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애의 물음앞에서
《한평생 오로지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생활에는 생각지 않았던 일들에서 깊은 감명과 자극을 받는 때가 있다.
그런 계기가 나에게도 있었다.
얼마전 80일전투의 마지막돌격전인 화차수리에서 제기되는 기술혁신과제협의회를 끝마치고 청사에서 나올 때였다.
손전화착신음이 울려와 번호를 보니 집에서 오는 전화였다.
《아버지, 나 례영이예요.》
소학교 1학년생인 사랑하는 외동딸에게서 온 전화였다.
《응, 우리 례영이 공부 잘하나요? 무슨 일로 전화하니?》
《예. 공부를 하고있어요. 아버지, 이자 〈로동신문〉을 보다가 인민행렬차라는 글을 보았는데 이 렬차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가는 렬차나요?》
《?!》
반가움속에 대화를 이어가던 나는 뜻밖의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잠시 생각해보니 내가 집에서 자주 외우던 평양-두만강행, 신의주–평양행 등 렬차들의 달림구간은 알수 있으나 《인민행》이라는 렬차의 운행구간에 대해서는 전혀 리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였다.
나는 딸에게 저녁에 퇴근하여 말해주겠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다음순간 나의 마음속에는 딸애가 던진 물음이 일으킨 뜨거운 격정의 파도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인민행렬차!
이 말을 되새길 때면
일찌기 혁명의 길에 나서신 첫시기부터 인민들속에 들어가 고락을 같이하는것을 어길수 없는 신조로 삼으시고 혁명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인민행렬차의 기적소리를 끝없이 울려가신 우리
9년전 못 잊을 12월의 그날에도 일군들이
정녕
렬차가 발명된 때로부터 수백년이 흘렀지만 인민행렬차라는 말은 그 어느 사전에도 없고 그 어느 나라에서도 들을수 없다.
이는 오직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신
생각할수록 가슴이 더욱 뜨거워진다.
그 사랑에 떠받들려 올해 피해지역의 곳곳마다에 얼마나 많은 인민의 행복의 보금자리들이 훌륭히 일떠섰던가.
그렇다.
인민행렬차는 인민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치신
이런 생각에 잠겨있느라니
평양기관차대 수리중대장 김정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