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주체109(2020)년 11월 9일
 

민속무용 칼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나라에서 고구려시기 인민들과 무사들속에서는 신체를 단련하고 무술을 련마하기 위한 춤이 널리 추어졌으며 칼춤과 창춤을 비롯하여 무기를 가지고 춤을 추는 군사무용이 널리 보급되였다.》

칼춤은 우리 인민들이 창조하고 향유하여온 많은 민속무용들가운데서도 그 력사가 매우 오랜 춤이다.

전쟁마당에서 중요한 무기의 하나로 되여있던 칼은 사람들속에서 승전의 기쁨을 나타내는 상징물로 되였으며 전승을 경축하는 마당에서는 씩씩하고 활달한 검술동작들을 활용한 칼춤들이 널리 추어졌다.

칼춤은 삼국시기에 외래침략자들을 물리치고 조국을 수호하며 삼국통일의 력사적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고구려인민들의 투쟁과정에 상무기풍이 확립됨으로써 더욱 성행하게 되였다.

4세기 고구려무덤벽화들인 고국원왕릉의 벽화와 팔청리무덤의 벽화에는 칼춤이 형상되여있으며 옛 문헌들에도 칼춤을 추었다는 내용이 기록되여있다.

고구려무덤벽화들에 그려진 칼춤들은 모두 긴칼을 들고 추는 장검무형식이다.

칼춤은 고려시기에도 민속무용으로 널리 추어졌다.

고려의 무용으로 전해지는 춤들로는 반침략투쟁을 내용으로 한 《조천무》와 같은 춤들이 있는데 이 춤들에는 검을 들고 추는 칼춤이 기본춤부분으로 되여있어 인민들속에서도 칼춤이 널리 추어졌다는것을 알수 있다.

조선봉건왕조시기 칼춤이 기녀들속에서 널리 추어지면서 특색있는 무용종목으로 발전하였다.

조선봉건왕조시기 전반기에 민간에서는 이전 시기와 마찬가지로 독무와 쌍검무형식의 칼춤이 추어졌는데 검을 돌리거나 내려치는것과 같은 검술동작들을 주동작으로 하면서 검을 틀어잡은 세련된 가짐의 조형적동작을 배합한 높은 기교의 춤으로 예술화되였다.

칼춤의 구성이 째이고 예술적으로 잘 형상되였다는것은 량손에 칼을 들고 휘두르기, 돌리기, 찌르기 등 다양한 칼놀림기법들이 수행되는 속에서도 상대의 몸에 칼이 닿는 일이 전혀 없었던것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칼춤을 보고 문인들은 글에서 《이리저리 휘둘러도 칼끝 닿지 않는구나》, 《적을 사정없이 찌를것 같더니 검이 몸에 못 미치기 겨우 한치도 못되였다.》라고 표현하였는데 이것은 칼춤장면 하나하나가 다 구성이 치밀하였다는것을 보여준다.

조선봉건왕조 후반기에 들어와서 칼춤은 보다 예술화되면서 녀성들이 추는 칼춤이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이때의 칼춤은 크게 두가지 형식으로 발전하였는데 그 하나는 긴칼(장검무보다는 짧고 가벼운것으로서 자루에 구슬을 달고 칼등에 장식을 하였다.)을 두손에 들고 추는 쌍검무형식이며 다른 하나는 자루목이 꺽인 칼날을 돌리며 추는 짧은 칼춤형식이였다.

이처럼 칼춤은 그 어느것이나 무술을 련마하여 나라를 지키기 위한 우리 인민들의 애국심이 반영되여있는 춤으로서 민족의 슬기와 락천적기백이 담겨져있는 우수한 민족무용유산의 하나이다.

본사기자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되돌이 추천하기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