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가 찾아준 광명
오늘 우리 공화국에서는 남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여기면서 서로 돕고 이끌며 화목한 대가정을 이루고 사는 우리 사회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감동깊은 이야기들이 계속 꽃펴나고있다.
얼마전 황해북도 송림시에서 살고있는 김경환로인이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광명을 되찾은 격정과 환희를 편지에 담아 본사편집국으로 보내여왔다.
그 편지의 일부 내용을 아래에 전한다.
《…
여든을 휠씬 넘긴 제가 로환으로 앞을 보기 힘들게 된것은 지금으로부터 몇달전인 지난 4월부터였습니다.
점점 흐려지기 시작하는 저의 눈을 놓고 자식들이 병원에 빨리 가보자고 성화를 먹일 때면 로환으로 생긴 병인데야 어쩔수 없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 그들의 의견을 밀막아버리던 저였습니다.
그러던 지난 7월 5일 뜻밖에도 저의 집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름아닌 황해북도인민병원의 안과의사들인 리상익, 오금주선생님들과 박미경간호원이였습니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여서 저와 우리 가족은 아무 말도 할수 없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우대를 받아야 할 대상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늙은이에 불과한 저를 위해 도의 유능한 안과의료진이 집에까지 찾아올줄 어찌 꿈에나 생각하였겠습니까.
정말이지 그때의 그 고마움과 송구스러움을 무슨 말로 표현했으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제가 왜 이렇게 먼길을 왔는가고, 나야 다 산 늙은이인데 앞을 못보면 뭘하는가고 의사선생님들의 손을 꼭 잡고 이야기하자 리상익선생님은 이렇게 말하는것이였습니다.
〈아버님,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우리 사회야 년로자들이 60청춘, 90환갑을 노래하는 행복한 사회가 아닙니까. 우리
치료기간 그들이 기울인 정성을 다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의료일군들은 여러가지 검사를 진행하고 저에게 눈수술을 받으면 고칠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었습니다.
마음을 다잡았지만 수술을 받는 날이 다가오자 저의 가슴은 몹시 울렁거렸습니다.
내가 과연 이 고마운 세상을 다시금 볼수 있겠는지 걱정도 많았습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붕대를 푸는 순간 따사로운 해빛이 저의 눈에 밝게 비쳐왔습
그때의 그 감정, 정말 광명을 찾았다는 말뜻이 바로 이거로구나 하는 환희의 느낌으로 저는 마음을 진정할수 없었습
저를 위해 뜨거운 정성을 기울여온 의사선생님들과 간호원들의 모습이 똑똑히 보였습니다.
하염없이 흐르는 감사의 눈물속에 고마운 의사선생님들을 한사람한사람 새겨보는 저의 눈에 안겨오는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고마운 의료일군들의 앞가슴에서 빛나는 〈정성〉이라는 글자였습니다.
〈정성〉이라는 글자를 바라볼수록 우리 인민을 한품에 안아 보살피며 뜨거운 정을 기울이는 어머니 우리 당의 사랑이 눈물겹게 안겨왔습니다.
정말이지 이런 꿈같은 일을 고마운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가 아니고서야 어찌 상상이나 할수 있겠습니까.
저는 광명을 찾고 TV를 통하여 지난 9월 9일 수도 평양에서 진행된 황홀하기 그지없는 공화국창건 73돐경축행사를 보면서, 경축행사장의
내 이제는 비록 나이가 많아 나라에 별로 보탬이 될만 한 일은 하지 못해도 이 생명이 다할 때까지 고마운 사회주의제도를 위해, 어머니당을 받들어 자식들이 일을 더 잘해나가도록 적극 떠밀어주겠습니다.》
...
로인의 편지를 통하여 우리는 인민을 세상에서 제일 귀중히 여기는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의 품속에 안겨사는 복받은 인민의 진정에 넘친 목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