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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0(2021)년 7월 26일
 

《최고사령부 특수임무》에 대한 이야기​

 

위대한 전승의 7.27을 맞이할 때면 나는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시기 위대한 수령님을 몸가까이에 모시고 싸운 부대지휘관이 들려준 이야기를 자주 떠올리군 한다.

어느 전승절날 부대지휘관은 지난 조국해방전쟁때의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전사들의 소청을 받고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가 《그럼 〈최고사령부 특수임무〉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가?!》하며 이야기의 서두를 떼였다.

순간 탄성과 요란한 박수소리가 터져올랐다.

부대지휘관에게서 친위중대시절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받아안은 사랑과 은정에 대한 이야기를 적지 않게 들어온 전사들이였지만 아직 이런 이야기는 처음인데다가 위훈과 용맹을 갈망하던 애젊은 병사들인지라 《최고사령부 특수임무》라는 소리에 가슴이 두근두근 뛰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던것이다.

전쟁로병의 소중한 추억은 우리들의 상상을 초월한 참으로 가슴뜨거운것이였다.

준엄한 일시적후퇴시기 최고사령부와 함께 평양을 떠나 평안북도 운산군의 어느 한 마을에 이른 나는 갑자기 완전무장한 10여명의 경위련대 전투원들이 급히 차를 타고 다시 남쪽으로 파견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였다.

한창 후퇴를 하는 과정에 최고사령부를 보위할 사명을 지닌 전투원들이 적구로 급파된다는것은 보통 중대한 특수임무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였다.

얼마후 내가 경위련대장으로부터 알게 된 그 《특수임무》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었다.

최고사령부가 목적지에 도착하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련대장을 부르시여 부대군인가족들이 다 후퇴를 하였는가 알아보시였다.

련대장이 모두 무사히 도착했지만 한 부대군인가족이 후퇴도중에 3살짜리 아들을 잃은채 그냥 왔다고 보고올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몹시 놀라와하시였다.

3살난 애가 적구에 혼자 남아있단말이지.》

사연을 다 듣고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근심어린 어조로 조용히 뇌이시더니 어떤 대책을 세웠는가고 물어주시였다.

아직은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했다는 보고를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어려운 시기라고 해서 어머니품을 떠나서는 한시도 살수 없는 어린애를 어떻게 적구에 그대로 남겨둘수 있겠는가, 우리가 지금 피흘리며 싸우는것도 미래를 위하고 그 애들을 위해서가 아닌가고 하시며 빨리 그 애 아버지를 대원들과 함께 보내여 애를 찾아오게 하라고 이르시였다.

그로부터 얼마후 다시 련대장을 부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이를 찾아오는 일이 어떻게 되였는가고 또다시 물어주시였다.

지금처럼 엄혹한 시기에 최고사령부의 안녕을 보위하는 호위전사로서 어떻게 제 아이때문에 자리를 뜰수 있겠는가고 하면서 애아버지가 버티기때문에 아직 대책을 취하지 못했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손에 쥐시였던 색연필을 작전대우에 놓으시며 단호하게 말씀하시였다.

《애를 기어이 찾아와야 합니다.》

그러시고는 애를 찾아오기 전에는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하시며 그를 작전지도앞으로 이끄시였다.

애를 잃은지 오래지 않기때문에 멀리로는 가지 못했을것이라고, 그러니 애를 잃은 마을을 목표로 하여 사방 30리밖으로부터 포위망을 좁혀가면서 찾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최고사령부 작전도우에 아이를 찾기 위한 붉은색표식을 진하게 그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직접 떠날 인원들까지 선발해주시고 단호히 명령하시였다.

《됐소, 이제는 더는 지체하지 말고 빨리 애를 찾아오시오.》

이렇게 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직접 조직하고 파견하신 최고사령부 《특수임무》수행성원들이 적구로 떠나게 된것이였다.

(과연 세상에 이런 일도 있단말인가?)

이것은 그때 나 하나만이 아닌 우리 친위전사들모두의 하나같은 생각이였다.

《특수임무》수행성원들은 최고사령부 작전도에 표시된대로 《특수작전》을 시작하였다. 몇명씩 나뉘여 30리안팎의 모든 집들을 빠짐없이 흝으며 포위망을 좁혀들어갔다. 그러다 어느날 저녁 아이가 없어진곳에서 얼마 멀지 않은 어느 외딴집에서 끝내 아이를 찾아내고야말았다. 후퇴를 하지 못한 한 늙은이가 엄마를 부르면서 울며 헤매는 어린것을 발견하고 데려왔던것이다.

아이를 찾을 인원들을 떠나보내신후 그들을 기다리시며 작전도앞에서 새날을 맞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이를 찾아왔다는 소식을 들으시고서야 비로소 시름을 놓으시였다.

이제는 죽은것으로 단념해버렸던 사랑하는 아들애를 다시 품에 안던 날 애어머니는 목메여 부르짖었다.

《얘야…네가 어떻게 살아왔니…응? …》

자기 볼에 얼굴을 비비며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에게 그 애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장군님…》

아직은 세상물정도 모르고 말도 채 번지지 못하는 철부지 어린것도 자기를 구원해주신 고마운분이 누구신가를 작은 가슴속에 아로새겼던것이다.

로병의 이야기는 끝났다.

하지만 병사들은 너무도 크나큰 충격과 깊은 감동에 사로잡혀 자리에서 일어날 념을 하지 못하였다.

쌍방간의 치렬한 공방전이 벌어지는 전쟁시기에 불가피한 사정으로 행방을 잃었거나 적구에 떨어진 인원들에 대한 구출작전을 벌린 례는 많다. 그러나 세계전쟁사에 기록된 그 모든 구출작전들은 대개가 명망높은 장군이나 정치인들, 유명인사들을 대상으로 한것들이였다. 전쟁의 운명을 걸머진 최고사령관이 평범한 한 어린애를 구원하기 위하여 호위전사들까지 동원하여 직접 《특수작전》을 펼쳐주시고 부모잃은 아이를 최고사령부에서 몸소 키우신 이야기는 인류전쟁사에도, 동서고금의 그 어느 위인전에도 찾아볼수 없다.

참으로 어버이수령님께서 간직하신 열화같은 그 인덕과 사랑, 숭고한 후대사랑, 미래사랑의 힘은 세계《최강》을 자랑하던 침략자들을 때려눕히고 위대한 전승을 안아오는 기적을 창조하였다.

이런 《최고사령부 특수임무》에 대한 이야기가 어찌 가렬처절했던 전쟁시기에 한한것이라 하랴.

혁명 그 자체를 후대들에 대한 사랑으로 일관시키신 절세위인들을 모시였기에 우리 아이들은 나라의 왕으로 떠받들리우며 《세상에 부럼없어라》의 노래속에 행복만을 알며 자랐고 조국이 준엄한 시련을 겪던 시기에도 콩우유를 실은 사랑의 《왕차》가 아이들을 찾아 경적소리높이 수도의 거리를 달리고 《장군님은 전선으로, 아이들은 야영소로》라는 세상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사랑의 화폭들이 펼쳐질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그처럼 사랑하시던 이 땅의 아이들모두를 구김살없이 행복하게 키우려는 불같은 열망으로 원아들에게 먹일 물고기의 수량이 얼마나 되겠는가를 몸소 수첩에 계산까지 해보시고 원아들에게 1년 365일 하루도 번짐없이 물고기를 보장하기 위한 수산사업소를 인민군대에 조직할데 대한 최고사령관 명령도 하달하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

조국의 미래인 어린이들을 튼튼하게 잘 키우는것보다 더 중차대한 혁명사업은 없으며 수천수만금을 들여서라도 보다 개선된 양육조건을 지어주는것은 우리 당과 국가의 최중대정책이고 최고의 숙원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며 국가적부담으로 전국의 어린이들에게 젖제품을 비롯한 영양식품을 공급하는것을 당의 정책으로 수립하도록 하신 그 숭고한 후대사랑, 미래사랑의 전설들모두가 위대한 김정은시대에 펼쳐진 《최고사령부 특수임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그렇다.

《최고사령부 특수임무》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도 계속된다.

정녕 태양보다 따사롭고 바다보다 넓으며 하늘보다 높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자애로운 품에 운명도 미래도 맡기고 사는 우리 인민보다 행복한 인민은 이 세상에 없다.


평양시인민위원회 부국장 김승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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