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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0(2021)년 10월 30일
 

고마운 사회주의품속에서 우리가 산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온 나라에 서로 돕고 이끄는 고상하고 아름다운 미풍이 차넘치게 하여 우리 사회를 화목하고 단합된 일심단결의 대가정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내 나이 예순을 가까이하고있다. 짧지 않은 이 세월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참으로 소중한것들을 새겨안게 되였다.

지금으로부터 16년전인 2005년은 나의 한생에서 잊지 못할 추억의 해로 새겨져있다.

그해 농장에서는 당창건 60돐을 높은 알곡생산성과로 맞이하기 위한 총돌격전이 벌어지고있었다.

우리 분조에서도 잡도리를 단단히 하고 영농전투에 모두가 떨쳐나섰다.

그러던 4월 어느날 나에게 뜻밖의 불행이 닥쳐왔다.

그날도 분조원들과 벼모판작업을 끝내고 일어서려는데 나는 갑자기 두다리를 쓰기 불편한것을 느끼게 되였다.

분조장의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온 나는 하루이틀 그러다 말겠지 하고 자신을 위안하며 안정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병은 점점 더 심해지며 발끝에서부터 감각이 없어지더니 1주일이 되여오는 때에는 아예 하반신이 마비되고말았다.

이제는 영영 앉은뱅이가 되는걸가?

나의 머리속에는 이런 생각이 밀물처럼 덮쳐들었다.

한창 일할 나이에 이렇게 침상에 몸이 묶이고보니 앞날에 대한 희망도, 삶의 목적도 순간에 사라져버리는것만 같았다.

그러나 나의 이 고뇌와 아픔을 온 작업반, 온 마을이 함께 나누고있는줄을 그때에는 미처 다 몰랐다.

농장에서는 성실한 농장원이 이대로 주저앉게 할수 없다며 도병원에서 종합적이며 전면적인 치료를 받도록 적극적으로 떨쳐나섰고 또 병원은 병원대로 먼거리의료봉사체계로 중앙의 많은 병원들과 련계하며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해 적극 노력하였다.

그리고 관리위원장과 리당비서를 비롯한 농장일군들이 병원에서 살다싶이하면서 힘을 주고 용기를 주었고 함께 일하던 분조원들과 이웃들도 귀한 약들과 영양식품들을 마련하여 병치료에 쓰라고 저저마다 가져다주었다.

이런 진실하고 고마운 사람들의 뜨거운 사랑속에 영영 앉은뱅이가 될번 하였던 나는 다시 대지를 활보할수 있게 되였다.

삼륜차에 앉아 병원에 들어섰던 내가 건강한 두다리로 대지를 내짚으며 병원을 나서니 생각이 깊어졌다.

만약 내가 남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저만 잘살면 그만이라는 황금만능의 자본주의사회에서 태여났더라면 과연 나의 운명은 어떻게 되였을것인가.

남이 없는 내 나라, 누구나 돈 한푼 내지 않고 치료받는 고마운 나라에서 태여났기에 평범한 농장원에 불과한 내가 6개월만에 드디여 땅을 딛고 일어서게 된것이 아닌가.

인간사랑의 화원에서 나의 가슴속에 새겨진 아름다운 이야기는 비단 이뿐이 아니였다.

우리 아들 창범이가 11살 되던 해인 2010년의 겨울이였다. 그날 아들애를 비롯한 3명의 아이들이 강가에서 놀다가 그만 물에 빠지였다.

때는 점심시간이라 모두 식사들을 하느라 아이들이 물에 빠진것을 알수 없었다. 그런데 일이 있어 좀 늦어서야 집으로 가던 3작업반 반장이 아이들의 다급한 웨침소리를 듣게 되였다.

그가 허겁지겁 강가로 달려가보니 자기의 아들애도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있었다.

그는 앞뒤를 가릴 사이없이 차디찬 물속으로 뛰여들어 우리 아들애부터 구원하였다. 또 다른 애를 구원하고나니 사랑하는 자기 아들에게까지 갈 힘이 없었다.

먼곳에서 자기를 향해 허우적거리는 아들애를 바라보며 그가 이를 악물고 헤염쳐갔으나 그의 눈앞에 더는 아들애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되여 그는 농장원들의 아이들을 살리고 단 하나뿐이였던 아들을, 늦게 보아 금이야 옥이야 귀히 여기며 정을 기울이던 아들을 잃게 되였다.

작업반장을 붙어잡고 정말 고맙다고 눈물을 흘리는 우리에게 그는 애써 웃으며 창범이와 철룡이도 다 자기의 아들, 조국이 사랑하는 귀한 아들이 아닌가고 이야기하는것이였다.

우리 가정에 비낀 따뜻한 사랑과 정에 대한 이야기는 서로 돕고 이끌며 모두가 화목한 하나의 대가정을 이루고있는 사회주의 우리 조국에서 그 어디서나 볼수 있고 들을수 있는 례사로운 이야기이다.

허나 나의 아들도, 나자신도 고마운 사람들의 따뜻한 손길에 의해 이렇게 다시 삶을 누리게 되니 고마운 사회주의 우리 집, 크나큰 사랑의 화원에 안겨사는 행복과 긍지가 다시금 심장깊이 새겨지였다.

나는 경애하는 원수님을 온 나라 대가정의 어버이로 높이 모신 사회주의 우리 집을 빛내이는 길에 나의 모든것을 깡그리 다 바쳐나가겠다.

함경남도 홍원군 봉화협동농장 농장원 홍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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