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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9(2020)년 11월 22일
 

일화를 통해 본 세계적인 유전학자 계응상 (1)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인민이 낳은 세계적유전학자이며 육종학자인 계응상선생도 민족적자존심이 남달리 강하고 과학적신념이 뚜렷한 사람이였습니다.

공화국의 자랑스러운 력사와 더불어 영생하는 사람들속에는 과학으로 조국의 존엄을 떨친 계응상선생도 있다.

공화국의 첫 박사로, 세계적으로 이름난 유전 및 잠학자로 삶을 빛내인 계응상선생.

이제 우리는 계응상선생이 남긴 일화를 통하여 순탄치 않은 그의 생을 더듬어보려고 한다.


100점만점으로 중학교에 입학한 화전민의 아들


1893년 12월 27일 평안북도 정주시 석산리의 화전민의 가정에서 태여난 계응상선생은 어려서부터 남달리 배움에 대한 욕망으로 가슴 불태웠다.

계응상선생이 일곱살났을 때였다.

뒤산에서 소를 먹이던 그가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놓아먹이던 소가 남의 집 보리밭에 들어가 파릇파릇 돋아나던 봄보리를 적지않게 축낸것으로 하여 소동이 일어났다.

성이 독같이 오른 아버지가 물푸레나무회초리를 꺾어들고 아들을 찾기 시작했다.

아들이 서당에 갔다는것을 알고 고개너머 웃마을로 찾아갔던 아버지는 서당의 퇴마루에 무릎을 꿇고앉아 문짬으로 울려나오는 글읽는 소리를 받아외우고있는 어린 계응상선생의 모습을 보게 되였다.

눈 한번 깜박거리지 않고 턱방아를 찧으며 동냥글을 외우는데 어찌나 열성이였던지 그는 아버지가 가까이 다가선것도 감감 모르고있었다.

아버지는 발소리를 죽이며 조용히 물러났다.

아들의 향학열에 감복한 아버지는 째지게 가난한 살림이였지만 다음날부터 그를 서당으로 보내였다.

계응상선생은 서당출입을 한지 한주일도 채 되지 않아 《천자》를 뗐다.

그는 가마밑을 긁어 멀건 죽물을 타서 먹대용으로 썼고 넙적한 나무잎을 펴서 망돌에 지질러놓았다가 그우에 풀대로 만든 붓으로 글을 썼다.

그것도 없을 때에는 자그마한 모래함을 만들어놓고 그우에 손가락으로 글을 쓰고는 지우고 또 글을 쓰고는 지웠다.

이렇게 직심스럽게 공부를 한 그는 서울에 올라가 전과목 100점 만점으로 보성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였다. (계속)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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