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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1(2022)년 5월 15일
 

어버이수령님의 《휴식일》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오늘 이 땅우에 일떠선 불패의 사회주의강국과 승승장구하는 주체혁명위업은 수령님께서 인민이라는 대지우에 씨앗을 뿌리고 한평생 가꾸어 마련하신 고귀한 결실이다.》

무릇 휴식일이라고 하면 긴장한 사업과정의 피로를 풀고 생활을 즐기는것으로 하여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쉬는 날로 여겨지고있다.

그래서 누구나 일요일과 명절날을 기다린다.

인간생활에서 기쁘고 즐거운 날로 되여있는 이 휴식일이 우리 수령님의 한평생에 어떻게 흘렀던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국해방을 이룩하신 때로부터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해였던 주체83(1994)년 7월 8일까지 무려 2 530여일의 일요일과 많은 명절날들을 인민을 위해 고스란히 바치시였다.

근 7년세월과 맞먹는 2 530여일의 일요일과 명절날들,

그 하루하루마다에 우리 수령님께서 인민을 위해 남모르는 헌신의 낮과 밤을 이어가시던 거룩한 자욱자욱이 얼마나 눈물겹게 새겨져있고 이 나라 천만자식들을 위해 바치신 위대한 어버이의 성스러운 혁명생애가 얼마나 소중히 담겨져있는것인가.

어느해 일요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침일찍 한 일군을 부르시여 강서와 룡강, 온천지구의 몇개 단위를 돌아보자고 하시였다.

일군은 선뜻 대답을 드릴수 없었다.

며칠째 계속 밤늦게까지 일을 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잠시라도 피곤을 푸셨으면 하는 생각이 앞섰기때문이였다.

그래서 일군은 위대한 수령님께 오늘은 일요일인데 오전만이라도 좀 쉬시고 오후에 떠났으면 하는 심정을 말씀드렸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을 다정히 바라보시며 내가 언제 일요일이라고 하여 집에 있어본 일이 있습니까, 여느때는 일이 바빠 현지에 자주 나가지 못해도 일요일에 가까운 곳에라도 나가 현실을 료해하고 인민들도 만나보고싶습니다, 나에게 이이상 더 만족한 일요일은 없습니다, 이게 내 휴식입니다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이것이 우리 수령님의 일요일이였고 휴식날이였다.

바로 그 일요일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식사도 미루시고 청산리와 옥도리를 비롯한 여러 단위들을 찾아 끊임없는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며 온 하루 인민들속에 계시였다.

밤에는 또 밤대로 그해 당창건기념일에 즈음하여 일군들앞에서 하실 강의 《우리 나라 민주주의혁명과 사회주의혁명의 몇가지 경험에 대하여》를 준비하시느라 새날이 밝을 때까지 정력적으로 사업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의 한평생의 그 눈물겨운 휴식일에는 항일의 혈전만리길에서 젖은 행전을 말리울새도 없이 건국의 초행길을 헤쳐가시던 새벽길도 있고 전화의 나날에 이어가신 잊지못할 현지지도의 길도 있다.

우리 인민을 더 잘살게 하시기 위해 찬눈비를 맞으시며 넘고넘으시던 수많은 고개와 험한 령길들에 새겨진 가슴뜨거운 이야기들도 있고 생애의 마지막시기였던 주체83(1994)년 6월 19일 온천군 금당협동농장을 찾으시여 걸으시던 포전길도 있다.

이 세상에 정치가들은 많아도 자신을 인민의 복무자로 여기며 이렇듯 인민의 행복을 위해 수천수백일의 휴식일을 바친 위인이 과연 있었던가.

정녕 우리 수령님께 있어서 한평생의 그 2 530여일의 일요일과 명절날은 인민의 위대한 어버이에게서만 찾아볼수 있는 인민사랑의 휴식 아닌 휴식일, 평범한 로동일이였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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