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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0(2021)년 5월 3일
 

하나의 조각상앞에서​

 

얼마전 나는 배천군계급교양관에 대한 취재길에 올랐다.

반제계급교양의 거점으로 훌륭히 개건된 배천군계급교양관은 일제의 조선침략과 섬나라족속들이 우리 민족에게 가한 치떨리는 만행들을 고발하는 각종 사진들과 증거물들, 증언기록들이 전시된 그야말로 일본의 과거죄악에 대한 력사의 성토장이였다.

섬나라족속들에 대한 치솟는 격분을 누르지 못하며 강사의 안내를 받아 2호실에 들어선 나는 하나의 조각상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어린 동생을 홀로 남겨두고 기약없는 길을 떠나야만 하는 가슴찢어지는 아픔의 눈물로 두볼적시는 주인공처녀와 헤여지지 않겠다고 누나의 옷자락을 꼭 부여잡고 품에 안겨 애처롭게 올려다보는 남동생을 형상한 조각상이였다.

꽃같은 조선처녀들을 일본군성노예로 끌고가 그들의 청춘을 유린하고 생명까지 앗아간 일제의 특대형반인륜죄행을 폭로하는 사진자료들을 배경으로 전시된 조각상에서는 금시라도 《누나야 가지마, 가지마》 하는 남동생의 울음섞인 목소리가 들리는듯싶고 끌려가지 않으면 안되는 누나의 피맺힌 원한이 들리는듯싶어 나의 가슴은 칼로 저며내는듯 쓰리고 아팠다.

보면 볼수록 조선녀성들을 강압적으로 끌어다가 무참히 짓밟고 롱락한 섬나라 오랑캐무리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심이 활화산처럼 타올랐고 TV와 신문, 그리고 취재길에서 알게 된 일본군성노예피해자들의 쓰라린 과거가 한꺼번에 련상되였다.

내가 취재길에서 알게 된 벽성군 석담리에서 살던 일본군성노예피해자 리종녀녀성도 그러한 녀성들중 한명이였다.

1920년대초 어리광을 부려야 할 애어린 나이때부터 천대와 멸시속에 지주집에서 종살이를 한 리종녀녀성은 청춘시절에 들어서자 마을의 한 청년과 약혼을 하고 새살림의 꿈을 꾸게 되였다.

그러나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약혼자가 징용에 끌려가 목숨을 잃고 얼마후에는 그도 마을에 달려든 왜놈들에게 유괴되였다.

그가 다른 처녀들과 함께 끌려간 곳은 인천에 있는 크지 않은 벽돌집이였는데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왜놈들이 미친듯이 달려들었다. 매일 15~20명씩 달려드는 짐승같은 침략군무리로부터 참기 어려운 치욕을 당해야 했고 놈들의 요구에 순응하지 않는다고 하여 군화발에 걷어채이고 칼에 찔리우며 죽음의 고비를 몇번이나 넘겨야 했는지 모른다.

한번은 지겹게 달려드는 왜놈의 짐승같은 만행에 분격한 리종녀녀성이 이발로 놈을 물어뜯었다. 그러자 그놈은 그를 때리다 못해 옷을 벗겨 알몸으로 만들어놓고는 바줄로 꽁꽁 묶은 다음 그의 몸에 불질을 해댔다.

생살을 태우는 냄새가 온 방안을 꽉 채웠다. 그가 고통속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며 놈은 좋다고 히히닥거렸고 리종녀녀성은 끝내 의식을 잃고말았다.

고마운 사람들에 의해 그후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그는 숨어살다가 해방을 맞이하게 되였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해방의 기쁨과 함께 차례진 새 생활의 기회는 일제에게 당한 치욕의 상처를 더욱 아프게 허비였다.

그에게도 여러명의 청혼자들이 나섰지만 그는 녀성으로서의 초보적인 권리마저 스스로 포기하고 가정도 없이, 귀여운 자식도 없이 홀로 고통속에 몸부림치며 살았다.

이것이 어찌 그 하나만의 고통이였겠는가.

우리 조선녀성들, 조선인민이 겪은 불행이고 고통이였으며 일본제국주의가 남긴 피의 상처였다.

하기에 리종녀녀성은 이렇게 절규하였다.

《지금도 나는 깊은 밤에도 때없이 소스라쳐 깨여나 악몽에 시달리군 한다, 일제에게 끌려가 성노예살이를 강요당한 그 치욕스러운 나날들은 눈에 흙이 들어간대도 잊을래야 잊을수가 없다, 나만이 아닌 20만에 달하는 조선녀성들이 정조를 유린당하고 인권과 존엄, 지어 목숨까지 무참히 빼앗겼으니 일본이 과거 우리 녀성들,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죄악이야말로 천추에 용납 못할 만고죄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나라것들은 성노예범죄를 비롯하여 과거에 저지른 특대형죄악에 대해 사죄하고 배상할 대신 한사코 부정해나서고있으며 여기에 《법관》의 탈을 쓴 남조선의 친일매국역적들이 국제법과 관례를 운운하며 일본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할수 없다느니, 《위안부합의》는 《국가》간 합의라느니 뭐니 하는 해괴한 나발을 불어대며 일본군성노예피해자손해배상청구소송을 기각시킴으로써 과거죄악을 부정하는 일본의 파렴치한 행위를 더욱 부추기는 반역적망동까지 서슴지 않고있다.

남조선인민들과 일본군성노예피해자들이 친일역적들의 이번 판결을 《일본에 손을 들어준 판결》, 《친일매국행위》라고 단죄규탄하면서 강력히 반발하고있는것은 천만번 정당하다.

력사의 진실과 정의는 그 누가 강변하다고 하여, 《법》의 허울을 쓰고 판결한다 하여 달라질수도 고쳐질수도 없다.

이런 생각을 하느라니 나에게는 그 조각상이 무심히 보이지 않았다. 력사의 증견자, 준엄한 론고장이 되여 이렇게 웨치는듯싶었다.

백배, 천배로 복수해달라, 하늘땅 끝에 가서라도 기어코 우리 녀성들, 우리 민족이 당한 불행과 재난의 대가를 천백배로 받아내달라…

민주조선사 기자 강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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