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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9(2020)년 2월 19일
 

《우리 로박사》의 이야기

 

우리 공화국의 지식인들은 누구나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우리 과학자들에게는 사회주의조국의 품, 위대한 수령의 품이 있다는 불변의 진리를 가슴속에 간직하고있다.

그것은 바로 절세위인들의 사랑과 은정이 이 나라 수백만 지식인들의 삶을 가장 빛나게 꽃피워주고있기때문이다.

나는 오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우리 지식인들을 나라의 귀중한 보배로 여기시며 하늘같은 사랑과 은정을 베풀어주신데 대한 한가지 사실만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절세의 위인들의 크나큰 믿음과 사랑속에서 지난날 곡절많은 생활의 길을 걸어온 오랜 지식인들도 우리 제도에서 자라난 새 세대 지식인들도 다같이 보람찬 과학탐구의 한길을 걸으며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전사, 제자로서 값높은 삶을 빛내여올수 있었습니다.》

우리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의 교원, 연구사들은 많은 세월이 흐른 오늘도 한 로박사에 대하여 추억하고있다.

그 로박사는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고고학 및 민속학강좌장이였던 채희국선생이다.

김일성상계관인, 후보원사, 교수, 박사였으며 우리 공화국의 후대교육사업과 력사연구 및 고적복구사업에 크게 이바지한 권위있는 고고학자였던 채희국선생은 생전에 어버이수령님께서 자신에게 안겨주신 다심한 사랑과 은정에 대하여 후배지식인들에게 자주 이야기해주군 하였다.

주체7(1918)년 9월 12일 태여난 그는 일제식민지통치밑에서 유년시절을 보내였다. 우리 민족의 력사를 탐구할 남다른 꿈을 안고있던 그는 고고학연구를 위하여 피타게 노력하였지만 식민지지식인의 불우한 운명을 피할수 없었다.

자기 조국의 력사를 연구한다는 죄 아닌 《죄》로 감시대상이 된 그는 가는 곳마다에서 갖은 수모와 멸시를 받았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어버이수령님의 품에 안겨서야 그는 그처럼 소원했던 력사연구의 꿈을 활짝 꽃피울수 있었다.

채희국선생을 근로인민의 첫 대학인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교원으로, 강좌장으로 내세워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가 마음껏 후대교육과 력사연구에 전심할수 있도록 하여주시였으며 공화국의 권위있는 고고학자인 그를 각별히 관심하시고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주체78(1989)년 4월초 동명왕릉을 찾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채희국선생을 현지로 부르시였다.

동명왕릉개건과 관련한 문제를 놓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 문득 그에게 나이는 몇살이며 어데 앓는데는 없는가고 물으시였다.

그도그럴것이 채희국선생은 원래 키가 큰데 비해 몸이 체소하고 퍽 늙어보였던것이다.

어버이수령님께 그는 별로 앓는데가 없다고 사실그대로 말씀드렸다.

사실 그는 주위사람들로부터 장수체질이라는 평을 받고있었다. 옥에 티라고 한가지 흠이 있다면 이가 많이 빠져 볼이 오무라든것이였다. 이런 그였기에 본인스스로도 자기의 건강에 대해서는 장담하면서 별로 관심을 돌리지 않고있었다.

이날 그의 건강을 두고 내내 걱정을 놓지 못하시던 수령님께서는 현지지도를 마치고 돌아오시여 한 일군에게 종합대학 로박사가 이발이 없으니 퍽 늙어보이고 어딘지 모르게 건강도 좋지 못한것 같다고, 병원에 이야기하여 검진도 하고 그의 이발도 해주도록 해야 하겠다고 이르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해 6월 어느날에도 보건부문의 한 일군에게 오랜 학자들의 건강을 잘 돌봐주어야 한다고, 채희국박사와 같은 력사학자들은 매우 귀중한 로학자들이라고 교시하시였다.

하여 자기 건강에 대하여서는 장담을 하던 로박사는 뜻밖에도 전면적인 종합진단을 받고 아래우이발을 모두 새로 해넣게 되였다. 그러자 오무라들었던 볼도 불룩이 나오고 얼굴륜곽도 달라져 순간에 건강한 중늙은이로 되여보였다.

그해말 어느날 몰라보게 변한 그를 또다시 만나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발을 해넣으니 더 젊어지고 정말 의젓한 사람이 되였다고 못내 기뻐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이렇듯 다심한 사랑과 은정이 있어 그는 고구려에 대한 력사연구에 전심할수 있었으며 여러 력사유적발굴사업과 동명왕릉, 왕건왕릉, 단군릉개건사업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수 있었다.


-집필에 열중하고있는 채희국선생-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력사학분야에서 커다란 공적을 세운 그를 잊지 않으시고 탄생 80돐을 맞으시는 뜻깊은 날에는 금수산의사당(당시)으로 그를 불러주시고 외국의 수반들과 당과 국가의 간부들에게 《우리 로박사입니다.》라고 우렁우렁하신 음성으로 소개하시였다.

진정 우리 로박사라는 뜻깊은 부름은 반만년의 유구한 조국력사를 그토록 귀중히 여기시는 우리 수령님께서 력사연구에 한생을 바쳐가고있는 채희국선생에게 안겨주신 값높은 표창이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민족의 대국상을 당하고 처음으로 맞는 태양절을 하루 앞둔 주체84(1995)년 4월 14일 그에게 어버이수령님의 존함이 모셔진 금시계를 수여하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으며 이듬해 3월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애국렬사릉에 안치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태양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을 받아안으며 고령의 몸에도 지칠줄 모르는 열정을 안고 민족력사연구사업에 전심해온 채희국선생, 그는 오늘도 영생의 언덕에서 우리 새 세대 지식인들에게 가르쳐주고있다.

이 나라 지식인들의 삶은 절세위인의 품속에서만 끝없이 빛나게 된다는것을.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교원 박사 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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