 등으로 도시와 공장, 인민군부대와 학교명칭을 김책동지의 이름으로 부르도록 해주시였으며 주체57(1968)년에는 공화국영웅칭호를, 주체79(1990)년 8월에는 조국통일상을 수여해주시고 김책시에 그의 동상과 당창건 30돐을 맞으며 대성산혁명렬사릉에 반신상을 세워 영생의 모습으로 빛내여주시였다. (계속)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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