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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0(2021)년 7월 22일
 

법동농민의 이름

 

며칠전 저녁 나는 숙제를 하던 아들애에게서 뜻밖의 질문을 받게 되였다.

해방후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애국미를 바친 김제원농민, 전화의 나날의 법동농민, 전시의 처녀보잡이 김락희영웅…

이렇게 우리 조국의 력사에 자기의 이름을 남긴 농민들을 손가락으로 꼽아가던 아들이 문득 나에게 물었다.

《아버지, 법동농민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아들의 엉뚱한 질문에 나는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다.

우리 조국앞에 준엄한 시련이 닥쳐왔던 지난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어두운 밤 북행길에서 자기앞에 계시는분이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이시라는것을 미처 알아뵙지 못한채 자기의 심정을 고스란히 터놓았던 법동의 이름모를 농민,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토록 잊지 못해하시고 우리 인민 누구나 다 기억하는 농민이지만 우리는 그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단지 그가 우리 수령님께 드린 대답만을 알고있을뿐이다.

《… 로인님은 이 깊은 밤에 어디로 갑니까?》

《북으로 가지요. 지금이야 북쪽밖에 갈데가 있습니까?》

《북에는 왜 갑니까?》

《왜 가다니요? 군대동무들과 같이 김일성장군님을 찾아가지요.》

《그래 이 란리통에 김일성장군은 왜 찾아갑니까?》

《왜 찾아가다니요? 김일성장군님을 찾아가야 살길이 열리고 우리가 전쟁에서 이기지 않겠소.》

...

《로인님생각에는 우리 편이 전쟁에서 이길것 같습니까?》

《이기지요. 이기구말구요.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시는데 무슨 걱정이 있겠소. 이기지요.》

...

소박한 법동농민의 그 말에서 우리 수령님 얼마나 큰 힘을 얻으셨던가.

김일성장군님을 찾아가야 살길이 열리고 전쟁에서 이길수 있다는 그 대답속에서 우리 수령님께서는 바로 자기 령도자를 굳게 믿는 우리 인민의 철석의 신념을 읽으셨고 그 인민을 굳게 믿으시고 조국수호전에로 불러일으켜 보총과 원자탄의 대결이라고도 할수 있던 조국해방전쟁의 력사적승리를 안아오신것이다.

진정 조국해방전쟁에서의 위대한 승리는 수령은 인민을 믿고 인민은 수령을 굳게 믿고 따르는 일심단결의 힘으로 이룩될수 있은것이다.

어찌 조국해방전쟁시기뿐이랴.

우리 혁명이 준엄한 시련을 겪던 전후의 그 나날에 종파놈들이 어찌고저찌고 해도 우리는 수상님만을 지지한다고 말씀드린 태성할머니며 그처럼 간고했던 고난의 행군길에서 배고픈 고생보다 장군님 그리운 고생이 더 컸다며 눈물을 쏟던 자강도사람들.

기쁠때에도 힘들때에도 자나깨나 령도자에 대한 일편단심 변함없은것이 우리 인민이며 그 충성의 력사속에 법동농민과 같이 이름보다 당을 따르는 한마음으로 소중히 기억된 사람들 또한 그 얼마인지 우리 다는 알수 없다.

전화의 나날 우리 수령님을 따라 법동농민이 걸었던 북행길!

그 충성의 한길을 우리 아버지, 어머니세대가 위대한 장군님을 따라 변함없이 걸었으며 오늘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높이 모시고 우리 모두가 힘차게 걷고있다.

그렇다. 법동농민의 얼굴과 이름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법동농민의 그 모습을 우리는 좋은 날이나 어려운 나날에나 언제나 자기 수령만을 믿고 따르는 영웅적조선인민의 군상으로 보고있으며 그 이름을 령도자와 인민이 하나로 굳게 뭉친 일심단결의 대명사로 알고있다.

나는 아들에게 말해주었다.

《명철아, 준엄한 때에 우리 수령님께 힘을 드렸던 법동농민의 이름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어렵고 힘든 때에도 변함없이 당만을 따르는 아버지, 어머니, 형님, 누나들의 이름이 그 법동농민의 이름을 대신한다는것을 새겨두거라.》

김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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