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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0(2021)년 11월 11일
 

청춘의 보금자리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나라가 시련을 겪을 때, 우리 조국이 또 한단계의 도약을 요구할 때 당과 혁명이 부르는 제일선에 용약 달려나가 불멸의 위훈으로 강산을 뒤흔들던 기적의 청년신화는 결코 추억속에 있는 과거가 아니며 오늘도 우리 혁명이 줄기차게 전진할수 있게 하는 원동력으로 되고있습니다.

며칠전 우리 집안은 온밤 잠들지 못했다.

그것은 군사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오빠때문이였다.

중학시절에도 그렇고 군사복무시절에도 노래를 잘 불러 앞으로 유명한 독창가수가 될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였건만 오빠는 제대되면서 뜻밖에도 음악대학이 아니라 세포지구 축산기지로 탄원하였던것이다.

(오빠는 어쩌면?!…)

나는 말없이 앉아있는 오빠에게 원망과 놀라움이 엇갈린 눈길을 주었다.

국립민족예술단의 성악가수인 나는 1년치고 10달은 순회공연과 경제선동으로 늘 외지에 나가 살다싶이한다. 아버지가 특류영예군인이여서 어머니는 오빠가 군대에서 돌아오면 집안에 기쁨과 웃음이 노상 감돌것이라며 그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부모님들은 오빠가 내놓은 파견장을 쓸어보고 또 쓸어보며 아무 말도 없었다.

무겁게 흐르는 침묵을 깨며 잠시후 오빠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화려한 극장에서 만사람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노래를 부르고싶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들을 곁에서 모시며 단란한 가정의 기쁨도 드리고싶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함께 제대되는 동무들에게 당이 부르는 어렵고 힘든 초소로 달려나가자고 호소했습니다. 나라를 위해 한몸을 바치고도 불편한 몸이지만 사회주의대건설전투장들에 나가 노래와 시를 읊어주는 아버지의 한생은 나에게 군사복무로 애국은 끝나는것이 아니라는데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얼마나 많은 이 나라의 청년들이 전세대들의 뒤를 이어 어렵고 힘든 전구들로 달려가고있습니까. 그래서 저는 세포지구 축산기지에로 이렇게 탄원했던것입니다.》

오빠의 목소리에는 뜨겁고도 확고한 결심이 비껴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저의 노래소리는 강원도의 무연한 방목지들에서도 변함없이 울릴겁니다. 저는 세포지구 축산기지에 청춘의 보금자리, 나의 삶의 보금자리를 정하겠습니다.》

확신에 넘쳐있는 오빠의 목소리가 다시금 방안에 울렸다. 아니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의 가슴을 세차게 울려주었다.

나는 격동된 마음을 금치 못하며 오빠의 손을 꼭 잡았다.

《오빠는 정말 멋있어요.》

《그래, 네 오빠가 옳게 말했다. 청춘이라면 응당 조국이 바라는 곳, 조국이 부르는 곳에 자기의 보금자리를 정할줄 알아야 한다. 철혁이가 잘 생각했다. 이 아버지는 네 결심을 적극 지지한다.》

아버지는 너무도 대견하여 오빠의 등을 한참이나 두드려주었다.

되새겨보면 오늘날 얼마나 많은 청년들이 당이 부르는 사회주의건설의 주요전투장들마다에, 어렵고 힘든 초소들에 자기들의 보금자리를 정하고 청춘의 영예를 빛내여가고있는것인가.

지나온 나날들을 돌이켜보아도 당이 부르는 곳마다에 피끓는 청춘들이 보금자리를 펼 때 우리 조국은 강산을 울리며 눈부신 기적과 혁신의 신화들을 련이어 창조하고 부강번영의 령마루를 향해 더더욱 힘차게 비약하지 않았던가.



사회주의건설의 주요전구들마다에서 조선청년의 기개와 본때를 힘있게 떨치는 우리 청년들에게, 광명한 미래에로 향한 장엄한 전진을 힘차게 추동해온 시대의 선구자들에게 조국은 《영웅청년》이라는 값높은 칭호를 안겨주며 온 나라가 다 알도록 영광과 행복의 단상에도 제일 선참으로 내세워주었다.

그렇다. 우리 시대 청춘들의 보금자리.

그것은 창조와 혁신으로 들끓는 곳, 우리 당이 부르는 대고조전투장들이다.

당이 부르고 조국이 부르는 곳에서 청춘의 지혜와 열정을 아낌없이 바쳐가는 여기에 우리 시대 청춘들의 값높은 삶이 있고 영예가 있거니,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다짐했다.

《나도 오빠처럼 당과 조국이 부르는 곳에 보금자리를 정하겠어요.》

리 철 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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