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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1(2022)년 5월 12일
 

대학의 이름을 불러볼 때면

 

풍치수려한 대동강기슭에는 아름다운 대동강의 경치와 조화를 이루며 일떠선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이 있다.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

조용히 대학의 이름을 외워볼수록 대학명칭에 깃든 뜨거운 사연과 함께 절세위인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속에 꽉 차넘친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의 뜨거운 은정속에 우리 대학의 새 교사가 웅장화려하게 일떠선 주체95(2006)년 5월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새로 일떠선 대학교사를 돌아보시려고 몸소 우리 대학을 찾아주시였다.

꿈결에도 뵙고싶던 위대한 장군님을 대학교정에 모시게 된 우리 대학 교직원, 학생들의 마음속에는 새로 건설된 음악대학에 장군님의 존함을 모시고싶은 간절한 소망이 자리잡고있었다.

대학 연혁소개실을 돌아보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문득 작곡가 김원균선생의 사진앞에서 걸음을 멈추시고 한동안 생각깊은 시선으로 사진을 바라보시다가 김원균은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와 《애국가》를 지은 사람이라고 뜨겁게 회고하시면서 새로 건설된 음악대학에 그의 이름을 달아주자고 교시하시였다.

그때 위대한 장군님의 교시를 받아안고 모두가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물론 김원균선생은 우리 나라 음악사에 뚜렷한 자욱을 새긴 유명한 작곡가이지만 누구도 새로 완공된 대학에 그의 이름을 달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못하였다.

나의 첫 사랑은 음악이라고 하시며 일찍부터 문학예술전반사업을 현명하게 령도하시여 우리 조국을 20세기 문예부흥의 나라로 전변시키고 주체예술의 대화원을 가꾸어주신 음악의 거장이신 위대한 장군님의 존함을 대학에 모시는것은 대학교직원들만이 아닌 온 나라 전체 인민의 한결같은 소망이였다.

그래서인지 위대한 장군님께서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평양음악대학을 새롭게 건설하도록 해주신 때로부터 대학에 그이의 존함을 모실것을 요청하는 편지와 전화들이 해당 기관들에 끊임없이 올라오고있었다.

한 일군이 그러한 사실에 대해 보고드리면서 온 나라 전체 인민이 대학에 위대한 장군님의 존함을 모시도록 하여줄것을 한결같이 소원하고있는데 대하여 말씀올렸으며 음악대학 학장도, 동행하던 일군들모두도 꼭 그렇게 하여주실것을 간청드리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고맙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는 음악대학명칭에 리면상선생의 이름을 달겠는가, 김원균선생의 이름을 달겠는가 하는것을 많이 생각해보다가 아무래도 수령을 칭송하고 《애국가》를 제일 선참으로 창작한 김원균선생의 이름을 다는것이 더 의의가 있다고 보았다고 뜻깊은 교시를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와 《애국가》를 창작한 김원균선생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담아 장군님께서는 평양음악대학명칭에 김원균선생의 이름을 다는것은 나라의 음악전통과 력사를 보여주는데도 의의가 있다고 하시면서 평양음악대학에 김원균선생의 이름을 다는 조건에서 대학에 그의 반신상을 세워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 지금도 대학명칭을 되새겨볼 때마다 우리들은 한없이 겸허하신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끝없는 매혹과 함께 위대한 장군님의 뜻대로 훌륭한 주체음악예술인재들을 더 많이 키워낼 불같은 결의를 다진다.


-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에 세워진 작곡가 김원균선생의 반신상 -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 교원 조춘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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