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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9(2020)년 5월 14일
 

웅장하게 솟아있는 력사유적

 

공화국의 평양시 력포구역 룡산리에는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자랑하는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강대한 나라였던 고구려를 세운 동명왕의 무덤이 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동명왕릉을 잘 꾸리고 고구려력사를 널리 소개선전하여야 합니다.

원래 동명왕의 무덤은 고구려의 첫 수도인 졸본에 있었으나 5세기 중엽에 평양이 수도가 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경치아름다운 곳에 자리잡고있는 동명왕릉은 외래침략자들의 도굴만행으로 하여 심히 파괴되였으며 그것마저도 제대로 보존관리되지 못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78(1989)년 4월 친히 동명왕릉을 돌아보시면서 릉을 원상그대로 개건할데 대하여 교시하시고 그후 여러차례 동명왕릉건설총계획사판과 도면을 보아주시면서 개건될 동명왕릉의 매 구조물들의 규모와 형태, 그 위치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구상을 실현하시기 위하여 동명왕릉개건에 강력한 건설력량을 보내주시고 개건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들을 다 풀어주시였다. 그리하여 동명왕릉은 주체82(1993)년 5월에 최상의 수준에서 개건될수 있었다.

개건된 동명왕릉은 크게 왕릉구역, 정릉사구역, 진주못구역으로 나누어져있다.

왕릉구역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친필로 《동명왕릉개건기념비》라고 써주신 기념비와 릉문,《고구려시조 동명성왕기적비》, 제당, 돌조각상돌, 왕릉 등이 있다.

왕릉의 정면에는 돌상과 돌등 그리고 범조각상이 있고 좌우앞으로 오이와 마리, 송양, 재사를 비롯한 문관들과 부분노와 묵거, 무골 등 무관조각상들, 그들이 타던 말조각상들이 세워져있다.

무덤구역의 아래단에는 동명왕의 출생과 활동,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력사적사실들이 씌여져있는 《고구려시조 동명성왕비》와 《고구려시조 동명성왕기적비》가 세워져있다.


- 동명왕릉개건기념비 -


- 동명왕릉 -

동명왕릉으로부터 약 120m 떨어진 곳에는 동명왕의 명복을 빌던 고구려시기의 사찰이였던 정릉사가 있다.

이것은 고구려사람들이 수도를 평양으로 옮겨오기 위한 준비사업의 일환으로 393년에 지은 사찰이다.

정릉사의 부지면적은 3만 7 000㎡로서 세나라시기 사찰들가운데서 규모가 제일 클뿐아니라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있다.

즉 크게 다섯개구역으로 나뉘여져있는데 그 안에 18채의 크고작은 건물들과 탑이 있었고 매 구역과 구역, 건물들사이는 회랑으로 련결되여있다.

이밖에 동명왕릉주변에는 19기의 고구려시기의 돌칸흙무덤들이 분포되여있다. 무덤들에는 동명왕과 함께 고구려를 세우는데 참가하였거나 외래침략자들을 물리치는 싸움에서 용맹을 떨친 장군들과 대신, 학자들이 묻혀있다.

동명왕릉주변의 고구려무덤들은 마치 왕릉을 호위하는것처럼 배치되여있다.

절세위인들의 현명한 령도밑에 훌륭히 개건된 동명왕릉은 오늘도 천년강국이였던 고구려의 위용을 시위하듯 웅장하게 솟아있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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