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승고적 련광정
우리 민족은 이 땅에서 반만년의 오랜 력사를 수놓아오며 자기의 창조적지혜와 재능, 슬기로 세상에 자랑할만 한 우수한 문화유산을 수많이 창조하였다. 현재 평양시 중구역 대동문동에 있는 련광정도 그중의 하나이다.
련광정이란 전망경치가 비단같이 빛나고 아름다운 루정이라는 뜻이다. 일명 《제일루대》, 《만화루》 등으로도 불리웠다.
원래 련광정은 고구려시기인 6세기 중엽에 처음 세워졌는데 고려때인 1111년에는 《산수정》, 조선봉건왕조시기인 16세기초부터는 련광정이라고 불렀다.
련광정은 임진조국전쟁시기 일본침략자들의 야수적만행에 의하여 불타버렸으나 1608년에 고쳐지었으며 지금 있는 건물은 1670년에 개건한것이다.
련광정은 두개의 다락건물이 맞물린것과 같은 독특한 평면구조를 가지고있다. 건물이 대동강으로 쑥 나간 덕바위와 성벽우에 바싹 내밀어 세워짐으로써 주위의 자연환경과 매우 잘 어울린다. 또한 두개의 합각지붕이 직각으로 어기여 맞물려있어 기묘한 자태를 드러낼뿐아니라 아름다운 단청으로 채색된 련광정은 우리 선조들의 높은 건축술과 슬기와 재능을 그대로 엿볼수 있게 한다.
강변의 절벽우에 서있는 사방이 탁 트인 루정에서는 맑은 물이 유유히 흐르는 대동강과 강기슭의 아름다운 경치를 상쾌하게 부감할수 있고 주변경치와 훌륭하게 어울려 련광정은 옛날부터 《관서8경》의 하나로 되였다.
련광정에서 바라보이는 경치가 너무도 아름다와 17세기초 우리 나라에 왔던 명나라 사신 주지번은 천하에서 제일이라고 감탄하였다. 련광정 대들보에는 《천하제일강산》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있다.
대동강으로 향한 남쪽채의 기둥에는 고려시기의 유명한 시인 김황원이 부벽루에 올라 시를 짓다가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충분히 노래하기에는 자기의 재능이 모자람을 탄식하며 붓을 놓고 내려왔다는 일화가 깃들어있는 《긴 성벽 한쪽면에는 늠실늠실 강물이요 큰 들판 동쪽머리엔 띠염띠염 산들일세》이라는 그의 미완성시가 씌여진 판이 걸려있다.
련광정에는
련광정 바로 아래에는 소가 있다. 여기가 대동강에서 가장 깊은 곳이며 그속에 큰 닻이 있다는것이다. 옛날부터 평양은 지형이 배모양으로 되여있고 대동강과 보통강물우에 떠있는것 같아서 평양성이 물에 떠내려가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련광정아래에 큰 닻을 걸어두었다는것이다. 이런
련광정에는 외래침략자들을 쳐물리친 우리 인민의 애국의 넋도 깃들어있다.
임진조국전쟁시기 평양성이 왜적에게 일시적으로 강점되였을 때 계월향이 김응서장군과 함께 묘한 꾀를 써서 적장의 머리를 벤 곳이 다름아닌 련광정앞이라고 전해지고있다. 또한 련광정일대는 1593년 1월 평양성탈환전투때 아군이 수많은 왜적을 소멸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처럼 아름답고 선렬들의 넋이 깃들어있는 련광정은 지난날 봉건착취계급과 외래강점자들의 유흥터로 전락되여 버림을 받았으며 지난 조선전쟁시기에는 미제에 의해 무참히 파괴되였다.
그러던 련광정이 인민이 사랑하는 명승고적으로 될수 있은것은 전적으로
오늘 련광정은 우리 민족의 슬기와 재능을 길이 전하는 민족문화유산으로, 수도시민들이 즐겨찾아오는 인민의 문화휴식터로 되였다.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