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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9(2020)년 5월 9일
 

오랜 력사를 가지고있는 누에치기

 

조선에서 누에치기는 오랜 력사와 함께 풍부한 경험과 우수한 전통을 가지고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선조들은 예로부터 목화를 재배하고 누에를 쳐서 실을 뽑아 천을 짜서 옷을 해입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우리 선조들은 일찍부터 메누에를 순화시켜 뽕누에를 치기 시작하였다.

황해북도 봉산군 지탑리유적을 비롯한 신석기 및 청동기시대 유적들에서는 누에를 형상한 질그릇들이 발굴되였는데 이것은 이미 원시사회말부터 누에치기가 진행되여왔다는것을 말해주고있다.

누에치기는 고대시기에 활발히 진행되였다. 옛 기록들은 고조선, 진국에서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쳐서 명주실을 뽑아 여러가지 고운 비단을 짰다고 전하고있다.

삼국시기 누에치기기술은 한계단 더 발전하였는데 특히 고구려가 가장 앞섰다.

고구려에서는 누에치기가 널리 보급되여 금, 견, 사를 비롯한 질좋은 비단들이 생산되였다.

평양시 대성산유적에서 발굴된 평직으로 짠 비단천은 당시 누에치기가 높은 수준에서 진행되였음을 잘 보여주고있다.

삼국시기를 거쳐 고려시기의 누에치기는 더욱 발전하여 명주실(누에고치에서 뽑은 실)로 짠 비단천은 아름다우면서도 가볍고 질긴것으로 하여 세계에 이름을 떨치였다.

《고려사》에는 고려시기 여러 지방에서는 토질이 나빠 경지로 리용할수 없는 산비탈이나 제방뚝같은 땅에 뽕나무를 많이 심어 누에치기를 하였다고 기록되여있다. 또한 12세기초에 고려에 왔던 이웃나라 사람이 쓴 《고려도경》이라는 책에는 《고려에서는 누에치기를 아주 잘한다. 비단실과 천짜기는 모두 우수하다.》고 씌여져있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도 누에치기가 보다 활발히 진행되여 각 지방에 누에치기의 중심지들이 생겨났다.

1481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는 평안도의 덕천, 녕변, 함경도의 금야, 강원도의 문천, 경상도의 상주 등이 누에치기중심지로 알려져있었다고 서술되여있다. 또한 《한정록》을 비롯한 누에치기방법을 소개한 여러 책이 편찬보급됨으로써 력사적으로 내려오면서 축적된 누에치기기술이 종합적으로 수집정리되고 누에치기에서도 합리적인 방법과 기술이 적용되였다.

누에치기력사가 오랜데로부터 민간에서는 《누에가 진 뽑아내듯》, 《누에가 뽕먹듯이》, 《잠자고난 누에같다.》와 같은 속담들이 적지 않게 전해지게 되였다.

이러한 자료들은 우리 선조들이 오랜 옛날부터 뽕나무를 가꾸고 누에를 쳐서 명주실을 뽑아 여러가지 고운 비단을 짰다는것을 실증해준다.

조선로동당의 현명한 령도밑에 우리 공화국에서는 누에치기를 비물질문화유산으로 등록하고 지방의 특성에 맞게 활발히 진행해나가고있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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