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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1(2022)년 3월 9일
 

관록있는 체육단으로 발전하기까지 (1)

 

- 모란봉편집사 기자와 압록강체육단 부단장이 나눈 대담 -


우리 공화국의 압록강체육단은 국제경기들에서 우승의 영예를 떨친 체육인들을 수많이 배출한것으로 하여 국내뿐아니라 세계체육계에도 널리 알려진 관록있는 체육단이다.

얼마전 압록강체육단을 찾은 우리는 이곳 부단장과 체육단의 발전력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자: 압록강체육단은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조직된 체육단이 아닌가?

부단장: 그렇다. 우리 압록강체육단은 공화국의 체육단들중에서 력사가 제일 오래다.

그와 함께 체육부문에서 《첫》이라는 말을 제일 많이 붙일수 있는 긍지와 자랑도 가지고있다.

위대한 장군님의 첫 현지지도사적이 깃든 체육단, 체육부문에서 첫 김일성상계관인을 배출한 체육단, 체육부문에서 첫 공화국영웅을 배출한 체육단, 우리 나라에서 첫 인민체육인과 첫 공훈체육인을 배출한 체육단, 체육부문에서 첫 3대혁명붉은기를 쟁취한 체육단, 체육부문에서 첫 2중올림픽금메달수상자를 배출한 체육단…

기자: 정말 체육단에 대한 긍지와 자랑이 남다르리라고 본다.

부단장: 위대한 장군님께서 력사가 있는 체육단이라고, 일류급체육단으로서 우리 나라 체육계의 기둥이라고 높이 내세워주시였던 우리 체육단에는 이밖에도 올림픽경기대회 금메달수상자가 제일 많은 체육단,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수상자가 많은 체육단, 체육부문에서 영웅이 많은 체육단으로서의 영예도 있다.

기자: 과시 압록강체육단은 우리 공화국의 관록있는 체육단이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되여 압록강체육단이 이렇듯 훌륭한 전통을 가진 체육단으로 될수 있었는지 몹시 알고싶어한다. 그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으면 한다.

부단장: 그것은 전적으로 절세위인들의 세심한 보살피심과 령도의 손길이 있었기때문이다.

우리 압록강체육단의 75년의 발전사에는 위대한 수령님들과 경애하는 원수님의 령도의 자욱이 뜨겁게 어려있다.

해방된 해 11월 1일 체육인들의 첫 조직인 북조선체육동맹을 무어주시고 다음해 10월에는 력사적인 첫 체육인대회를 마련해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나라일에 그토록 바쁘신 속에서도 주체36(1947)년 여름에 진행된 제1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하고 돌아온 축구, 롱구선수단성원들을 몸소 만나주시고 축구선수들과 롱구선수들로 상설적인 체육단을 조직하도록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이렇게 되여 주체36(1947)년 9월 19일 우리 나라에서 내무국체육단이 태여나게 되였는데 그 체육단이 바로 오늘의 우리 압록강체육단이다.

기자: 그후 체육단은 민족의 존엄과 기상을 떨치는 체육을 하루빨리 발전시킬 구상을 지니신 어버이수령님의 각별한 믿음과 기대속에 주체44(1955)년 12월 내무성《번개》체육단(당시)으로 다시 새롭게 태여나지 않았는가.

부단장: 옳다. 위대한 수령님은 우리 체육단의 진정한 창설자이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도 우리 체육단의 강화발전을 위해 크나큰 심혈과 로고를 바치시였다.

주체51(1962)년 9월 14일 체육단을 찾아주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종목별 국제, 국내경기들에서 패권을 잡을데 대하여서와 선수들이 기술이 높고 투지가 있어야 하며 훈련지도원들이 책임성과 역할을 높이고 선수후비양성사업을 잘할데 대한 문제 등 체육단이 나아갈 앞길을 환히 밝혀주시였다.

실내훈련관과 숙소를 잘 건설하도록 하는 문제, 경기성적이 좋고 생활에서 모범인 선수들을 김일성종합대학을 비롯한 여러 대학들에 추천하여 공부시키도록 하는 문제를 비롯하여 체육인들의 훈련뿐아니라 전도문제에 이르기까지 따뜻이 헤아려주신 우리 장군님의 이날의 현지지도는 주체체육발전에서 커다란 의의를 가지는 뜻깊은 계기로 되였다.

그후에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체육단의 축구와 롱구경기들을 무려 10여차례나 보아주시며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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