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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1(2022)년 1월 30일
 

오랜 력사와 전통을 가진 우리 민족의 차문화​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인민의 우수한 민족전통을 적극 살려나가야 합니다.》

슬기롭고 지혜로운 우리 조선민족은 오래전부터 자기의 우수한 음식문화를 창조하고 향유하여왔다. 그중에는 유구함과 독특함으로 하여 자랑높은 차문화도 있다.

차문화라고 할 때에는 차나무의 재배와 차잎의 생산과 가공처리, 차그릇의 생산과 사용 등의 종합적개념을 말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벌써 삼국시기에 지리산을 비롯한 많은 곳들에서 차나무들이 재배보급되였으며 고구려와 백제, 신라사람들이 차를 마신 사실이 《삼국사기》를 비롯한 력사자료들에 기록되여있다. 그밖에도 고구려무덤벽화에도 차를 마시는 장면이 반영되여있다.

인간이 자연계의 차나무를 인공적으로 재배한 력사를 대체로 2 000년정도로 볼 때 삼국시기에 차를 마셨다는 사실은 우리 민족의 차문화가 오랜 력사를 가지고있다는것을 말해준다.

발해와 후기신라에 와서도 차문화가 발전하였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정신을 맑게 하는 기호음료로서의 차에 대한 수많은 자료가 수록되여있다.

차문화는 고려때 더욱 발전하였다. 고려때 차의 생산과 가공처리, 운반, 판매공급 등을 《다방》(차집이라는 뜻)이라고 하는 중앙관청이 맡아보았다.

《다방》은 국가적인 약방도 겸하였는데 그것은 차잎이 각성, 소독, 진정 등의 약효성분을 가지고있는것으로 하여 약재로도 많이 쓰이였기때문이다. 당시 왕궁에서는 《다례》라고 하는 차마시는 행사가 자주 진행되였다. 《고려사》를 비롯한 력사기록들에는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되여있다.

고려사람들의 음식문화에서 차마시기는 빼놓을수 없는 한 측면을 차지하고있었다. 차는 국가의례행사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음료로 취급되였다. 이웃나라들에서도 우리 나라 특산물의 하나로서 차를 꼽았다.

고려사람들은 차잔과 차끓이는 도구들도 발전시키였다. 차잔으로서는 고려청자기의 특성을 잘 살린 비색자기차잔을 많이 리용하였다. 독특한 맛과 향기를 가진 고려차를 비색자기차잔에 부어 마시는 멋은 그 어디에도 비길수 없었다고 한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도 차문화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발전하였다. 《조선봉건왕조실록》에는 우로는 왕궁과 아래로는 시골에 이르도록 차마시기가 계속 이어져왔다는 내용이 기록되여있다. 이 시기에도 고려때와 마찬가지로 국가적인 행사때에는 왕궁에서 《다례》를 진행하군 하였는데 우리 선조들은 약효성분이 많은 갖가지 나무열매와 뿌리, 잎 등을 말리워 우리거나 달여 만든 여러가지 차도 즐겨마시였다. 그 대표적인것이 바로 인삼차, 결명자차, 보리차, 생강차 등 약차들이였다. 이러한 차들은 우리 선조들이 오랜 로동생활과정에 터득한 자연생태와 식물들에 대한 넓고 깊은 지식에 기초하여 만들어낸 우수한 건강음료들이다.

조선봉건왕조후기에 나온 책인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우리 선조들이 즐겨마신 차로서 매화차, 국화차, 포도차, 생강귤차, 당귀차, 협두차(콩차), 보리차, 누룩차, 오미자차, 구기자차, 감나무잎차, 대추차, 인삼차 등 여러가지 이름의 차가 기록되여있는데 이것은 우리 나라에서 생산보급된 차들가운데서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당시 우리 선조들은 다섯가지 과일로 만든 오과차와 결명자차, 차나무의 싹으로 만든 작설차 등을 최고급의 차로 일러주었는데 이러한 차들은 이웃나라들에서는 보기 힘든것들이였다. 우리 나라의 차들은 대부분이 심장, 위를 든든하게 하여주는 약효성분들을 많이 가지고있기때문에 그 인기가 대단히 높았다.

이렇듯 세계적으로도 그 력사가 매우 오랜 우리 민족의 차문화는 오늘 절세위인들의 뜨거운 사랑속에 더욱 활짝 꽃펴나고있다.

지금 우리 공화국에서는 은정차집을 비롯한 차집들에서 은정차(록차, 홍차, 철관음차)를 비롯하여 건강에 좋은 차들이 봉사되고있으며 현대적으로 꾸려진 은정차음료공장에서는 갖가지 차음료들이 생산되고있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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