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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0(2021)년 5월 29일
 

첫 뜨락또르를 만들던 때를 돌이켜보며

 

발동소리를 기운차게 울리며 사회주의협동벌로 달려나가는 《천리마》호 뜨락또르를 볼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저렇게 힘을 쓰며 나가는 우리 뜨락또르가 처음에는 뒤로 갔었지.)

그때 우리 얼마나 속을 태웠던가.

뜨락또르를 통채로 분해해놓고 아무리 살펴보아도 그 원인을 알수 없어 모두 속에 재가 앉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의 말대로 아직 우리가 자체의 힘으로 뜨락또르를 만들기는 힘들단 말인가.

협동화의 봄을 맞이한 우리 농민들이 세기적인 락후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손으로 농사를 지을수야 없지 않는가.

도면을 그리는데만도 6개월이 걸린다는 뜨락또르를 하루빨리 우리 자체의 힘으로 만들데 대한 영예로운 과업을 주신 위대한 수령님께 정녕 뜨락또르를 몰고 갈수 없는가 하는 생각이 무거운 연덩어리가 되여 우리 기양로동계급의 심중에 맺혀있었다.

그때 뜨락또르의 전조등체조립을 맡고있던 나는 너무도 실망하여 반장아바이에게 말하였다.

《간단한 전조등체도 37번째만에야 성공시킨 우리가 꽤 뜨락또르를 앞으로 가게 할수 있을가요?》

나의 말을 듣고 반장아바이는 격하여 책상을 치며 일어섰다.

《우리가 뜨락또르를 제힘으로 만들어야 기술도 발전하지 남의것을 사다쓰기만 하면 우리의 기술을 발전시킬수 없다고 하신 수령님의 교시를 벌써 잊었는가.》

그때 우리 기양의 로동계급이 만든 첫 뜨락또르가 시운전에서 뒤로 갔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뒤로 갔다는것은 앞으로도 갈수 있다는것이라고 크나큼 믿음을 안겨주시면서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가지고 뜨락또르를 완성하기 위한 투쟁에 또다시 일떠서도록 떠밀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한없는 믿음을 받아안은 우리는 다시금 뜨락또르가 뒤로 간 원인을 밝혀내기 위한 전투에 들어갔다. 먹는것도 잠자는것도 잊어버리고 온갖 지혜와 정열을 쏟아부었다.

자신께서는 동무들이 당이 제시한 뜨락또르를 생산할데 대한 영예로운 과업을 반드시 성과적으로 수행하리라는것을 확신한다고 하시던 위대한 수령님, 그 크나큰 믿음에 보답하지 못한다면 우리 어이 조선의 영웅적인 로동계급이라고 말할수 있으랴.

열백번을 다시 깎고 백천번을 뜯었다 맞추는 한이 있어도 우리 힘으로 끝까지 뜨락또르를 완성해내리라는 맹세로 가슴 불태우며 우리는 이를 악물고 또다시 일떠섰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과업이라면 목숨까지도 바쳐 그것을 끝까지 수행하고야 말겠다는 오직 하나의 신념을 안고 우리는 30여일간에 걸치는 악전고투끝에 드디여 첫 뜨락또르를 완성하여 내놓았다.

주체47(1958)년 11월 14일 우리 기양의 로동계급이 만든 첫 뜨락또르를 친히 보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말 수고했다고, 신비주의란 없다고 거듭 만족해하시며 공장의 로동자, 기술자, 사무원들에게 당중앙위원회와 내각의 이름으로 감사를 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그 믿음으로 더욱더 용기백배, 기세충천한 우리는 기술적준비기간도 시험생산기간도 그리고 점차적인 장성의 계단도 뛰여넘어 단꺼번에 한대의 시제품생산으로부터 1년에 3000대의 뜨락또르를 생산하는 비약의 길을 줄달음쳐나갔다.

30여일만에 태여난 우리의 첫 《천리마》호뜨락또르, 실로 그 생산과정은 우리가 당의 호소를 높이 받들어 자기 힘을 믿고 달라붙으면 이 세상에 점령 못할 요새가 없다는 철의 진리를 체득한 신념의 나날이였다.

나는 지금도 우리가 다른 나라에서 뜨락또르를 한해에 3000대씩 수입하는것으로 보아도 3만대를 수입하자면 10년은 걸려야 하는데 그동안 처음에 수입한 뜨락또르가 못쓰게 된다는것을 고려하면 10년이 걸려도 농촌경리의 기계화에 필요한 뜨락또르를 보장하기 곤난하다고 하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되새겨보군 한다.

그러면 위대한 수령님께서 안겨주신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이 없었다면 우리의 첫 《천리마》호 뜨락또르만이 뒤로 간것이 아니라 우리 나라가 영원히 후진국대렬에 머물러있을번 하였다는 생각이 뇌리를 친다.

정녕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 로동계급의 심장에 심어주신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은 뒤로 갔던 우리 뜨락또르가 앞으로 나아갈수 있게 한 추동력이였고 우리 조국이 천리마를 타고 세기를 앞당길수 있게 한 비약의 나래였다.

권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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