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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0(2021)년 11월 17일
 

불법무효한 날치기허위문서 《을사5조약》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은 근 반세기에 걸쳐 우리 조선인민에게 식민지노예의 운명을 강요하고 우리 나라의 아름다운 모든것을 짓밟고 략탈하여간 우리 민족의 철천지원쑤입니다.》

일제가 횡포무도한 위협공갈로 《을사5조약》을 날조한 때로부터 11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을사5조약》은 1905년 일제가 조선에 대한 식민지지배권을 확립하기 위해 날조한 불법무효한 허위문서이다.

일제는 조선봉건정부의 최고대표자인 국왕과 정부대신들을 위협공갈하며 강압과 협잡의 방법으로 《을사5조약》을 날조해냈다.

《을사5조약》날조를 위해 서울에 수많은 침략군무력을 집결해놓은 조선침략의 괴수 이또 히로부미(이등박문)는 왕궁에 기여들어 고종황제에게 조선을 통치하기 위해 일본인통감을 임명하고 각 개항장에 일본인행정관을 두며 외교사무를 도꾜에 이전할데 대해서, 그리고 일본의 승낙없이 어떠한 취국(협정)도 타국과 체결할수 없다는 내용의 《보호조약》원안을 전달하고 무조건 접수할것을 강요하였다. 당시 이또는 고종에게 《본안은 … 단호히 움직일수 없는 확정안이니 오늘의 요는 다만 페하의 결심여하에 달려있다. 그것을 승인하는가 안하는가 하는것은 제마음대로이지만 만약 거절한다면 제국정부는 이미 결심한바가 있다. 그 결과는 어디에 이를지 모르며 귀국의 지위는 이 〈조약〉을 체결한것이상으로 곤난한 지경에 이르고 일층 불리한 결과를 각오해야 한다.》고 뇌까렸다.


- 서울에 기여든 이또와 하세가와 -


일제는 고종황제가 그것을 단호히 일축하자 조선봉건정부의 대신들을 일본공사관에 유인하여 위협과 공갈, 회유와 기만의 방법으로 그들을 굴복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정부대신들에게 통할리 없었다.

이렇게 되자 일제는 수많은 기병과 포병, 보병무력으로 궁성안팎을 겹겹이 포위하고 궁성앞 종로부근에서 대규모의 광란적인 군사훈련을 벌려놓기까지 하였다.

1905년 11월 17일 왕궁에서 열린 어전회의에서는 《조약》체결을 거부하기로 결정하였다. 조선봉건정부 대신들과 일본공사 하야시사이에 《조약》체결을 둘러싼 론의가 진행되였으나 대신들의 반대로 종당에는 파탄되였던것이다. 이 소식을 전달받고 조선주둔 일본군사령관 하세가와와 헌병대장 사또를 데리고 서둘러 왕궁에 뛰여든 이또는 회의를 마치고 돌아가려고 하는 정부대신들을 붙들어 옆방에 모여놓고 《조약》에 찬성할것을 강박하였다.


- 《을사5조약》의 원문 -


이것은 력사에 류례없는 불법무도하고 오만무례한 날강도적인 행위였다.

조선봉건정부와 고종은 시종일관 《을사5조약》을 반대하였다. 고종은 또한 외부대신에게 전권을 주어 속히 조인하자는 이또의 무례한 요구도 일축해버렸다. 이로 하여 일제는 《을사5조약》에 고종의 서명과 국새날인을 받을수 없었다.

후에 발견된 당시 조선주재 미국공사가 미국무장관에게 보낸 1905년 11월 20일부로 된 보고서에는 《조약》조작에 일본의 강제성이 작용하였다는 내용이 담겨져있다.

이뿐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17일 남조선《재외동포신문》은 《을사5조약》을 날조해낸 일제의 죄행을 폭로한 《뉴욕 타임스》 1905년 12월 13일과 14일부 기사 《조선, 을사조약을 부인하다》와 《조선황제의 특사, 미국국민에 호소》(영문)를 번역문과 함께 게재하였다.

《재외동포신문》에 의하면 《뉴욕 타임스》의 기사자료들이 조선봉건왕조의 마지막왕인 고종의 특사로 활동하였던 미국선교사 헐버트의 《기념사업회》에 의하여 최초로 공개되였다고 하였다.

《뉴욕 타임스》에 게재된 기사에 의하면 당시 일제가 무력과 강박으로 조선의 주권을 빼앗기 위한 조약을 강제로 체결하려 하자 고종이 미국인선교사 헐버트와 만나 그를 특사로 보내여 당시 미국대통령에게 일본의 주권침탈에 대한 항의립장을 전달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헐버트는 미국정부에 고종의 선언은 일본의 반역행위에 대한 조선봉건정부의 현실적태도를 보여주었다, 일본은 조선봉건정부와의 조약이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맺어졌다고 성명을 발표하였지만 사실 그것은 고종을 몇주일동안 감금해놓고 협박과 총칼로 위협하여 맺은 거짓성명이다, 고종이 특사를 파견함으로써 마침내 일본의 죄행사실을 나라밖에 알리는데 성공하였다고 전하였다.

우의 사실들을 통해서도 《을사5조약》이 조약으로서의 형식조차 갖추지 못한 비법적인 허위문서라는것을 잘 알수 있다.

일반적으로 조약이 쌍방간에 체결되여 정식 효력을 보려면 반드시 국가수반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것이 상례로 되여있다. 이것은 당시 조선봉건정부의 법령과 국제관습법에 비추어보아도 어길수 없는 원칙이였다.

일제에 의한 《을사5조약》날조당시 조선과 일본의 조약비준권은 량측황제들에게 있었다. 1894년에 조선봉건정부가 제정한 《공문식》(법)에는 《국서와 조약비준은 황제가 서명한 다음 국새를 찍는다.》고 규정되여있다. 한편 일본명치헌법 제13조에는 《천황》이 《제반 조약을 체결하고 비준한다.》라고 명기되여있었다. 그러나 《을사5조약》은 그 명칭조차 없고 조약발효의 중요한 절차인 국왕의 서명, 국새날인도 없으며 대표의 위임장 등 조약문서형식이 완전히 결여된 국제법적문서가 아닌 《조약》이였다.

유엔헌장과 윈협약에도 국제법의 기본원칙에 어긋나는 조약은 무효라고 법문화되여있다.

《만국공법》 제406장은 조약에는 《반드시 국왕의 승인》이 있어야 실행할수 있으며 국왕이 《비준하지 않으면 곧 휴지로 된다.》라고 규제되여있다. 1904년 한 일본법학자는 《국제공법론》에서 국제조약은 체결국의 능력, 전권위임, 합의의 자유, 체결목적과 적법성, 비준 등 5가지 조건이 충족되여야 성립하며 이 조건중 어느 하나라도 준수되지 않으면 무효로 인정된다고 하였다.

《을사5조약》이 철저히 일제가 총칼을 휘둘러 날조해낸 조약아닌 날치기허위문서이며 그 어떤 법적타당성도 가질수 없는 비법적인 《조약》이라는것은 더 론의할 여지조차 없다.



그러나 강압적인 방법으로 《을사5조약》을 날조해낸 일제는 그를 턱대고 우리 나라의 외교권을 완전히 빼앗았다. 일고의 합법성과 적법성도 없는 불법무효한 《을사5조약》을 법적기초로 하여 일제는 우리 나라에 대한 식민지강점통치를 실시하였으며 우리 인민에게 이루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 정신적 및 물질적피해를 들씌웠다.

하지만 일본은 오늘까지도 과거범죄를 미화분식하면서 군국주의부활과 재침책동에 피눈이 되여 날뛰고있다.

일본은 《을사5조약》날조범죄를 비롯하여 과거 우리 인민에게 저지른 대죄악에 대해 성근하게 인정하고 사죄하여야 하며 철저히 배상하여야 한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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