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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0(2021)년 5월 20일
 

어머니당의 품속에 우리 순위도가 있다

 

때로 나는 자신에게 물어보군 한다.

수도 평양이 그리워지지 않는가고, 순위도로 탄원해온것을 후회하지 않는가고.

오늘도 파도소리와 자유롭게 날아예는 갈매기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내가 처음 높뛰는 가슴을 안고 순위도에 첫 자욱을 새기던 부두가에 서니 가지가지의 추억들이 밀물처럼 밀려든다.

이제는 8년세월이 흘렀다.

김형직사범대학을 최우등의 성적으로 졸업한 내가 순위도로 탄원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대번에 반대를 하였다.

면도칼로 자르듯이 절대로 갈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어머니를 잃은 나를 홀로 키워오신 아버지가 자기 품에서 딸을 떼여놓고싶지 않아 그런다고 생각하였다.

나는 아버지에게 안타깝게 호소하였다.

장재도와 무도를 향해 나아가던 27hp목선, 장재도와 무도방어대에는 나의 전우이며 동지들인 병사들이 있다고 하시며 결연히 나서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 그이를 우러르며 눈물속에 발을 동동 구르던 방어대군인들과 가족들의 모습…

그날의 충격이 따뜻한 보금자리에서 행복만을 누려온 나에게 진정으로 귀중히 여겨야 할것은 무엇이며 어디에 자신을 세워야 하는가를 가르쳐주었다고, 순위도도 조국의 섬이라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위험을 무릎쓰시고 찾으신 최전연의 섬마을들에도 내가 가르쳐야 할 학생들이 있다고…

나의 말을 듣고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였다.

《아버지는 단지 네가 대학졸업을 앞두고 들뜬 기분으로 인생의 좌표를 정했을가봐 걱정했다.

봄향아, 결심이 장하다고 저절로 지켜지는것이 아니지 않느냐. 마음이 지치면 먼길을 못간다. 네가 간직한 보답의 그 마음을 한생 등대로 삼고 살거라.》

이렇게 되여 나는 아버지와 선생님들과 동창생들, 나에게 귀중한 모든것을 뒤에 남겨두고 여기 섬마을로 자원해오게 되였다.

지금도 잊을수 없다.

순위도로 떠나는 나를 오래도록 바래워주던 정든 사람들의 모습들과 평양에서 처녀교원이 왔다고 꽃다발을 안겨주고 꽃목걸이를 걸어주던 인심후한 순위도의 인민들과 방어대군인들, 호기심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어린 학생들의 모습을…

그 잊지 못할 모습들과 더불어 시작된 나의 섬생활은 생각처럼 그렇게 쉽지 않았다. 이제는 귀에 익은 저 유정한 파도소리와 갈매기소리가 처음에는 몹시도 설어 밤잠을 설친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때로는 파도를 일으켜 절벽을 치고 모든것을 쓸어갈듯 사납게 불어치는 폭풍에 가슴이 섬찍하여 뒤집어쓴 이불속에서 나올념도 못하였다.

섬마을학생들에게 륙지의 자연상태에 대해 가르치기도 힘들었고 그들에게 발표력을 키워주기는 더욱 힘에 부치였다.

하지만 나약해질세라 주저앉을세라 나를 불러일으키는 손길이 있었으니 그것은 여기 순위도에 비쳐지는 어머니당의 따뜻한 사랑이였다.

어머니당에서는 첫 걸음을 뗀데 불과한 나의 가슴에 《김정일청년영예상》을 안겨주었고 제13차 전국교육일군대회와 제2차 전국청년미풍선구자대회의 높은 연단에도 불러주었던것이다.

그뿐이 아니였다.

섬마을학생들에게 해마다 교복과 학용품이 안겨지고 섬에는 현대적인 살림집들이 일떠서 행복의 보금자리들에서는 즐거운 웃음소리 넘쳐흐른다.

정녕 지도에 작은 점으로 표시된 여기 순위도도 당중앙뜨락의 한부분이였고 우리들은 그 품에 안겨사는 아들딸들이였다.

나는 매일 아침 교단에 설 때마다 학생들에게 이렇게 묻군 한다.

우리 순위도가 어디에 있는가고.

그러면 학생들은 큰 목소리로 대답한다.

어머니당의 품속에 있다고, 크나큰 사랑의 보금자리에서 자기들이 산다고…

그들의 대답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날의 첫 수업을 시작하군 한다.

어머니조국의 장한 아들딸들을 키우는 교원의 무한한 자랑과 긍지를 안고.

조 봄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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