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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0(2021)년 4월 24일
 

《들꽃소녀》, 이 부름을 들을 때면​

 

나는 오늘도 사람들속에서 《들꽃소녀》라는 류다른 이름으로 불리우고있다.

이제는 한가정의 주부로, 어엿한 녀성일군으로 자라나 소녀의 나이를 훨씬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부름을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긴다.

모두가 정답게 부르는 《들꽃소녀》, 이 부름을 들을 때면 정말 생각이 깊어지고 가슴은 뜨거워만 진다.

하다면 평범한 소녀였던 내가 어떻게 되여 온 나라가 다 아는 《들꽃소녀》로 불리우게 되였겠는가.

지금도 나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을 만나뵙던 영광의 그날을 잊을수 없다.

내가 혁명의 군복을 입고 보람찬 군사복무의 나날을 보내고있던 주체92(2003)년 1월 어느날 우리 부대에 찾아오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나를 몸가까이 불러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군복을 입은 모습을 보니 정말 반갑다고 하시며 나의 손을 다정히 잡으시고 몇년전의 일을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

주체85(1996)년 6월 어느날이였다.

나는 동생을 데리고 옆집동무와 함께 해마다 그러했던것처럼 들꽃들을 하나둘 엮어서 자그마한 들꽃묶음을 만들었다.

아침일찍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현지지도표식비를 찾아가 인사를 올리고 그 들꽃묶음을 드린 우리들은 공부를 마치고 학교에서 돌아오던 길에 다시 그곳에 들려 주변을 정성껏 관리하였다.

바로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 현지지도표식비를 찾으실줄 어이 알았으랴.

그때 일을 감회깊이 돌이켜보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사람들의 발길이 잘 미치지 않는 외진 곳의 현지지도표식비앞에 희한한 꽃다발이 아니라 들판에 흔히 있는 꽃을 가지고 만든 들꽃묶음이 놓여있었다고 하시면서 그것을 보는 순간 자신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그리움이 더해져 눈물이 나오는것을 어쩔수 없었다고, 들꽃묶음을 놓은것을 보니 어른이 아니라 어린이들의 소행같았다고, 그래서 더 눈물이 났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전후복구건설시기 종파놈들이 쏠라닥거릴 때 어버이수령님께 힘을 준 사람이 태성할머니였다면 고난의 행군시기 자신께 힘을 준 사람은 이 들꽃묶음의 주인공들이라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너무도 과분한 평가의 교시를 받아안던 그때의 감격과 격정을 한두마디의 말로 다 표현할수 없다.

어제는 철부지소녀의 가슴에 김일성소년영예상이 빛나게 해주시며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주시고 그후에는 혁명의 군복을 입고 조국보위초소에 서있는 나를 몸가까이 불러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신 위대한 장군님이시였다.

그날의 들꽃묶음, 지금도 생각해보면 너무도 소박한 들꽃묶음이였다.

하지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변함없이 당을 믿고 따르는 우리 인민의 마음을 읽으시였고 그래서 우리들의 소행을 그처럼 못잊어하신것이다.

위대한 장군님의 크나큰 믿음과 사랑속에 나는 어엿한 녀성일군으로 자라났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들꽃소녀》로 불리우며 복받은 삶을 누려가고있다.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는 내가 당을 따르는 한길에서 영원한 《들꽃소녀》로 살도록 끝없이 내세워주시고 성장의 걸음걸음을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자연의 꽃은 한계절 피고 지면 그 향기도 잃게 된다. 허나 위대한 태양의 품속에서 피여난 꽃은 아름다움도 향기도 영원하다.

나는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산천이 변하여도 위대한 수령님들에 대한 깨끗한 충정의 마음을 변함없이 간직하고 경애하는 원수님의 령도따라 새로운 승리를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는 오늘의 진군길에서 그날의 《들꽃소녀》로 한생을 빛나게 살겠다.

김 명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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