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위대한 어버이가 계십니다
한생토록 잊지 못할 뜨거운 추억을 안고사는 사람은 분명 행복한 사람일것입니다.
대홍단군 서두리에서 살고있는 저희부부가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지금도 TV에서는 지금으로부터 21년전 대홍단군의 첫 제대군인가정에 펼쳐졌던 가슴뜨거운 화폭이 자주 나오군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희부부는 꿈결에도 뵈옵고싶던 위대한 장군님을 몸가까이 모셨던 영광의 그날을 뜨거운 감회속에 돌이켜보군 합니다.
위대한 장군님의 원대한 구상을 높이 받들고 저희들이 조국의 북방땅으로 달려온지 1년정도밖에 안되였던 주체89(2000)년 3월 어느날이였습니다. 대홍단군종합농장(당시)을 찾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 글쎄 저의 집으로 오고계신다는 뜻밖의 소식에 접한 저와 남편은 순간 그 자리에 돌처럼 굳어지고말았습니다.
꿈인가, 생시인가?…
그런데 만면에 해빛같은 미소를 지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 벌써 저의 집 뜨락에 들어서시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버지장군님, 아직 친부모도 와보지 못한 저희집을 장군님께서 제일먼저 찾아주셨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며 눈굽을 적시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제대군인 신혼살림집에 자신께서 제일먼저 와야지 누가 오겠는가고 하시면서 언제 결혼하였는가고 다정히 물으시였습니다.
한 일군이 지난해에 결혼하였다는것과 내가 임신중이라는데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순간 저는 얼굴이 확 달아올라 저도모르게 머리를 숙이였습니다.
그런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것 참 듣던중 제일 반가운 소식이라고 하시며 환히 웃으시는것이 아니겠습니까.
그이의 해빛같은 미소가 따뜻이 흘러들어 저의 마음속에서는 긴장이 봄눈녹듯 가뭇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방안에 들어서시여 살림살이형편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저에게 해산달이 언제인가, 아들을 낳을수 있는가고 다정히 물으시였습니다.
그때 저는 7월에 해산을 하게 된다는것과 꼭 아들을 낳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글쎄 제가 아들을 낳겠다고 하면 아들을 낳는것이겠습니까.
하지만 장군님께서는 저의 천진한 대답을 웃음속에 다 들어주시였습니다.
행복의 무아경에 잠겨있던 저는 어려움도 다 잊고 그이께 귀속말로 아기이름을 지어주시였으면 한다고 말씀올리였습니다.
참으로 엉뚱한 청에 동행한 일군들도 놀라와하는 기색이였습니다.
그것을 띄여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또다시 호탕하게 웃으시며 아들인지 딸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이름을 지어주겠는가고, 그때에 가서 이름을 지어주겠다고 다정히 말씀하시였습니다.
그날 어버이장군님께서는 저와 남편을 량옆에 다정히 세우시고 사랑의 기념사진을 찍어주신 다음에야 마을을 떠나시였습니다.
하지만 그때 저는 얼마나 더 큰 사랑이 기다리고있었는지 다 알수 없었습니다.
저의 집을 다녀가신 그날 밤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제대군인안해의 간절한 부탁인것만큼 그들의 미래를 축복해주는 의미에서 우리가 이름을 지어주자고, 아들을 낳게 되면 대홍이라고 하고 딸을 낳게 되면 홍단이라고 하는것이 좋을것 같다고, 두 이름을 합치면 대홍단이 되는데 아버지의 성이 민가이므로 아들이면 민대홍, 딸이면 민홍단이라고 부르면 뜻이 있고 좋을것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습니다.
계속하시여 그이께서는 원래 좋기는 오누이쌍둥이를 낳아 대홍이, 홍단이라고 하면 더 리상적이라고 하시며 기쁨에 겨워하시였습니다.
대홍이와 홍단이.
어찌 미구에 태여날 한 아기의 이름만이겠습니까.
삶의 뿌리를 억세게 내리고 대를 이어 영원히 대홍단의 이깔처럼 영광의 대지를 가꾸어갈 저희들의 속마음까지 다 헤아리시여 우리 장군님께서 깊은 뜻을 담아 지어주신 이름이였습니다.
잠시후 동안을 두시였던 그이께서는 박혜금동무만이 아니라 머지않아 애기를 낳게 될 제대군인가정의 안해들을 위해 평양산원에서 현지에 내려와 그들의 해산방조를 맡아하도록 은정어린 조치까지 취해주시였습니다.
그로부터 넉달후 저는 장군님의 사랑을 안고 대홍단으로 달려온 평양산원 선생님들의 방조속에 순산을 하였습니다.
딸애가 태여났습니다. 홍단이가 태여났습니다.
저는 귀여운 아기를 품에 꼭 안고 멀리 평양하늘가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이렇게 웨쳤습니다.
《아버지장군님, 딸이 태여났습니다. 홍단이가 태여났습니다.》
위대한 태양의 축복속에 태여난 홍단이와 더불어 저의 집은 한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 온 나라가 다 아는 가정으로 되였고 백두대지에서는 수많은 대홍이, 홍단이들이 태여났습니다.
실로 대홍단은 기쁨도 삼천리, 노래도 삼천리였고 행복도 삼천리인 복받은 대지였습니다.
세월은 류수와도 같아 대홍이, 홍단이들이 어느새 탁아소, 유치원을 거쳐 배움의 꽃대문에 들어서게 되였습니다.
소년단원으로 성장한 홍단이는 주체101(2012)년 1월 평양에서 진행된 학생소년들의 설맞이공연에 참가하였습니다.
어버이장군님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안고 무대에 출연하여 자기의 출생과 성장에 깃든 전설같은 사랑을 담은 실화무대를 펼쳐 만사람을 울린 홍단이는 리축복, 리경연, 류소금, 고후회학생들과 함께 경애하는 원수님께 삼가 편지를 올리였습니다.
편지를 받아보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행복동이들에게 사랑의 친필서한을 보내주시였습니다.
《훌륭히 자라 미래의 주인공들이 되거라
김정은
2012. 2. 9》
어버이장군님의 사랑을 그대로 이어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우리 홍단이를 조선소년단창립 66돐경축행사와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당시) 제9차대회 대표로 평양에 불러주시고 사랑의 한품에 안아 기념사진도 찍어주시였습니다.
우리 원수님의 사랑과 은정속에 우리 홍단이가 첫 김정일소년영예상수상자가 되여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저의 남편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홍단아, 우린 비록 평양과 멀리 떨어져있어도 어제도 오늘도 영원히 아버지장군님의 식솔, 우리 원수님의 식솔이다, 그 행복한 순간들을 추억속에 간직하고 우리 언제나 위대한 어버이의 정에 숨결을 잇고 살자꾸나.》
우리 장군님의 사랑의 손길이 어려있는 저의 집에 몇해전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뜻깊은 태양절을 맞으며 은정어린 선물도 보내주시였습니다.
그날 온 농장, 온 마을사람들이 저의 집에 모여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는 위대한 어버이의 사랑을 뜨겁게 노래하였습니다.
그날의 영광을 가슴에 새겨안고 우리 홍단이는 중학교를 졸업한 후 혁명의 군복을 입었습니다.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의 축복이 넘쳐흐르는 백두대지에서 태여난 수많은 대홍이, 홍단이들이 지금 우리 홍단이처럼 보답의 한길, 충성의 한길을 꿋꿋이 이어가고있습니다.
백두산혁명전적지에로의 답사행군길에 오른 답사자들은 꼭꼭 저의 집을 찾군 합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다녀가신 살림집이라고 정히 쓴 현판앞에서 답사자들은 저의 가정에 뜨겁게 어려있는 위대한 어버이의 사랑을 되새기며 태양의 품속에서 복된 삶을 누려가는 우리 인민의 모습을 보고있습니다.
한 제대군인가정에 베풀어지는 위대한 어버이의 사랑, 세월이 흐를수록 더해만지는 해빛같은 그 은정이 어찌 저의 가정에만 어려있는것이겠습니까.
수천척지하막장 광부들을 찾아가보아도, 깊은 산골 방목지 처녀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아도 동서해의 한끝 외진 섬마을에 가보아도 인민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우리 수령님들과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계십니다.
하기에 저희 부부는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는 어버이사랑을 온 세상에 자랑합니다.
우리에게는 아니 온 나라 인민의 곁에는 언제나 위대한 어버이가 계십니다.

대홍단군 서두농장 제5작업반 박혜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