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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1(2022)년 1월 29일
 

추녀낮은 귀틀집에서 펼쳐주신 황금산의 력사 (1)​

 

오늘도 우리 은하리를 돌아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한다.

은하리처럼 자기들의 마을도 살기좋은 리상촌으로 전변시키겠다고.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생각이 깊어지며 자신에게 이렇게 묻군 한다.

과연 오늘의 이 행복이 어떻게 마련된것인가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의 한생은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고 사상과 령도에 구현하여 현실로 꽃피우신 인민적수령의 숭고한 한생이였다.》

흐르는 세월은 많은것을 망각속에 묻어버린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은하리사람들에게는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흘러도 영원히 잊을수 없는 사랑의 이야기가 있다.

예로부터 깊고 험한 골짜기가 아홉개나 되고 그가운데서도 맨 구석진 막바지라고 하여 구지골이라 불리우는 마을, 우리 은하리 구지골은 참으로 험하기 그지없는 외진 두메산골이였다.

바로 이런 궁벽한 산골군인 양덕군, 양덕치고도 심심두메 화전민들의 부락인 구지골에 우리 수령님께서 찾아오신데는 만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사연이 깃들어있었다.

해방된 이듬해 11월 평양에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지도밑에 평안남도인민회의가 열렸다. 수령님께서는 도인민위원회 위원장의 보고가 끝나자 평남도에서 제일 잘사는 군과 못사는 군이 어디인가고 물으시였다.

도인민위원회 위원장이 잘사는 군은 안주군(당시)이고 못사는 군은 양덕군이라고 말씀드렸다.

그의 말을 주의깊게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그럼 양덕군위원장부터 토론하라고 하시였다.

양덕군위원장은 토론에서 군안의 인구 한사람당 한해에 차례지는 보잘것없는 량의 식량에 대하여 그리고 한심한 교육실태를 그대로 보고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양덕군인민들의 생활을 두고 못내 가슴아파하시면서 양덕군과 같이 식량을 자급자족하지 못하는 군들은 국가적으로 크게 구제해주어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순간 회의장에는 감격의 파도가 일어번졌다. 산골군인민들의 생활을 념려하시는 어버이수령님의 뜨거운 사랑이 가슴에 미쳐와서였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어버이수령님의 심중에서 어떤 구상과 계획이 무르익고있으며 그이의 정력적인 령도에 의해 장차 우리 산골군인민들의 생활에서 어떤 전변이 일어날것인지 예측할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 은하리 구지골을 찾아주신것은 주체36(1947)년 9월 어느날이였다.

그날 험한 산비탈길을 톱아오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구지골 막바지에 자리잡고있는 우리 할아버지의 추녀낮은 귀틀집에서 하루밤을 묵으시면서 이곳 화전민들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웃방의 터실터실한 멍석에 허물없이 앉으시여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산과실은 무엇이 있는가, 산나물과 나무는 어떤것이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물으시는 위대한 수령님께 할아버지는 산열매는 머루, 다래, 돌배, 잣도 있고 도토리도 있는데 도토리는 조나 감자에 섞어서 식량으로 보태 먹고 다른 산과실들은 아이들의 군입질로나 쓰이며 약초도 있는데 짓찧어서 상처에 붙인다는것을 자초지종 말씀드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앞으로 산과실이나 산나물, 약초들은 밑천을 들이지 않는 큰 수입으로 될수 있다고 하시며 약초나 산과실, 산나물들을 채취하여 국가에 팔면 국가에서는 그것으로 인민들의 건강증진에 필요한 약품과 식료품들을 생산하게 되므로 산골사람들은 밑천을 들이지 않고 따서 팔기만 하면 되니 많은 수입을 얻을수 있다는것을 구수하게 이야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새겨안으며 할아버지는 마을의 래일을 눈앞에 그려보며 무릎을 철썩 쳤다. (계속)

은하혁명사적지관리소 리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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