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님의 집무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생애는 혁명의 붉은기를 높이 들고 강철의 의지와 초인간적인 정력으로 전인미답의 험난한 초행길을 헤쳐오신 위대한 혁명가의 가장 빛나는 한생이였으며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신 절세의 애국자의 가장 고결한 한생이였습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안고 12월의 날을 맞는 인민의 가슴마다에는 장군님의 집무실에 대한 생각이 눈물겹게 갈마든다.

세상에는 위인도 많고 이름난 정치가도 적지 않지만 우리 장군님처럼 한평생 인민들과 군인들속에 계시면서 나라의 정사를 보신 그런분은 동서고금에 없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언제나 인민을 찾아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였으며 인민들속에 계시며 그들의 지향과 요구를 들으시고 그에 따라 나라의 크고작은 모든 사업을 구상하시였다.

인민은 선생이며 인민보다 더 위대한 존재는 없다는 투철한 인민관을 천품으로 지니신 우리 장군님이시였기에 인민이 있는 곳이라면 험한 령길과 사나운 파도도 넘고 헤치시였고 공장과 농어촌, 두메산골과 조국방선의 초소들에서 솟는 해, 지는 달을 맞군 하시였다. 야전렬차와 야전승용차를 집무실로 삼으시고 한평생 조국과 인민을 위한 헌신의 강행군길을 이어가신분이 우리 장군님이시였다.

오늘도 우리의 눈굽을 뜨겁게 하는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온 나라 인민이 150일전투를 승리적으로 결속하기 위하여 총돌격전을 벌리고있던 주체98(2009)년 9월 중순 어느날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희천발전소건설장을 찾아가실 의향을 표시하시였다.

일군들이 그이께 멀고 험한 건설장을 찾아가시는것만은 그만두시였으면 한다고 말씀올리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는 현지지도를 하러 떠날 때마다 인민군군부대에 가면 나의 병사들이 있고 공장이나 농장에 가면 나의 인민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 길이 비록 힘든 길이기는 하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군 한다고 하시였다.

한 일군이 위대한 장군님께서 올해에 렬차를 타고 현지지도하신 거리가 지난 10년동안 렬차행군을 하신 거리와 맞먹는다고 격정에 젖어 말씀올리며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건강을 돌보셔야 한다고 간절히 아뢰였다.

하지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제는 렬차를 타고다니며 거기에서 생활하는것이 습관이 되여 그런지 렬차에 오르면 집에 온것 같이 느껴지고 반대로 집에 들어서면 려관에 온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하시였다.

렬차는 집과 같고 집은 려관과 같다.

멀고 험한 현지지도의 길에서 조국의 사계절을 다 맞고보내시며 1년을 하루같이 온 나라 방방곡곡을 찾고 또 찾으시는 절세위인의 불멸의 로고가 얼마나 뜨겁게 담겨져있는 교시인가.

조국과 인민을 위해 모든 고생을 락으로 여기시며 야전렬차와 야전승용차를 집무실로, 숙소로 삼으시고 끝없는 로고와 헌신의 날을 이어오신 위대한 장군님의 령도에 의하여 우리 인민은 겹쌓이는 시련과 난관속에서도 끄떡없이 놀라운 기적을 이룩할수 있었으며 사회주의조국은 승리의 한길로 힘차게 전진할수 있었다.

하기에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해 쌓으신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업적을 심장깊이 간직하며 이 나라 천만인민은 격정에 넘쳐 말한다.

우리 장군님의 집무실은 야전승용차와 야전렬차였다고,

인민이 살며 일하는 곳에 언제나 장군님의 집무실이 있었다고.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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