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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9(2020)년 12월 19일
 

민족구기운동 - 격구​

 

격구는 고구려에서 발생하여 발해와 고려를 거쳐 조선봉건왕조시기에 크게 발전된 말타기와 구기가 배합된 무술운동이다.

격구는 일정한 수의 선수가 좌우 두 패로 갈라져 마당가운데 있는 공을 향해 일제히 말을 몰아 한 선수가 먼저 공을 차지하면 다른 선수는 물러서며 공을 가진 선수가 채로 공을 몰고가 일정한 거리에서 구문에 처넣는 방법으로 진행하는 무술체육경기였다.



《고려사》와 《조선봉건왕조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체육경기로서 활쏘기와 함께 가장 많이 진행된것이 격구였다.

격구는 출전하는 선수마다 위세를 돋구기 위해 말안장과 격구채를 사치하게 하면서 격구도구 등을 각이하게 만들어 썼으나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와서 그 크기와 형식과 방법을 규범화하였다.

1467년에 편찬된 《경국대전》에 의하면 《출발점으로부터 공을 넣는 지점까지는 50보(약 60m), 구문(공문)의 너비는 5보(약 6m), 공을 놓는 지점으로부터 구문까지 거리는 200보(약 240m)이여야 한다.》라고 기록되여있다.

이 격구장의 규격은 조선봉건왕조후반기까지 전해져 《무예도보통지》에까지 그대로 기록되게 되였다.

격구에 사용되는 기재로서는 공을 치는 장시와 나무로 만든 공인 목구가 있었다.

장시는 공을 치는 긴 막대기로서 크게 시부와 명부로 이루어져있다. 그중 시부는 주걱같은 모양의 둥근 부분을 말하는데 이것을 비라고 표기하였다.

명부는 시부에 달린 긴 자루를 말한다.

시부의 길이는 9촌(약 27cm), 너비 3촌(약 9cm)이며 명부의 길이는 3척 5촌(약 105cm)이였다.

조선봉건왕조시기 격구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붉은색의 철릭을 입고 머리에는 종립을 썼다.

철릭은 소매가 넓은 저고리와 폭넓은 치마가 하나로 련결된 옷이였다.

종립은 꼭대기에 털이 붙어있는 머리쓰개였다.

격구의 진행방식을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공을 치는 사람이 비이동작(격구채를 목과 귀우로 수직되게 세우는 동작)을 세번 하면서 공이 있는 곳에 온다. 다음 배지동작(격구채를 리용하여 주걱의 안쪽으로 공을 끌어당긴 다음 공중을 향해 공을 높이 들어올리는 동작)으로 공을 치는데 이것을 세번에 걸쳐 수행한다.

그리고 구문을 향하여 공을 치고는 비이자세로 말을 달리다가 수양수의 동작(비이 다음에 손을 들어서 세로 치는것을 수양이라고 하는데 수양이란 손이 높이 올라가고 채가 아래로 드리워져서 흔들거린다는 뜻)으로 공을 구문으로 쳐넣는다.

만일 배지와 지피(배지한 다음 채의 주걱 바깥면으로 공을 굴리거나 던지는것)동작을 수행하고 구문을 향하여 공을 친 다음 공이 굴러가다 멎으면 그것을 다시 칠수 없다.

이러한 자료는 격구진행방식이 째여있었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이 경기는 고려시기와 조선봉건왕조시기 기병들속에서 활발히 진행되였는데 그것은 격구가 말타고 하는 활쏘기와 칼쓰기, 창쓰기의 묘리를 체득하는데서 필요한 경기종목으로 인정되였기때문이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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