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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0(2021)년 5월 27일
 

행복의 요람​

 

얼마전 사업상용무로 평양에 올라온 나는 대학동창생을 만나기 위해 그가 살고있는 김책공업종합대학 교육자살림집을 찾았다.

정갈하고 아담하게 꾸려진 전실과 부엌, 여러 살림방들을 돌아보던 나의 눈길은 문득 《행복의 요람》이라고 씌여진 족자에 가 멎었다.

족자에 씌여진 글씨가 전문가의 솜씨보다는 습작인듯한 느낌이 들었다. 족자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나에게 동창생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어머니가 제일 사랑하는 족자야. 어머닌 늘 저 족자를 바라보며 행복의 요람이 있어 추억도 아름다운 어제와 빛나는 오늘이 있다고 이야기하군 해.》

이렇게 말하며 그는 자기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의 어머니는 일흔이 지났으나 오늘도 김책공업종합대학에서 교수, 박사로 생을 빛내이고있었다.

이 궁궐같은 살림집도 바로 그의 어머니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배려로 받아안은 집이였다.

집, 사람들에게 있어서 집은 생활의 터전이고 보금자리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우리 인민은 양지바른 언덕에 초가삼간 지어놓고 오손도손 살아봤으면 하는것을 평생소원으로 간직해왔다.

하지만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겼던 그 세월 우리 인민은 다 허물어져가는 초가집이나 움막에서 사는것이 고작이였고 그나마도 없는 사람은 하늘을 지붕삼아 떠돌아다니지 않으면 안되였다.

수난의 그 세월 그의 어머니의 부모들의 처지도 다를바 없었다.

남의 집 한칸을 세내여 얼마간 살다가는 세방값을 미처 물지 못해 그보다 더 작은 집으로 옮겨가고, 나중에는 남의 집 창고로 옮겨가기를 그 몇번…

그러던 그의 부모들이 처음으로 제집에서 살게 된것은 해방된 새 조선의 주인이 된 그때부터였다.

양지바른 산기슭에 아담하게 일떠선 살림집과 학교며 병원들을 바라보며 너무도 꿈만 같아 눈굽만 찍었다는 부모들의 이야기를 옛말로 들으며 그의 어머니는 성장하였다.

당의 은정속에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그의 어머니는 자기의 희망대로 나라의 과학기술인재를 키워내는 교육자가 되였다.

어머니당에서는 후대교육사업에 지혜와 열정을 바쳐나갔을뿐 나라를 위해 크게 한 일도 없는 그의 어머니에게 천리마거리살림집을 안겨주었다.

새 집에 이사하던 날 그의 어머니는 마음속에 끓어넘치는 고마움을 《행복의 요람》이라는 족자에 담았다고 한다.

자애로운 당의 손길은 그의 어머니의 인생길에 끝없이 흘러들었다.

당에서는 그의 어머니를 비롯한 녀성교육자들에게 광복거리의 새 살림집들을 또다시 안겨주었고 몇년전에는 대동강반에 일떠선 미래과학자거리의 현대적인 살림집에로 이사하여 인생의 로년기에도 교육사업에 전심전력하도록 하였다.

《우리 어머니는 새집에 이사짐을 풀 때마다 이 족자를 다시금 바라보군 해.》

행복의 요람.

족자의 글발을 되새겨볼수록 한 교육자가정의 행복한 모습이 그대로 안겨와 나의 가슴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어찌 이 한가정뿐이랴.

우리 교육자, 과학자들과 인민들에게 안겨줄 최상급의 현대적인 살림집건설을 직접 발기하시고 건설장을 자주 찾아주시면서 그들을 사랑의 금방석에 앉혀주기 위하여 마음쓰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웅심깊은 사랑과 헌신속에 어제는 김일성종합대학 교육자살림집, 위성과학자주택지구, 은하과학자거리, 미래과학자거리, 려명거리가 일떠섰고 오늘은 송신, 송화지구와 보통강강안지구에 현대적인 살림집들이 시간이 다르게 일떠서고있다.

행복의 요람.

나는 이 글발에서 다시금 새겨안았다.

-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에 대한 고마움, 한없이 귀중한 어머니당을 받들어 내 조국을 굳건히 지키고 더욱 빛내여갈 이 땅의 천만인민의 불타는 맹세를.

사리원공업대학 교원 차 영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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