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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0(2021)년 5월 31일
 

우리들의 자애로운 어버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은 혁명가적풍모에 있어서나 인간적풍모에 있어서나 그 누구도 견줄수 없는 위인중의 위인이시다.》

네형제의 막내인 나는 어버이수령님의 한없이 따사로운 품속에서 세상에 두번다시 태여난 사람이다.

나를 낳아준것은 부모이지만 생명이 경각에 이르렀던 나를 소생시켜주시고 수십년세월 애지중지 키워주신분은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평양고무공장의 모범로동자였던 나의 아버지는 불의에 달려든 미제야수들의 폭격으로 희생되였다. 그로부터 몇년후 가정의 모든 짐을 걸머지고 딸자식 넷을 키우던 어머니마저 뜻하지 않은 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때 어머니가 일하던 공장에서는 홀로 살던 아주머니를 보내여 같이 살면서 우리 네 형제를 돌봐주도록 하였다.

그런데 얼마후에는 그 녀인마저 제대된 남편을 따라 원산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였다.

부모도 없고 친척도 없는 어린것들을 두고 가자니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문턱을 넘지 못하던 그 녀인은 네 형제중의 막내인 나를 자기가 맡아 키우겠다고 하면서 데리고 떠났다. 이렇게 되여 세 언니들은 평양에서, 나는 원산에서 서로 갈라져 살게 되였다. 원산으로 간지 얼마 안되여 나는 심하게 앓게 되였는데 특히 머리에 생긴 종처는 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였다. 그무렵 둘째언니가 낯선 일군들과 함께 나를 찾아왔다.

거기에는 감동깊은 사연이 있었다.

주체49(1960)년 4월 29일 한 일군을 부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새 교복을 타입은 학생들이 보고싶다고 하시며 데려오도록 하시였다. 일군은 공원에서 뛰여노는 몇명의 학생들을 차에 태워가지고 어버이수령님께로 갔다.

그들속에는 우리 둘째언니 최영옥도 있었다. 새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모습을 세심히 살펴보시며 환한 웃음을 지으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어 그들의 부모형제들에 대해서 물으시였다. 그때 언니로부터 우리 가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못내 가슴 아파하시였다.

언니가 돌아간 후 일군을 보내시여 집형편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밤중에 차를 또 보내시여 우리 세 언니들을 몸가까이 불러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우리 형제들이 살아온 경위를 들으시고 원산에 있는 동생을 데려다 학원에서 한데 모여살도록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그날 일군들과 함께 평양으로 올라온 나는 의사선생님들의 집중적인 치료를 받게 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꺼져가는 한 나어린 소녀의 생명을 소생시켜주시기 위해 중앙병원의 유능한 의사선생님들과 함께 갖가지 희귀한 보약들과 의약품 그리고 과일들이 들어있는 지함까지 보내주시였다.

나는 그때 머리맡에 가득 쌓여있는 귀한 약품들과 향기로운 과일들을 보면서 태여나 처음으로 친아버지의 사랑을 뜨겁게 느꼈다. 그 사랑이 그대로 불사약이 되고 생명의 활력소가 되여 나는 기적적으로 소생하게 되였다.

자나깨나 그리던 어버이수령님을 처음 만나뵈옵던 날 수령님께서는 상처자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나의 머리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으시며 못내 기뻐하시였다. 인자하신 그 모습은 정녕 친자식을 돌보는 어버이의 모습 그대로였다.

9살 나이의 어린 가슴에 파고들던 어버이수령님의 자애로운 음성이 수십년세월이 흐른 오늘까지도 귀전에 들려오는것만 같다.

우리 네 형제가 《아버지! 아버지!》라고 부르며 달려와 스스럼없이 안길 때면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사랑의 넓은 품에 꼭 껴안아주시며 다심한 사랑을 부어주시던 어버이수령님이시였다.

우리 네형제들에 대한 어버이수령님의 사랑은 정녕 끝이 없으시였다.

주체56(1967)년 11월 30일, 또다시 우리 형제들과 함께 오랜 시간 자리를 같이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헤여지기에 앞서 대학에 다니자면 용돈도 있어야 할것이라고 하시며 한 일군에게 자신께서 받으신 생활비를 가져오라고 이르시였다.

우리들은 너무도 송구스러워 어찌할바를 몰라하며 대학에서 장학금을 주기때문에 일없다고 말씀올렸다. 하지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장학금만 가지고서는 모자랄 때도 있을것이라고, 그러니 아버지가 주는것으로 알고 어서 받으라고 하시면서 끝내 우리들의 손에 돈을 쥐여주시였다.

아버지가 주는 돈, 우리 형제의 눈가에서는 뜨거운것이 줄지어 흘러내렸다.

과연 고금동서 그 어디에 부모잃은 네 형제의 친부모가 되여 대학공부기간의 용돈까지 념려하며 자신의 생활비까지 보태준 수령이 있었던가.

언제인가는 우리 형제들에게 털실로 짠 머리수건과 양말을 안겨주시고 날씨가 차지는데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머리수건을 꼭 쓰고가라고 거듭 말씀하시며 마가을의 찬바람을 오래도록 맞으시며 바래워주시던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정녕 우리 형제들에게 베풀어주신 어버이수령님의 깊고도 깊은 사랑과 은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다.

어느덧 이제는 머리에 흰서리를 얹었지만 나는 오늘도 이렇게 웨친다.

-어버이수령님은 이 세상의 아버지, 어머니들의 사랑을 다 합친것보다 더 뜨겁고도 다심하신 사랑으로 우리들을 안아키우신 자애로운 스승, 우리의 친아버지이십니다.

최 영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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