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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9(2020)년 10월 19일
 

꿈을 이룬 미술신동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선화를 기본으로 하여 미술을 발전시켜 조선화를 다른 미술형식에 확고히 앞세우는것은 우리 당의 시종일관한 방침이다.》

공화국의 종합적인 미술창작기지인 만수대창작사의 조선화창작단에는 인물화를 특별히 잘 그리는 미술가인 오은별도 있다.

그는 어릴적부터 미술신동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자아냈다.

미술가였던 아버지의 재능을 그대로 넘겨받았는지 그는 걸음마를 떼기 전부터 손에 여느 놀이감보다 크레용이나 붓을 먼저 쥐였다.

그의 천성적인 소질과 재능의 싹을 귀중히 여겨 나라에서는 그가 전문부문에서 체계적으로 배우도록 해주었다.

하나를 배워주면 둘, 셋을 받아들이는 그의 재능은 그를 가르치는 스승까지도 감동시키군 하였다.

그는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첫 1년동안에만 하여도 근 400점의 정물화를 그렸다.

5살때부터는 전문가들치고 그를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였다.

제12차 세계청년학생축전(1985년)에서 그가 그린 그림이 널리 알려진 이후 여러 국제미술전람회들과 국제어린이그림현상모집에서 그의 작품들이 특별상, 금메달 등을 수여받고 여러 나라들에서 개인미술전람회까지 진행되면서 그는 국외에까지 명성을 떨치게 되였다.

이렇듯 품고있는 희망도 재능도 모두 꽃피워주는 고마운 사회주의제도의 품속에서 훌륭한 미술가가 되려는 그의 꿈은 나날이 커만 갔으며 절세위인들의 사랑의 손길아래 더욱 활짝 꽃펴나게 되였다.

9살나던 해인 1989년 12월 31일에 그는 설맞이모임에 참석하시기 위해 만경대학생소년궁전을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옵는 크나큰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러 국제무대들에서 1등을 한 그의 재능을 높이 평가해주시면서 우리 나라에서만 이런 재간둥이들이 나올수 있다고, 참으로 재간이 있다고 하시며 그를 비롯한 꼬마재간둥이들을 한품에 안으시고 사랑의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다.



- 오은별이 6살때 그린 조선화(우)와 9살때 그린 조선화(아래) -


절세위인들의 따사로운 사랑의 품속에서 그는 재능의 나래를 활짝 펼치였으며 중학교과정을 마치고 평양미술대학 조선화학부에 입학하여 박사원과정까지 마쳤다.

이 기간에 그는 대학창립을 맞으며 진행된 2차의 전람회들과 주체91(2002)년에 열린 전국신인미술전람회에서 각각 1등을, 주체92(2003)년에는 국가미술전람회의 입상자가 되여 교원들과 전문가들을 놀래웠다.

대학졸업후 그는 소원대로 관록있고 실력있는 창작집단인 만수대창작사의 미술가가 되였다.


- 오은별의 작품들중에서 -


지금까지 그가 창작한 수많은 조선화들중에는 국가미술전람회를 비롯한 여러 전람회들에서 상장과 메달들을 수여받고 국가소장품으로 등록된 작품들이 적지 않다.

그는 오늘도 절세위인들의 사랑의 축복속에 성장한 미술가의 긍지를 언제나 가슴에 간직하고 국보적작품들을 더 많이 창작하기 위해 자신의 지혜와 열정을 다 바쳐가고있다.


본사기자 리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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