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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0(2021)년 9월 22일
 

어머님의 수첩

 

온 겨레가 백두산녀장군으로 칭송하며 흠모하던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께서 우리곁을 떠나신지 72년이 되였다.

해마다 9월 22일이 오면 우리 인민 누구나 경건한 마음으로 김정숙어머님의 고귀한 한생을 뜨거운 격정속에 되새겨본다.

우리 조국청사에 빛나는 업적을 쌓아올리신 어머님의 생애의 모든 나날들에 새겨진 이야기들이 다 뜨거웁지만 나의 머리속에 제일먼저 떠오르는것은 어머님의 수첩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머님께서 해방된 조국으로 나오실 때 가지고오신 수수한 배낭속에는 그이께서 소중히 여기시던 수첩이 있었다.

항일의 피어린 나날 전투와 행군으로 이어지는 간고한 속에서도 언제나 소중히 품고계신 수첩, 희생된 동지들과 영결한 밤이면 우등불가에서 그들의 이름과 유가족들의 주소, 나이를 한자한자 써넣으시며 유자녀들을 부모들처럼 위대한 수령님을 충직하게 받드는 훌륭한 혁명가로 키우리라 마음다지시던 김정숙어머님의 숭고한 동지적의리가 어려있는 수첩이였다.

하기에 어머님께서는 해방후 수첩에 적혀진 희생된 전우들의 유자녀들을 먼저 찾는데 온갖 심혈과 로고를 바치시였다.

오늘도 혁명가유자녀들을 찾아 떠나는 전우들과 일군들을 만나시여 시간이 걸려도 그들을 기어이 찾아와야 한다고 간곡히 당부하시던 어머님의 모습이 뜨겁게 어리여온다.

혁명가유자녀들을 빠짐없이 찾아 우리 혁명의 핵심골간으로 키우는데서 어머님의 그 수첩은 참으로 귀중한 밑천으로 되였다.

어느날 어머님과 함께 생활하던 한 녀성이 그 수첩을 보게 되였다. 그 녀성은 어머님께 어쩌면 오늘을 다 예견하신것처럼 그런 신통한 생각을 하시였는가고 물었다.

그때 김정숙어머님께서는 그 어떤 선견지명때문이 아니라 희생된 혁명동지들을 잊지 않으려는 본분에서 출발한것이였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나라가 해방되고 산에서 싸우던 때의 일을 옛말처럼 하면서 살게 되였어도 그들을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한다고, 그들을 잊으면 혁명을 잊게 된다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어머님의 그 수첩에 의하여 얼마나 많은 혁명가유자녀들이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 안기였던가.

언제인가 한 유자녀가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주체36(1947)년 8월 어느날 원아들이 도착하였다는 소식을 들으신 김정숙어머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과 함께 그들이 있는 곳으로 나오시였다.

《장군님!》, 《어머님!》 하고 부르며 위대한 수령님과 김정숙어머님의 품에 와락 달려와 옷섶과 팔소매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는 원아들을 사랑의 한품에 안으신 어머님께서는 눈물을 지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얘들아, 울지 말아. 이 기쁜 날에. 이제는 너희들이 고아가 아니다. 장군님께서 너희들을 보살펴주고계신다.

김일성장군님은 너희들의 아버지이시다. 나도 너희들의 어머니가 되려고 한다.》

원아들의 아버지, 어머니!

혁명가유자녀들은 이렇게 만경대의 아들딸, 백두산의 아들딸들로 어버이수령님과 김정숙어머님의 품에 안기여 조국을 받드는 기둥감들로 자라났다.

그렇다. 어머님의 작은 수첩, 그것은 만경대혁명학원의 첫 대렬명단이였고 유자녀들이 새 조선의 역군으로, 백두의 혈통을 이은 조선혁명의 새 세대들로 태여난 출생증과도 같은것이였다.

해방후 유자녀들이 어머님의 다심한 손길에 이끌려 어버이수령님의 품에 안기던 그때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다. 세대도 끊임없이 바뀌고있다.

하지만 김정숙어머님의 그 수첩을 우리는 영원히 잊지 못한다.

조선혁명의 피줄기를 후손만대로 이어놓은 천금보다 귀중한 재보이기에.

리 금 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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