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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0(2021)년 10월 17일
 

애국으로 삶을 빛내이신분 (1)​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나의 유년시절과 소년시절에서 할머니는 어머니 못지 않게 큰 자리를 차지하고있었습니다.》

누구나 태양의 성지 만경대고향집을 찾을 때면 만경대고향집 사립문을 쉬이 넘어서지 못한다.

이 사립문을 나섰다가 돌아오지 못한 만경대가문의 많은 일가분들.

그분들에 대한 생각과 함께 일가분들을 주저없이 혁명의 길에 내세우신 리보익녀사의 한생을 뜨겁게 돌이켜보게 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할머님이신 리보익녀사께서는 1876년 5월 31일 평양시 사동구역 오류리의 애국심이 강한 농가에서 탄생하시였다.

나라를 빼앗긴 민족수난의 그 시절에 녀사의 꿈은 다름아닌 조국해방이였다.

하기에 녀사께서는 모진 가난과 고생속에서 살림을 꾸려나가시면서도 자손들에게 애국의 뜨거운 마음을 심어주시기 위해 늘 마음쓰시였고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기 위한 길에 자손들을 모두 내세우시였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자손들의 뒤바라지를 힘자라는껏 해주는것은 리보익녀사의 가장 큰 락이고 기쁨이였다.

주체15(1926)년 여름 무송현 양지촌에 있는 김형직선생님의 묘소를 찾으시였을 때에도 맏아드님을 잃으신 슬픔을 굳세게 이겨내시며 위대한 수령님을 나라찾는 싸움길로 서슴없이 떠미시였다.

《증손아, 이제는 아버지가 메고있던 짐을 네가 메야겠구나. 너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기어이 나라를 찾아야 한다. 나나 어머니에게 효도를 못해도 좋으니 조선을 독립하는 일에 몸과 마음을 다 바치거라.》

이렇듯 독립의 큰 뜻을 품으시고 만경대사립문을 나서시였던 일가분들을 잃는 가슴저미는 상실의 아픔을 당하시였을 때에도 녀사께서는 조금도 주저하거나 굴함이 없이 자손들의 혁명활동을 적극 지지해주시였고 일제원쑤들의 탄압과 박해에도 당당히 맞써 싸우시였다.

1930년대 중엽 위대한 수령님께서 령도하시는 항일무장투쟁이 날로 앙양되는데 겁을 먹은 일제는 조선인민혁명군을 없애버리려고 온갖 술책과 비렬한 책동을 다했다.

바로 그 책동의 일환으로 만경대일가분들을 《귀순공작》에 인입시키려고 했으나 갖은 회유와 돈으로도 통하지 않게 되자 강압적인 방법으로 리보익녀사를 만주로 데리고 떠났다.

녀사께서는 놈들이 1년 가까이 서간도 산악지방을 끌고다니며 모진 박해를 가하였지만 힘들어도 손자가 싸우고있는 산천을 보니 기운이 솟는다고 하시면서 오히려 적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시였다.

녀사께서는 놈들이 유격대가 있을만 한 장소에 가서 손자의 이름을 부르라고 강요할 때마다 나는 그런 미친 소리는 할줄 모른다, 네놈들이 나를 죽이고 무사할줄 아느냐, 우리 손자의 총알을 받고싶거든 어디 네놈들 하고싶은대로 해봐라라는 불호령으로 오히려 일제놈들과 혁명의 배신자들을 다불러세우시였다. (계속)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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