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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1(2022)년 8월 12일
 

개선문광장앞에서​

 

며칠전 나는 개선문광장에 모셔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력사적인 개선연설을 하시는 불멸의 화폭을 형상한 대형기념벽화를 찾았다.

숭엄한 마음을 안고 대형기념벽화를 우러를수록 우리 인민이 터치는 《만세!》의 함성과 함께 그날의 환희가 되새겨졌다.

지금으로부터 어언 77년전의 력사적화폭이다.

주체34(1945)년 10월 14일 해방된 조국땅에서 인민들과 뜻깊은 상봉을 하시고 새 나라가 나아갈 광명한 앞길을 뚜렷이 명시한 개선연설을 하시는 젊으신 우리의 장군, 만고절세의 애국자이신 김일성장군님께서 제낀깃양복을 입으시고 나서신 수수한 연탁우에는 크지 않은 꽃다발이 놓여있다.

해방의 열기로 도가니를 이룬 평양공설운동장(당시)에서 우리 인민이 다함없는 경모와 환희의 마음을 담아 삼가 드린 향기그윽한 꽃다발.

소박한 꽃송이들로 엮은 꽃다발, 항일의 혈전만리를 헤쳐 비운이 드리웠던 이 나라에 인민이 그처럼 갈망하던 조국해방의 새 아침을 안아오신 김일성장군님께 드리는 다함없는 고마움의 인사를 담기엔 너무도 작은 꽃다발이였다.

하건만 그이께서는 그 꽃다발을 소중히 받으시고 사랑하는 인민의 환호에 뜨겁게 손저어주시였다.

꽃다발, 그 꽃다발너머로 망국은 순간이고 복국은 천년이라는 력사의 교훈을 되새겨주며 우리 수령님께서 수많은 전우들과 어깨겯고 넘어오신 험산준령들과 사나운 눈보라와 혈전만리길이 어려와 꽃다발을 드리는 우리 인민의 눈굽은 그리도 쩌릿이 젖어든것이 아니였던가.

항일혁명투쟁시기 우리에게는 국가적후방도 없었고 그 어떤 정규군의 지원도 없었다고, 그러나 자신께서는 결심품고 나선 혁명의 길에서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으며 희생을 무릅쓰고 모든것을 자체로 해결하면서 끝까지 싸워 발톱까지 무장한 일본제국주의침략자들을 때려부시고 조국을 해방하였다고 하신 우리 수령님의 간곡한 교시가 이 가슴을 뜨겁게 울리였다.

생각할수록 가슴이 후더워올랐다.

세계지도에서 그 빛조차 잃었던 우리 조국의 운명을 구원해주시려 우리 수령님 20성상 맞으신 만주벌 세찬 눈보라는 그 얼마이고 지새우신 밀림의 긴긴밤은 그 얼마였던가.

바로 항일혁명의 그 피어린 투쟁속에서 우리 혁명의 만년재보인 주체사상을 창시하시여 갈길 몰라 헤매이던 우리 민족에게 앞길을 밝혀주는 희망의 등대를 안겨주시였고 전체 인민을 조국성전에로 불러일으키시여 이 땅우에 조국해방이라는 거대한 민족사적사변을 안아오시였다.

우리 조국을 세계만방에 빛을 뿌리는 자주로 존엄높고 자립으로 굳건하며 자위로 강위력한 사회주의국가로 일떠세우시였다.

정녕 해방의 첫 기슭에서 우리 인민은 위대한 해방의 은인이신 어버이수령님께 소박한 꽃다발밖에 드리지 못했건만 그이께서는 우리 인민에게 고결한 한평생을 바치시며 가꿔오신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대화원을 안겨주시지 않았던가.

하기에 8월의 이 아침 우리 인민은 빼앗긴 나라를 찾아주신 어버이수령님과 내 조국을 더욱 강대한 사회주의보루로 일떠세워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업적을 길이 전하며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 따라 주체혁명의 한길을 꿋꿋이 이어갈 마음을 담아 흠모의 꽃다발, 보답의 꽃다발, 맹세의 꽃다발을 정히 안고 개선문광장을 찾는것 아니랴.

개선문광장에 굽이치는 꽃물결을 보며 나는 확신하였다.

절세의 애국자이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계시기에 사회주의강국의 찬란한 래일은 반드시 오리라는것을.

박 주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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