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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1(2022)년 1월 15일
 

몸소 창간해주신 《새날》신문​

 

오늘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새날》신문을 창간해주신 94돐이 되는 뜻깊은 날이다.

이날을 맞으며 우리 인민은 《새날》신문창간에 바쳐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을 감회깊이 되새겨본다.

일찌기 1920년대에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하시고 각계각층 청소년들과 군중들을 망라하는 여러 혁명조직들을 내오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혁명대오를 조직사상적으로 굳게 묶어세우는데서 출판물이 가지는 중요성을 깊이 통찰하시고 일제의 탄압책동으로 모든것이 어려운 속에서도 혁명적신문을 창간하기 위한 사업을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시였다.

당시의 조건에서 신문을 만든다는것은 보통의 담과 열정을 가지고는 생각도 할수 없는 일이였다. 일제의 감시와 폭압은 더 말할것도 없고 등사기와 종이조차 구하기 힘들었다.

그처럼 형편이 어려웠지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천만의 총검을 대신하는 위력한 무기가 될 신문을 발간하는 사업을 지체없이 실천에 옮기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그때 일을 감회깊이 추억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쓰시였다.

《나는 생각다 못해 손으로 써서 신문을 내기로 마음먹고 이 사업에 새날소년동맹 열성자들과 백산청년동맹의 핵심들을 동원시키였다. 100부를 쓰는데 한주일이상의 시간이 걸리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창간하게 될 신문의 제호를 새날소년동맹의 머리글자를 따서 《새날》로 하도록 하시고 밤을 지새우시며 신문창간호에 실을 창간사를 손수 쓰시였으며 동맹열성자들이 써낸 원고들을 하나하나 검토하시고 친히 가필까지 해주시였다.

후날 어버이수령님께서 그때 무슨 정력으로 그 많은 글을 다 써냈던지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좀처럼 믿어지지 않는다고 하신 교시는 첫 혁명적출판물발간에 깃든 우리 수령님의 크나큰 심혈을 가슴뜨겁게 새겨안게 하여준다.

어버이수령님의 로고와 세심한 지도에 의하여 드디여 주체17(1928)년 1월 15일 《새날》이라는 제호를 단 첫 혁명적신문의 창간호가 세상에 나오게 되였다.

《새날》신문의 창간은 근로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주체형의 혁명적출판물의 탄생을 알리는 장엄한 선언이였다.

《새날》신문이 창간됨으로써 조선의 혁명가들과 인민들은 수령의 사상과 위업을 견결히 옹위하는 위력한 사상적무기를 틀어쥐고 혁명승리의 한길로 힘차게 전진해나갈수 있게 되였다.

《새날》신문은 청소년들과 각계각층을 망라하는 광범한 군중들의 커다란 관심속에 널리 보급되여 애독되는 과정에 점차 배포부수도 많아지고 보급범위도 넓어지게 되였다.

《새날》신문이 얼마나 커다란 견인력을 가지고있었는가 하는것은 그것이 새날소년동맹은 물론 반제청년동맹, 공청, 부녀회조직들에서 학습교재로 되고 대중선전수단으로 리용된 사실만 가지고도 잘 알수 있다.

이처럼 《새날》신문은 광범한 대중속에 혁명의 불씨를 심어주었으며 그들을 조국해방의 밝은 새날을 향해 신심드높이 싸워나가도록 힘있게 고무추동하였다.

《새날》신문이 발간되기 시작한 때로부터 우리 나라에서 주체적인 혁명적출판물의 력사적뿌리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마련하신 주체적인 혁명적출판물의 전통은 항일혁명의 불길속에서 《볼쉐비크》와 《농우》를 거쳐 《3. 1월간》, 《서광》, 《종소리》, 《철혈》 등으로 맥맥히 이어졌으며 혁명적인 출판물들은 항일유격대원들과 광범한 군중을 조선혁명의 로선과 전략적방침으로 튼튼히 무장시키고 조국해방을 위한 결사전에로 불러일으키는데 적극 이바지하였다.

참으로 《새날》신문의 창간으로 혁명적출판보도물건설의 새로운 력사적시대를 개척해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업적은 오늘도 찬연한 빛을 뿌리고있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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