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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0(2021)년 9월 1일
 

간또대지진때 감행한 조선인대학살만행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제는 일본으로 강제로 끌려갔거나 살길을 찾아 건너간 우리 동포들도 야만적으로 학살하였습니다. 간또대지진때 감행한 학살만행은 그 대표적실례로 됩니다.》

일제가 간또땅에서 우리 인민에 대한 잔인무도한 대학살만행을 감행한 때로부터 9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수만명의 무고한 조선사람들에게 죽음을 강요한 일제의 만행은 인류사에 류례없는 대학살범죄이다.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도꾜와 요꼬하마를 중심으로 한 간또(관동)지방에서는 일본력사상 가장 큰 지진이 일어났다. 리히터척도 7.9의 강한 지진은 화재를 동반하여 간또땅에 대참사를 몰아왔다.

지진으로 하여 70여만호의 살림집이 파손되고 공공건물들도 파괴되였으며 14만여명의 사망자와 행방불명자가 났다. 도꾜와 요꼬하마의 량곡창고들은 불타버렸고 수도관들과 가스관, 가스탕크들도 모조리 폭발되였다. 철도와 전신전화선들을 비롯한 교통통신수단들도 완전히 파괴되였다.

분명 그것은 자연적인 재난이였다. 그러나 교활하고 야만적인 일제에 의해 수많은 조선사람들이 자연의 재난보다 더 혹독한 참변을 당하게 되였다.

당시 파국적인 지진으로 재난을 당한 피해지역 주민들속에서는 구제대책을 취하지 않는 정부에 대한 항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사회적혼란이 지속되는 속에 리재민들의 불만은 극도에 이르렀다. 식량이 모자라 굶주리게 된 사람들은 폭동에로 넘어갈 기세까지 보였다.

바빠맞은 일본당국은 고조되는 사회적불만의 창끝을 재일조선인들에게 돌려 정부에 대한 반감을 눅잦히는 한편 이를 조선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과 학살의 기회로 삼을 무서운 음모를 꾸미였다.

수상관저에서 열린 림시각의에서 정보부에 민심안정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데 대한 명령이 하달되였다. 이에 따라 정보부에서는 《조선인이 방화한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친다.》 등의 류언비어를 날조해냈으며 그것을 구실로 도처에서 조선사람들에 대한 천인공노할 대학살만행을 감행하였다.




일본의 한 영화감독은 자서전 《감독의 길》에서 간또대지진이 있은 후 자기가 어릴 때 목격한 사실에 대하여 이렇게 썼다.

《한번은 마을사람들이 동네우물가운데 한곳의 물을 먹지 말라고 했다. 리유는 우물둘레에 쳐놓은 벽우에 하얀 분필로 이상한 부호가 적혀있다는것이였다. 사람들은 이 부호가 우물에 독을 탔음을 표시하는 조선인암호일수 있다고 했다. 어안이 벙벙했다. 그 부호는 내가 휘갈겨 써놓은 락서였기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조선인이 방화를 하고 폭동을 일으키려 한다.》, 《조선인이 강도, 강간을 일삼는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친다.》 등의 류언비어가 걷잡을수 없이 퍼지는 과정에 조선사람은 일본인의 적이 되여버렸다고 증언하였다.

일본당국이 고안해낸 조선인대학살음모는 실로 상상을 초월하는것이였다.

일제는 조선인살륙을 정당화하기 위해 《조선인폭동설》을 날조해냈다. 조선인들을 《적》으로 규정하고 무자비하게 학살할데 대한 내용이 담긴 일본왕의 《칙령》이 공포되고 가장 악질적인 장교들로 간또계엄사령부가 조직되였다. 《불량조선인들이 봉기하였다.》는 날조문과 함께 《반항하면 죽여도 일없다.》는 게시문이 곳곳에 나붙었고 경찰관들은 메가폰을 들고 도시를 순회하며 조선사람들을 죽이라고 공공연히 선동하였다. 일본반동정부의 지시에 따라 불량배들로 조직된 《자경단》 등이 군대와 경찰들과 협동하였다. 간또대지진과 함께 시작된 일제의 조선인대학살범죄는 이처럼 정부와 군부가 총동원되여 계획하고 조직한 특대형범죄이다.

간또땅에서 일제가 감행한 조선인대학살만행은 또한 사무라이족속의 체질적인 야수성이 낳은 극악한 반인륜범죄이다.

당국의 살인지령이 떨어지기 바쁘게 일제살인귀들은 장총, 군도, 날창, 참대창, 곤봉, 쇠갈구리 등 각종 흉기들을 가지고 조선사람들을 닥치는대로 무참히 학살하였다.

그들은 이르는 곳마다에 검문소들을 만들어놓고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발음하기 까다로운 일본말을 시켜보고는 조선사람이라고 인정되면 그 자리에서 가차없이 목을 자르거나 배를 갈라 죽였다. 뿐만아니라 눈알을 빼고 코를 베여냈으며 벌거벗겨 모욕을 준 다음 죽여서는 그 시체를 시내로 질질 끌고다니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조선사람들을 여러명씩 묶어 제방뚝에 세워놓고 쏴죽이였고 맨몸의 사람들을 철사로 묶어 불붙는 곳에 집어던져 불태워죽였다. 임신부의 배를 가르고 태아를 꺼내여 밟아죽이였다. 잔인성에 있어서 짐승도 낯을 붉힐 정도였다.

어찌 이뿐이겠는가. 요꼬하마에서는 250명의 조선동포들을 태운 배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지른 다음 바다에 침몰시켜 집단학살하는 만행이 감행되였다.

일제가 간또대지진때 학살한 재일조선인수는 무려 2만 3 000여명에 달한다. 일제는 학살만행의 진상을 가리우기 위해 엄격한 보도관제를 실시하는 한편 도꾜에 거주하고있는 외국사람들을 한곳에 수용하고 출입을 단속하였다.

인류력사에는 미국의 인디안살륙, 히틀러도당의 유태인멸살 등 인류를 경악시킨 반인륜범죄행위들이 적지 않게 기록되여있다. 하지만 일제살인귀들처럼 자연재해까지 타민족말살의 기회로 악용하여 수많은 사람을 무참히 학살한 례는 없다. 이것은 민족배타주의사상이 뼈속까지 배인 인간백정들만이 감행할수 있는 특대형반인륜범죄이다.

이 사건은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야수성과 잔인성을 집중적으로 보여주었으며 놈들이야말로 조선인민의 천년숙적이라는것을 온 세상에 다시한번 실증하였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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