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자랑
《창성군은
나에게도 그런 계기가 있었다.
어느날 어린 조카가 나에게 고향이 어디인가고 물어보는것이였다.
내가 창성이라고 대답하자 조카는 활짝 웃으며 《그럼 큰아버지와 나는 고향이 같구나.》 하며 련이어 우리 고향의 자랑이 무엇인가고 나에게 묻는것이였다.
《갑자기 그건 왜 묻니?》
《선생님이 숙제로 내주었어요.》
그제서야 깨도가 되여 머리를 끄덕인 나는 우리 고향의 자랑이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우리 고향의 자랑, 내 고향 창성에 대한 자랑을 꼽자면 아마 학습장이 모자랄것이다.
문득 군사복무시절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내가 군사복무기간 이동훈련으로 서해지구에 나갔던적이 있었다.
산골태생인 나에게 있어서 바다는 그야말로 신비의 세계였다.
휴식참에 무연한 감탕밭에서 긁개로 숭숭 구멍이 난 자리들을 훑으면 애기주먹만 한 조개들이 나오군 하였는데 그것을 캐는 재미란 여간한것이 아니였다.
그때 서해지구에서 입대한 내또래 동갑이가 자기 고향에 대한 자랑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이 휴식참에는 저저마다 자기가 나서자란 고향을 자랑하는 고향자랑모임으로 이어졌다.
누구는 자기 고향이 과일이 많아 소문이 났다고 하고 또 누구는 자기 고향이 약밤과 온천으로 유명하다고 하는 등 저저마다 고향자랑에 시간가는줄 몰랐다.
이때 소대장동지가 우리 이야기를 다 들은듯 다음날 휴식시간에 자기 고향에 대한 짤막한 글들을 써서 발표하자고 하는것이였다.
고향자랑!
누구나 쉽게 쓸수 있고 그리 힘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휴식시간은 정말 굉장했다.
금수강산 내 나라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으로 저도모르게 가슴들먹이게 하는 글들이 연방 나왔다.
매 대원들의 발표가 끝날 때마다 소대장동지는 제일먼저 박수도 쳐주고 잘 썼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느덧 내 차례가 되였다.
《우리 고향에 대한 자랑을 쓰라면 왜서인지 가슴부터 쩌릿이 젖어옵니다.
저는 창성이라는 지명이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내 고향 창성이 온 나라가 알고 온 세상이 아는 고장으로 자랑떨치게 된데는
궁벽한 산골군의 사람들을 잘살게 하여주시려 궂은날, 마른날 가림없이 창성군을 찾으신
산을 낀 곳에서는 산을 잘 리용하여야 한다시며 살림살이방도도 하나하나 가르쳐주신
그리하여 그 옛날 모지랑호미로 메마른 땅을 뚜지면서 한해 뼈빠지게 농사를 지어도 반년식량도 안되여 도토리나 풀뿌리, 나무껍질로 목숨을 근근히 이었고 눈보라치는 겨울에는 홑베잠뱅이에 초신바람에 다녀야 했다던 창성사람들이 이제는 산에서 나는 갖가지 산과일로 특산식품을 만들어먹으니 부족한것이 없고 양털이불이며 희한한 새 문화주택이며 부러운것없이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옛날에는 땅이 꺼지는 한숨소리밖에 들리지 않던 내 고향땅에 봄이면 싱그러운 산나물향취가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가을에는 황금산에서 갖가지 산열매를 따는 처녀총각들과 녀인들의 호함진 웃음소리, 노래소리가 울려퍼지고있습니다.
나는 자랑합니다, 내 고향을.
그 어디에도 비길수 없는
그 순간 터져오른 박수소리를 나는 지금도 잊을수 없다.
내 고향 창성의 자랑에 공감한 소대원들의 진심어린 박수였다.
그런데 오늘은 나어린 조카애가 또다시 고향자랑에 대하여 묻는다.
나는 더욱더 변모되여가는 내 고향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우리 고향 인민들이 삼가 올린 편지를 보아주시고 노래에도 있듯이 창성은 앞으로도 영원히 지난해와 또 달라지는 땅, 인민들의 행복의 웃음이 넘쳐나는 락원의 땅이 되여야 한다는 믿음어린 친필서한을 보내주신
우리
나는 창성땅에 어리여있는
정 일 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