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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9(2020)년 12월 16일
 

딸애의 물음앞에서​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한평생 오로지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다 바치시면서도 자신을 위해서는 그 무엇도 남기지 않으시고 순간의 휴식도 없이 초강도강행군길을 이어가시다가 달리는 렬차에서 순직하신 장군님과 같으신 그런 령도자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생활에는 생각지 않았던 일들에서 깊은 감명과 자극을 받는 때가 있다.

그런 계기가 나에게도 있었다.

얼마전 80일전투의 마지막돌격전인 화차수리에서 제기되는 기술혁신과제협의회를 끝마치고 청사에서 나올 때였다.

손전화착신음이 울려와 번호를 보니 집에서 오는 전화였다.

《아버지, 나 례영이예요.》

소학교 1학년생인 사랑하는 외동딸에게서 온 전화였다.

《응, 우리 례영이 공부 잘하나요? 무슨 일로 전화하니?》

《예. 공부를 하고있어요. 아버지, 이자 〈로동신문〉을 보다가 인민행렬차라는 글을 보았는데 이 렬차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가는 렬차나요?》

《?!》

반가움속에 대화를 이어가던 나는 뜻밖의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잠시 생각해보니 내가 집에서 자주 외우던 평양-두만강행, 신의주–평양행 등 렬차들의 달림구간은 알수 있으나 《인민행》이라는 렬차의 운행구간에 대해서는 전혀 리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였다.

나는 딸에게 저녁에 퇴근하여 말해주겠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다음순간 나의 마음속에는 딸애가 던진 물음이 일으킨 뜨거운 격정의 파도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인민행렬차!

이 말을 되새길 때면 어버이장군님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으로 더욱 가슴을 불태우는 우리 인민들이다.

일찌기 혁명의 길에 나서신 첫시기부터 인민들속에 들어가 고락을 같이하는것을 어길수 없는 신조로 삼으시고 혁명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인민행렬차의 기적소리를 끝없이 울려가신 우리 장군님이시였다.

9년전 못 잊을 12월의 그날에도 일군들이 장군님, 이 길만은 절대로 떠나시면 안됩니다, 지금상태로는 못 떠나십니다라고 그렇듯 애원하며 무작정 그이의 앞길을 막아섰건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수령님 맡기고 가신 사랑하는 조국과 인민을 위해 또다시 인민행렬차에 오르시였다.

정녕 자신께서 헌신하는것만큼 인민에게 행복이 차례진다는 비상한 사명감을 안으시고 우리 장군님 인민행렬차를 타시고 얼마나 많은 거리를 달리시였고 얼마나 많은 만복의 씨앗을 뿌리시였던가.

렬차가 발명된 때로부터 수백년이 흘렀지만 인민행렬차라는 말은 그 어느 사전에도 없고 그 어느 나라에서도 들을수 없다.

이는 오직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신 절세위인, 인민의 어버이들을 높이 모신 내 조국에서만 불리우는 말이다.

생각할수록 가슴이 더욱 뜨거워진다.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한평생 타고오신 인민행렬차의 집무실에서 인민에 대한 열화같은 사랑과 정으로 한자한자 수도의 당원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쓰신 경애하는 원수님.

그 사랑에 떠받들려 올해 피해지역의 곳곳마다에 얼마나 많은 인민의 행복의 보금자리들이 훌륭히 일떠섰던가.

그렇다.

인민행렬차는 인민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치신 위대한 수령님들과 수령님들의 인민사랑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인민을 위한 멸사복무의 길을 걷고 또 걸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하늘같은 사랑과 불멸의 헌신에 대한 인민의 다함없는 칭송이고 최대의 경의이다.

이런 생각에 잠겨있느라니 위대한 장군님의 애국념원, 강국념원을 받들어 오늘도 우리 원수님께서 높이 울리시는 인민행렬차의 기적소리가 들려오는것만 같았다.


평양기관차대 수리중대장 김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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