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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9(2020)년 2월 17일
 

몇푼의 돈과 바꿀수 없다고 하시며

 

(박명빈)

오늘 우리 인민은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인민대중중심의 고마운 사회주의제도하에서 행복한 삶을 누려가고있다.

그러나 그 행복속에 깃들어있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정력적인 령도와 뜨거운 사랑에 대하여 아는것보다 모르는것이 더 많은 우리 인민이다.

나는 이 글에서 약값에 깃든 어버이수령님의 사랑과 은정에 대한 이야기 하나만을 전하려 한다.

주체64(1975)년 12월 어느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나를 부르시여 보건사업과 관련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고나서 사업에서 애로되는것은 없는가, 제기할것은 없는가고 물으시였다.

친절하신 그 물음에 나는 어려움도 잊고 수령님께 한가지 보고드릴것이 있다고 말씀드리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무슨 문제인가고 물으시였다.

사실 그때 일부 사람들은 하도 좋은 제도에서 무상치료제의 혜택을 받으며 살다보니 약이 귀한줄 모르고있었다.

지난날 닭알 몇꾸레미를 들고 수십리길을 걸어 장에 내다 팔아야 겨우 몇알 사오던 다이아졸이 집들에 묵어있었고 아스피린, 신토미찐같이 감기나 전염병치료에 쓰이는 귀중한 약들을 되는대로 건사하여 방안에 굴리다가 내버려도 아까와하지 않았다.

그리고 또 조금만 아프면 집에 타다놓은 약들은 기일이 지났다고 생각하며 다시 병원에 가서 새 약들을 타다쓰군 하였다.

결국 전국적으로 적지 않은 약들이 랑비되고있었다.

내가 이에 대한 실태를 보고드리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지금 약들이 랑비되고있는것은 사실이라고 하시면서 보건부문에서 어떤 대책을 세우고있는가고 물으시였다.

나는 지금 의료일군들이 환자들에게 약을 랑비하지 말데 대해 일반적으로 강조하는 식으로 하고있다는것과 그래서인지 성과가 별로 없다고 답변을 드리였다.

그러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다른 대책을 세우거나 또 생각해본것이 없는가고 다시 물으시였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 편향을 극복하자면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는 의미에서 아무래도 병원들에서 약값을 조금씩 받는것이 좋을것 같다고 말씀드리였다.

순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놀라운 음성으로 《뭐, 약값을 받겠단 말이요?》라고 교시하시였다.

나는 수령님께 그런 통제수단을 쓰면 사람들이 자극을 받고 약을 귀중히 여길것 같다고 덧붙여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수령님께서는 어이가 없으신듯 저으기 안색을 흐리시며 《많든적든 약을 지어주고 돈을 받으면 그것은 약값이요. 약값이란 말이요.》라고 교시하시였다.

나는 변명삼아 무상치료제를 실시하고있는 다른 사회주의나라들에서도 외래환자들에게서는 약값을 받고있다고 사실대로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물론 약값을 받으면 랑비는 적어질수도 있겠지. 그러나 지난날 병들어도 약 한첩 제대로 써보지 못한 우리 인민들에게 있어서 돈 한푼 안들이고 마음껏 치료를 받을수 있는 세상에서 살아보고싶은것은 세기적인 숙망이였소. 지금 돈 한푼 안들이고 약을 마음대로 쓰게 된것은 우리 인민의 세기적숙원의 하나가 풀린것인데 이 귀중한것을 어떻게 몇푼 안되는 돈과 바꿀수 있겠소.

나는 자신의 생각이 너무도 짧았다는것을 통절히 느끼였다.

돌이켜보면 원래 약값을 받자는 의견은 이미 전반적무상치료제를 실시하기 위한 준비사업이 한창이였던 조국해방전쟁시기에도 제기되였었다.

그때 보건부문의 일부 일군들은 우리 나라는 제약공업의 토대가 약한데다가 그마저 적들의 폭격으로 파괴되여 의약품을 다른 나라에서 사다쓰는 형편이므로 병원에서 약국을 분리시켜 약값을 받자고 주장하였다고 한다.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주체41(1952)년 10월 초순 어느날 보건성의 책임일군을 부르시여 약값을 받는것은 환자들에게 고통을 주는 옳지 않은 행동이라고, 우리 제도에 손실을 주는 행동이라고 엄하게 지적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우리 나라에서는 치료도 무상으로 해주고 약도 무상으로 내주는 무상치료제가 실시되였던것이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이 행복에 도취되여 어제날의 처지를 망각하고 귀중한 의약품들을 되는대로 다루고 랑비하고있다고 하여 약값을 받겠다는 엄청난 의향을 말씀드리였으니 나는 머리를 들수 없었다.

잠시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동무들이 아직 내 마음을 다 모릅니다.

지난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병원문앞에도 가보지 못하고 약 한첩 써보지 못한채 병들어 세상을 떠났습니까.

우리가 산에서 싸울 때에 유격대원들과 담화해보면 부모형제들이 병들어도 약 한첩 써보지 못하고 일찌기 돌아갔다는 눈물겨운 이야기들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조국광복회 10대강령에도 보험법을 실시할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였으며 힘겨운 전쟁을 겪는 어려운 때에 무상치료제를 실시하도록 하였습니다.

동무가 남들은 무상치료제를 실시하면서도 약값은 받는다고 하였는데 물론 외래에서 약값을 조금 받는다고 하여 무상치료제가 아니라고 할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약값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약값을 받지 않는것은 우리 아버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다 아는것처럼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력사의 새벽길을 헤쳐나가시며 혁명활동을 벌리시던 나날 표면상 의원으로 활동하시면서 곳곳에서 병에 걸려 신음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무상으로 치료하여주시였다.

그때 선생님께서는 치료받은 사람들이 얼마간의 치료비와 약값을 마련하여가지고 찾아올 때면 이렇게 말씀하군 하시였다.

《돈을 내겠으면 나라가 독립된 후 우리 집에 찾아와서 내시오. 지금은 우리들이 다른 나라에 와서 빈곤한 생활을 하고있지만 멀지 않아 나라를 찾고 다시 압록강을 건늘 날이 올것이요. 우리 그때 서로 만나 잘 살아봅시다.》

이렇듯 김형직선생님의 념원이 담겨져있고 인민의 세기적소원이 풀린 무상치료제의 귀중한 성과를 몇푼의 돈과 바꾸려 하였으니 어버이수령님의 말씀을 되새기는 나의 마음은 더더욱 무거웠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자책이 어린 나의 모습을 바라보시며 《물론 약의 랑비를 없애기 위해서라고 하더라도 우리 당의 주체사상으로 무장한 일군으로서 약값을 받으려고 생각한것은 잘못된것입니다.》 라고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이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나에게 약을 랑비하는 현상을 없애기 위한 방도를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그때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러갔다.

하지만 나는 어버이수령님께서 하신 그날의 말씀을 잊을수 없다.

하기에 나는 오늘도 수많은 약을 타가지고 병원문을 나서는 환자들과 무상치료제의 혜택을 누리고있는 인민들을 바라볼 때마다 이렇게 속으로 말하군 한다.

사람들이여, 한평생을 오로지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오신 어버이수령님을 민족의 어버이로 모시였기에 우리 인민은 약값과 치료비를 모르는 둘도 없는 특전과 행운을 지닌 인민으로 자자손손 복락을 누리게 되였음을 부디 잊지 마시라.

(당시 회상자의 글을 다시 편집한것임)



박명빈(1932.3.25-1990.10.31)선생은 30여년간 공화국의 보건부문에서 일하면서 비뇨기외과학을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수많은 환자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건강을 회복하는데 기여하였다. 그는 또한 우리 당의 보건정책을 철저히 관철하여 우리 당의 무상치료제혜택이 우리 인민들에게 정확히 골고루 가닿도록 정력적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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