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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0(2021)년 5월 6일
 

한명도 소중하다​

 

《붕-!》

배고동소리가 울렸다.

나서 자란 정든 도시를 떠나 멀리 외진 섬으로 가는 나에게는 그것이 마치도 새 생활의 시작을 알리는 전주곡과도 같이 느껴졌다.

나는 얼마전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섬분교에 교원으로 가겠다고 자원하였다.

내가 이런 결심을 결코 쉽게 내린것은 아니다.

어릴 때부터 예술에 남다른 취미를 가지고있었던 나는 어서 커서 아이들에게 춤이랑 노래랑 배워주는 《선생님》이 되리라 생각하였다. 그때 내가 상상한것은 넓다란 무용실과 갖가지 악기들이 주런이 놓여있는 음악실이 있는 큰 학교의 음악교원이 되는것이였다. 이 나라에 륙지와 멀리 떨어진 자그마한 섬들이 있고 그 섬에도 아이들이 있으며 그들을 위한 학교가 있다는것을 알기에는 그때의 내 나이가 너무 어리였다.

그러나 철이 들면서 나는 외진 섬과 최전연지대, 산골마을에도 아이들을 위한 학교들이 수없이 많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하지만 나의 머리속에는 한가지 의문점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마냥 그냥 맴돌았다.

(그 몇명 안되는 아이들을 위해 학교가 있고 선생님이 있다니?! 차라리 그들을 모두 우리 학교같은 큰 학교에 데려다 공부시키면 안될가?)

나는 혼자의 힘으로는 종시 풀길 없는 《수수께끼》의 답을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찾기로 생각하고 어느날 어머니에게 이렇게 물어보았다.

《어머니, 섬분교의 아이들도 다 데려다 우리 학교에서 함께 공부하면 좋겠어요. 그러면 그애들도 외롭지 않고 훌륭한 큰 학교에서 공부할수 있지 않나요?》

나의 천진한 물음에 어머니는 《그럼 엄마가 하나 물어볼가? 평양 큰아버지네 집에 갔을 때 나흘을 못참구 엄마가 보고싶어 다시 오겠다고 떼를 쓴건 누구더라? 우리 정심이가 아니구 어느 다른 집 애겠지?》라고 하시며 나의 볼을 다독여주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이 말이 나에게 섬분교의 필요성을 완전히 인식할수 있을만큼 설득력을 가지지는 못하였다.

나에게 섬분교가 한생의 선택으로 자리잡기 시작한것은 과연 언제부터였던가.

조선소년단창립절을 맞으며 소년단대회에 몸소 참석하시여 학생소년들을 축하해주시며 그들을 사랑의 한품에 안아주시는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자애로운 영상을 눈물속에 뵈올 때부터였다.

섬분교와 최전연지대, 산골학교들에 자원진출한 교원들을 만나시고 그들모두의 순결한 애국심에 머리가 숙어진다고, 온 사회가 이들을 적극 내세워주어야 하며 그들이 지닌 혁명가적인생관, 후대관을 따라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는 보도에 접하고나서 섬분교는 내 삶의 드놀지 않는 선택으로 되였다.

그렇다.

교원혁명가라는 부름앞에 떳떳할수 있는 교육자의 량심과 자세는 땅속에 묻힌 보석과도 같고 거목을 떠받드는 보이지 않는 뿌리와 같아야 하는것이다.

내가 가는 섬분교에는 한명의 학생이 있다. 그러나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아끼고 사랑하시는 아이들은 한명도 소중하다.

내가 배워줄 한명의 학생이 위대한 우리 조국의 기둥감으로 자라날 때 나는 더 바랄것이 없다.

섬이 가까워질수록 거기에 있는 분교가 이 세상에서 제일 크고 훌륭한 학교로 나의 망막에 비껴왔다.


신의주제2사범대학 졸업생 함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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