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손전화홈페지열람기
날자별열람

주체107(2018)년 12월 29일 《로동신문》

 

위대한 령장의 품속에서 영생하는 포병사령관

전 조선인민군 포병사령관 정호균동지가 받아안은 고귀한 사랑과 은정에 대한 이야기


조선혁명은 수령과 전사들사이의 끊을래야 끊을수 없는 혈연적뉴대속에 승승장구하는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혁명이다. 백두의 밀림에서 수령과 전사, 수령과 인민이 뜻과 정을 함께 하며 닻을 올린 우리 혁명의 진군길우에는 그 얼마나 감동깊은 혁명적동지애의 서사시가 세기를 이어가며 아로새겨지고있는것인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혁명적의리와 동지애는 수령과 전사들사이의 관계에서 가장 숭고한 높이에서 표현됩니다.》

얼마전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전 조선인민군 포병사령관 정호균동지가 세상을 떠난데 대하여 못내 애석해하시면서 그의 값높은 한생과 공적을 온 나라가 알게 하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한없이 뜨거운 동지적사랑과 숭고한 도덕의리를 천품으로 지니신 그처럼 위대한 령도자를 최고사령관으로, 어버이로 높이 모신것은 조선의 혁명가들과 인민들이 받아안은 특전이며 최상의 영광이다.


화선에서 맺으신 첫 인연


12월의 맵짠 추위가 강산을 얼구던 지난 14일 새벽,

인민군대의 한 지휘성원은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걸어오신 전화를 받게 되였다.

송수화기를 정중히 받쳐든 그의 귀전에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갈리신 음성이 들려왔다.

정호균 전 포병사령관이 세상을 떠난데 대하여 못내 가슴아파하시며 묘를 어디에 쓰려고 하는가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자상히 물으시던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이윽하여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정호균 전 포병사령관은 내가 인민군대사업을 지도하던 첫시기 포병사령관을 하면서 나의 사업을 잘 보좌하였습니다. 정호균 전 포병사령관이 인민군대의 포병강화에 많은 기여를 한것만큼 그의 장례를 잘 치르어주어야 합니다.》

마디마디에 어린 그이의 불같은 정이 인민군지휘성원의 가슴을 울리며 흘러들었다.

정호균동지가 여든살이 다되여 군복을 벗은지도 어느덧 7년세월이 흘렀다. 오래동안 같이 일해온 일군들의 기억속에도 점차 희미해지던 그를 혁명의 천만중대사를 돌보시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그렇듯 잊지 못하고계신줄 누가 알았으랴.

그 시각 고인의 유가족은 가정적으로 조용히 장례준비를 하고있었다.

아버지가 인민군대의 중요직책을 력임한것은 사실이지만 자식들의 부양을 받는 년로보장자로 생을 마친것만큼 지난 시기 함께 복무한 전우들이 찾아와 추모해주는것만도 더없이 고마운 일이라고 여길뿐이였다.

하지만 떠나간 로전사에 대한 사랑과 정이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마음속에 얼마나 소중히 간직되여있는지 그들은 다 알지 못하고있었다.

인민군지휘성원과의 통화가 끝난 뒤에도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한동안 깊은 추억에 잠겨계시였다.

전 포병사령관 정호균, 그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생전에 무척 아끼고 사랑하시던 인민군지휘성원이였다. 정호균 포병사령관은 지난 시기 일을 잘하였다고, 그가 훈련을 할 때 포병을 지휘하는것을 보니 포병사령관답다고, 확실히 그가 듬직하고 괜찮다고 만족을 금치 못하시던 위대한 장군님의 자애로운 음성이 금시 귀전에 들려오는듯싶으시였다.

그를 처음 만나시던 일도 어제런듯 눈앞에 생생히 떠오르시였다.

주체98(2009)년 9월 어느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어느 한 인민군련합부대의 종합기동훈련을 보아주시기 위해 현지에 나오시였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기와 공화국기가 펄펄 휘날리는 훈련장에는 위대한 장군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인민군지휘성원들이 서있었는데 그속에는 70고령의 장령도 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그의 앞에 이르시여 포병사령관이 군복을 입으니 젊어보인다고, 앞으로 건강하여 더 젊어지기 바란다고 하시며 환한 미소를 지으실 때 솟구치는 격정을 가까스로 참느라 애쓰던 장대한 체구의 장령이 바로 정호균동지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정호균동지를 믿음어린 눈길로 바라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속에 군단장을 거쳐 포병사령관으로 활약하던 그가 제대나이가 지나 군복을 벗은것은 바로 5년전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년세월 그를 잊지 않고계시다가 정호균 포병사령관은 어려서 군대에 입대하여 군대에서 뼈가 굳어진 사람이라고, 그는 군복을 입고있는것이 더 좋다고 하시며 70고령의 그를 포병사령관으로 다시 임명해주시였다.

그때로부터 불과 한달만에 위대한 장군님을 만나뵙고 젊어보인다는 고무격려의 교시까지 받아안았으니 그의 격정이 얼마나 컸겠는가.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정호균동지의 이런 남다른 심정을 헤아려보시며 그의 앞으로 다가서시였다.

순간 포병사령관은 눈부신 태양을 마주한것만 같은 환희와 흥분에 자기의 심장이 세차게 높뛰는 소리를 들었다.

20대, 30대 지휘관들 못지 않게 정력이 넘쳐나는 전사의 인사를 반갑게 받아주시며 그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포병사령관동무의 건강은 어떤가고 다정히 물어주시였다.

정호균동지는 그만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건강하다니 기쁘다고 하시며 그이께서 밝게 웃으실 때 그는 끝내 눈물을 쏟고야말았다. 솟구치는 고마움에 목이 꽉 메여 눈만 슴벅이는 그의 심정을 읽어보신듯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신임과 기대에 꼭 보답하기 바랍니다.》

이어 련합부대의 종합기동훈련이 시작되였다. 훈련에서는 우리 조국의 령토를 단 한치라도 감히 침범한다면 침략자들을 단매에 쓸어버릴 인민군군인들의 멸적의 의지와 무자비한 타격력, 자위적국방공업의 위력이 뚜렷이 과시되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와 정호균 포병사령관과의 첫 인연은 이처럼 원쑤격멸의 의지 드높은 화선에서 이루어졌다. 그렇게 맺어진 정은 주체적포병무력강화발전의 길에서 더욱 뜨거워졌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주시는 과업은 그 어느것이든 지상의 명령으로 받들어 발이 닳도록 뛰여다니던 포병사령관, 보기만 하여도 마음이 든든해지던 전사의 모습, 아는것은 압니다, 모르는것은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솔직하게 아뢰이군 하던 고지식한 로전사, 자기의 속생각을 그대로 터놓군 하던 그 진심…

잊지 못할 로전사의 자욱자욱을 더듬어보시는 그이의 가슴속에 귀중한 동지, 혁명전우를 잃은 아픔이 얼마나 크시였으랴.

정호균동지의 장의를 기관장으로 하게 되였다는 소식을 받아안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유가족들은 얼마후 상상조차 못했던 영광을 받아안았다.

세월이 멀리 흐르도록 정호균이라는 그 이름 세 글자를 잊지 않고계신것만도 분에 넘친 일인데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그를 포병사령관이라는 부름과 더불어 영생의 언덕에 높이 내세워주시였으니 세상에 이보다 더 뜨거운 사랑의 이야기가 어디에 또 있으랴.

정호균동지의 유해가 애국렬사릉에 안치되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존함을 모신 화환이 그앞에 놓였을 때 유가족들은 솟구치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였다.

해방전 탄광막벌이군의 외아들로 태여난 정호균동지가 세살 잡히던 해에 그의 어머니는 병든 몸으로 굶어죽었다. 열살이 좀 지나서는 숯구이로 겨우 목숨을 부지하던 아버지마저 잃었다. 그는 자서전에 이렇게 썼다.

《아버지는 집도 없이 땅속에서 거지생활을 하다가 눈을 감았다. 관도 없어 가마니에 싸인채 또다시 땅속에 묻히는것을 보니 어린 마음에도 너무 억이 막혀 눈물이 쏟아지고 통곡이 터져나왔다.》

나라없던 그 세월에는 우리 인민 누구나 망국노였지만 정호균동지는 그가운데서도 더욱 비참한 거지의 아들이였다. 이 세상에 의지가지할데란 아무도 없는 자기를 난생처음 어깨를 쭉 펴고 사람답게 살도록 하여주신 우리 수령님의 품이 너무도 고마워 그는 해방후 조국보위의 전초선에 포병으로 나섰다.

거지의 아들로부터 사령관으로!

정호균동지의 극적인 운명전환과정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이 말은 위대한 수령의 품, 조선로동당의 품이야말로 근로인민의 아들딸들을 참다운 인간존엄의 절정에 내세워주는 하늘같은 품이며 일편단심 당을 따르는 길에 혁명전사의 값높은 삶과 영광이 있다는것을 실증해주는 대명사와도 같은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과 믿음속에 영광스러운 한생을 빛내여온 정호균동지에게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부어주신 사랑은 또 얼마나 은혜로운것이였던가.

올해 전승절을 맞으며 그는 전화의 군복을 입고 제5차 전국로병대회에 참가하였다.

적후 수천리를 헤쳐 련대군기를 호위해온 군인의 위훈이,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전승의 열병식을 진행한 60여년전 환희가 력력히 어려있는 훈장을 달고 정호균동지도 로병들과 나란히 기념촬영대에 섰다.

자나깨나 뵙고싶던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촬영장에 나오시는 순간 그는 손만 들어올렸을뿐 북받치는 감격에 만세를 부를수 없었다.

그런데 문득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정호균동지앞에서 걸음을 멈추시는것 아닌가.

더없이 반갑게 그의 이름을 불러주시며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뜨겁게 손을 잡아주실 때 그는 너무도 큰 격정과 흥분으로 하여 축원의 인사조차 제대로 올리지 못했다.

그가 제대된지도 어느덧 7년, 그 나날은 우리 조국이 아침과 저녁, 분과 초를 다투며 전진해온 나날이였고 격동적인 사변과 신화로 충만된 천지개벽의 세월이였다. 새로운 속도, 새로운 기적이 끊임없이 창조되던 그 길에서 우리 원수님께서 만나보신 인민들과 인민군장병들은 얼마나 많았으랴.

하지만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열광의 환호로 설레이는 그 수많은 전쟁로병들속에서 왕별을 4개나 단 장령의 군복이 아니라 전화의 나날처럼 소위의 군복을 입은 로병을 대뜸 알아보신것이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지니신 천재적인 기억력의 빛발이였던가.

그것만이 아니였다. 화선길에서 인연을 맺으신 로전사를 심중에 안고 사신 우리 원수님의 숭고한 혁명적의리의 분출이였다.

생사를 같이하는 혁명의 길에서 한번 맺은 정과 동지적의리를 천금보다 더 귀중히 여기시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혁명전사에게 베푸시는 고귀한 사랑에는 정녕 끝이 없었다.

민족최대의 추모의 날에 즈음하여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으신 지난 12월 16일에도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다시는 돌아올수 없는 전사의 모습을 그려보시였으니 그날에 하신 그이의 말씀 얼마나 만사람의 심장을 울렸던가.

정호균동무는 포병지휘관들가운데서 나와 첫 인연을 맺은 일군이며 당에 충실한 군사지휘관이였다고 하시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를 우러르며 일군들은 후더운 눈물을 쏟고야말았다.

행복한 로전사여, 듣고있는가. 그대를 위해 낮이나 밤이나 마음기울이시는 어버이의 뜨거운 음성을.

눈은 비록 감았어도 전사는 울고있으리라. 자애로운 태양의 품에 안긴 영광의 삶은 영생의 노래되여 이 땅에 울려퍼지리라.


그는 나에게 힘을 주는 일군입니다


정호균동지가 포병사령관으로서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를 몸가까이 모시고 일한 나날은 불과 2년뿐이다. 그 길지 않은 나날에 령도자와 전사사이에 오고간 믿음과 흠모, 사랑과 매혹의 세계는 우리 혁명력사의 갈피에 아름답게 수놓아졌다.

정호균동지는 아래일군들에게 자기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 완전히 매혹되였다고 늘 말하군 했다.

주체적포병무력의 강화발전을 위해 크나큰 심혈과 로고를 기울이시던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어느 한 포무기의 시험사격을 지도해주시기 위해 현지에 나오시였을 때의 일이다.

모두 손에 땀을 쥐고있는 속에 첫 포탄이 날아갔다. 그런데 목표는 그대로 남아있었다.

포병분야의 전문가들과 군사지휘관들은 다급히 수정량을 계산하였다. 목표를 명중시키지 못한 당황함에 어쩔바를 몰라하는 그들의 마음을 부드러운 미소로 눅잦혀주시며 수정량을 보고받으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고개를 저으시더니 즉시 수정량을 고쳐주시였다.

다음번 포탄이 목표를 향하여 날아갔다. 통쾌한 명중이였다.

정호균동지는 도저히 리해 못할 신비경에 휩싸였다. 전문가들도 한참이나 계산해낸 수정량이였다. 그런데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그 어떤 계산도구도 없이 말그대로 순간에 그 수정량을 바로잡아주시였던것이다.

(저분이시야말로 탁월한 군사의 영재이시다!)

전화의 그날부터 수십년세월 한발의 포탄도 헛되이 쏴본적 없었다고 자부해온 그도 명중사격제원판정과 사격수정방법에서는 때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것을 당연한것으로 여기고있었다.

천하를 쥐락펴락하실 천출명장의 기상과 예지가 빛발치는 그이앞에 머리가 숙어질수록 정호균동지에게는 김정은동지는 포병에도 매우 밝다고, 그가 작성한 포병리용방안들을 보면 감탄할 정도라고, 그는 장군중의 장군이라고 하시던 위대한 장군님의 교시가 되새겨졌다.

그날 정호균동지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를 몸가까이 모시였던 한 일군에게 그이께 매혹된 자기의 심정을 이렇게 고백하였다고 한다.

《어쩌면 그렇게도 포에 밝으신지.

난 오늘 그이의 물으심에 대답 못한것이 수두룩하오. 글쎄 내가 보좌해드릴것이 없더란 말이요. 정말 그이앞에 서있기가 부끄러웠소.》

시험사격의 날에 있은 일이 그로 하여금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지니신 뛰여난 군사적예지에 대하여 절감하게 하였다면 그이를 모시고 새로 개발된 포무장장비를 본 날은 병사들을 이끄는 지휘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것이 무엇인가를 배우게 된 잊을수 없는 날이였다.

새로운 포무장장비가 나올 때마다 늘 그러하시듯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몸소 조준수의 위치에서 포를 살펴보시였다.

그이의 안색은 점점 흐려지시였다. 포병들의 화력복무동작에 편리하게 되지 못한 점을 대번에 발견하시였던것이다.

자신께서 앉아보신 그 조준수의 위치에 전선길에서 만나보셨던 정든 포병들을 한명한명 마음속으로 다 앉혀보시며 그들의 번수동작까지 눈앞에 그려보시는가.

우리 병사들에게 사소한 불편이라도 있을세라 우리 식으로 포무기를 개발하도록 세심히 이끌어주시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를 우러를수록 그의 자책감은 더욱 커만 갔다.

고령의 몸이였지만 자신에 대한 그의 요구성은 나날이 높아졌다. 포진지가 있는 곳이라면 조국의 천리방선 그 어디이든 다 찾아가 자기 발로 밟아보고 제눈으로 확인하고야 마음을 놓았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구상과 의도를 받들어 밤을 새우며 우리 식 포병전법과 포무장장비를 연구하고 시간을 쪼개가며 학습했다.

눈비가 오고 바람이 불 때면 그의 걸음은 더 자주 포사격장으로 이어졌다. 언제나 시사없는 명중탄을 날려야 할 포병들의 훈련은 가장 불리한 일기조건에서 가장 긴밀한 집단의 협동능력을 완성할것을 요구하였던것이다.

병사들에게 포나 전법을 가르치기에 앞서 지휘관이라면 마땅히 그 포를 다루는 포병들에 대한 열렬한 사랑의 마음부터 간직해야 한다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뜻을 받들어 정호균동지는 《병사들을 위하여 복무함!》이라는 글발을 지휘관인 자신의 인생관으로 쪼아박았다. 오성산칼벼랑길을 달리는 심정으로 이 땅 한끝에 있는 포진지까지 다 찾아 병사들의 속마음부터 들여다볼줄 아는 포병사령관이 되였고 부대들에 나가면 군의소에 먼저 들려 병사들의 이마를 짚어보는 다심한 지휘관이 되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를 받들어 여생의 하루하루를 일년, 십년 맞잡이로 일하고싶은 열망을 안고 전연에서 전연으로, 뭍에서 섬으로, 공장에서 공장으로 땀젖은 자욱을 새겨가던 그 나날에 포병사령부아래 모든 려단, 련대는 오중흡7련대칭호를 수여받게 되였다.

주체적포병무력의 강화발전을 위하여 헌신분투하는 정호균 포병사령관, 그에게서 새 성과를 보고받으실 때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심중에는 로전사의 건강에 대한 념려가 더욱 커만 갔다.

정호균 포병사령관을 잘 도와주어야 하겠다고, 그가 이제는 거의 여든살이 되였다고 하시며 인민군지휘성원들에게 하시던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당부는 얼마나 곡진한것이였던가.

적들의 책동을 짓부셔버리기 위한 작전방안을 토론할 때 포병사령관이 전투복장을 하고 듬직하게 앉아있는것을 보니 마음이 흐뭇하였다고, 포병사령관은 병종사령관이지만 군종사령관이나 같다는 산악같은 믿음을 안겨주시며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말씀하시였다.

《정호균 포병사령관은 나이가 많지만 믿음이 가는 일군입니다. …포병사령관이 밤을 지새우며 로고를 바치는 나의 사업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하여 죄송스럽다고 이야기하군 한다는데 그는 나에게 힘을 주는 일군입니다.》

나에게 힘을 주는 일군!

팔순을 가까이하는 그가 떼를 무어 포를 싣고 불타는 락동강을 건느던 전화의 정신으로 인생말년까지 쉬임없이 달려올수 있은것은 전적으로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주신 힘이 있었기때문이였다. 그가 조금이나마 지휘관구실을 할수 있었다면 그것은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걸음걸음 지휘관의 풍모를 다듬어주시고 승리의 전법을 배워주시며 앞으로만 떠밀어주시였기때문이였다.

힘들어할세라, 나약해질세라 지혜와 용기를 주시며 손잡아 이끌어주시고도 그 모든 성과를 전사에게 고스란히 안겨주시며 자신께 힘을 주는 일군이라고 떠받들어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은 진정 얼마나 자애로운분이신가.

그처럼 위대한 령도자를 최고사령관으로, 어버이로, 스승으로 높이 모시고 그이께 매혹되고 온넋이 끌리여 한생도 미래도 다 맡기며 운명의 한피줄을 잇고 사는 우리 인민의 삶은 얼마나 행복하고 영광스러운것인가.

어느해 설명절을 앞두고 그의 가족은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제대된 장령들에게 보내주신 물고기를 받아안았다. 그날 정호균동지의 안해는 성의를 다해 물고기료리를 만들어 식탁에 올렸다.

하지만 정호균동지는 종시 한저가락도 입에 대지 못했다. 그리고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를 모시고 찍은 기념사진을 한참동안 우러르다가 눈굽을 찍으며 누구에게라없이 뇌이는것이였다.

《우리 원수님께서 저녁식사는 변변히 드시였는지…》

그때 그의 안해의 머리속에 떠오른것은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를 모시고 식사를 처음 하고 온 날 남편이 눈물에 젖어 곱씹던 말이였다.

《밥 한공기와 남새국 한그릇, 김치 한공기가 전부였소. 낮이나 밤이나 쉬임없이 로고를 바치시는 그이께서 그렇게 소박한 식사를 하시다니… 우리 전사들의 죄가 크오.》

여름철이면 오이랭국이나 찬물 한사발을 놓고 식사하시고 강냉이국수도 별식처럼 달게 드시던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 그날의 음식상들이 그냥 눈앞에 어려오고 가슴에 걸려 딴가마밥이란 몰랐던 포병사령관이였다. 풍성한 음식을 늘 멀리하며 항상 검소하게 살아온 그였다.

그것은 순간을 살아도, 한생을 살아도, 앞에서나 뒤에서나 우리 장군님처럼, 우리 원수님처럼 살기 위해 변심없이 자신을 채찍질해온 정호균동지의 진심이고 량심이였다.

집안의 맏손녀가 한창 대학입학시험준비를 서두르고있을 때 그는 전에없이 심중한 기색으로 손녀를 불러앉혔다.

《내가 제대되였으니 조국보위초소의 한자리가 비였구나. 그 자리에 네가 서기 바란다.》

조국을 먼저 알고 그다음 대학공부를 하라고, 우리 가정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바라시는 총대가정이 되여야 한다던 할아버지의 당부를 안고 맏손녀는 총을 잡았다. 그뒤를 이어 다른 손자들도 자기 아버지들처럼 군인이 되였다. 온 식솔이 군인이 되고 당원이 되여 모여앉았던 날 정호균동지는 생각깊이 말하였다.

《가슴에 단 훈장이나 높은 관직이 곧 신념과 량심의 진가를 재는 척도로 되는것은 아니다. 수령의 곁에 있었다고 하여 다 충신이 아니며 대오에 함께 섰다고 하여 다 동지가 되는것도 아니다. 혁명가의 진가는 자기 령도자에 대한 끝없는 충정으로 검증된다는것을 명심하거라.》

그것은 위대한 어버이, 위대한 령장의 슬하에서 모든 영광과 행복을 맞이한 정호균동지의 한생의 총화이기도 하였다.

제대된 이후 정호균동지에게는 새로운 일과가 생겨났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는 온 하루 책상에서 떠날줄 몰랐다. 한줄 쓰고는 더듬어보고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다가는 또 한줄 쓰고…

그를 찾아왔던 오랜 전우가 무슨 책을 쓰기에 그렇게 몇해를 두고 고심하는가고 물은 일이 있었다.

그때 정호균동지는 그저 말없이 웃었다.

후날 그 일군은 정호균동지가 정히 내놓는 한권의 책을 받아안게 되였다.

책을 펼치는 순간 그는 자기 눈을 의심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정호균동지의 필체는 너무도 눈에 익어있었다. 그런데 책에 씌여진 필체는 알뜰한 처녀의 글씨처럼 정말 고왔다. 그 한권에 새겨질 글을 위해 정호균동지가 무려 몇해동안이나 여러권의 책에 옮겨가며 정서하고 또 하면서 글씨를 다듬고 매 문장을 정성껏 무르익혀 완성했다는것을 알게 된 그의 눈빛은 더욱 뜨거워졌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주신 과업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다 적어넣고 그옆에는 집행했음, 집행중에 있음, 집행 못했음이라고 새겨넣은 글줄들을 생각깊이 읽어내려가는 그에게 정호균동지는 간절히 부탁했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나에게 주신 여러건의 과업을 완전무결하게 집행하지 못하고 초소를 떠난것이 죄스럽소. 동무가 꼭 집행해주기 바라오.》

위대한 수령님들의 교시와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말씀을 정히 모시고 혁명전사들이 지녀야 할 품성에 이르기까지 제목마다 빨간색으로 밑줄을 그어가며 쓴 그 책의 첫 페지에는 이런 글이 씌여져있었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품을 떠나서는 한순간도 살수 없는것이 저의 의지이고 신념이며 량심입니다.》

날이 갈수록 더 많은 일을 하고싶은 정호균동지의 마음은 불같아졌지만 점점 깊어지는 병은 그의 육체를 사정없이 얽어매놓았다.

그는 한밤중에도 문득 일어나 무릎걸음으로 책상앞에 앉군 하였다. 그렇게 하기를 그 며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혁명활동소식에 접한 어느날 그는 끝내 어린애처럼 울음을 터뜨리고야말았다.

《우리 원수님께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셨는데 이렇게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 정말 안타깝구나!》

이것은 그가 남긴 마지막말이였다.

그의 머리맡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존함이 모셔진 시계가 정히 놓여있었다. 숨지는 순간까지 그는 그 초침소리에 심장의 박동을 맞추었던것이다.

그의 자식들은 책상을 정리하다가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을 읽게 되였다. 한줄 쓰고는 다른 종이에, 두줄 쓰고는 또 다른 종이에 이렇게 안깐힘을 내여 몇장이나 썼건만 겨우 두 문장뿐이였던 그 글은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 로전사가 삼가 드리고싶어한 편지였다.

《받아안은 은혜에 천만분의 일도 보답하지 못하고 고생도 크신 경애하는 원수님께 자그마한 보탬도 드리지 못하는 이 불민한 전사는 죄스러운 마음 금할수 없습니다.》

로전사의 편지는 우리 원수님께 가닿지 못하였다. 하지만 우리 원수님께서는 로전사의 마음을 속속들이 다 알고계시였다.


* *


전 조선인민군 포병사령관 륙군대장 정호균동지는 애국렬사릉으로 올랐다. 조선인민군 명예의장대가 그의 령구를 향하여 《령구에 들어 총!》을 하였다.

우리 당이 잊지 못하는 애국렬사들과 나란히 그는 당중앙결사옹위의 영원한 초병으로 자리를 잡았다. 위대한 령장의 품에 영원한 포병사령관으로 더 가까이 안기였다.

사진속에서도 행복에 겨운듯 그는 웃고있었다. 우리 원수님을 우러러 언제인가 그가 가식없이 토로했던 진정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는 어머니란 말을 불러보지 못했습니다. 경애하는 원수님은 꼭 친아버지같고 친어머니같습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그와 인연을 맺으시고 걸음걸음 이끌어주신 나날은 불과 2년뿐, 그 3배가 넘는 7년세월을 정호균동지는 군복을 벗고있었지만 위대한 령장의 마음속에서 그에 대한 정은 한시도 멀어진적이 없었다.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당을 따라 수놓아온 그의 애국충정의 자욱자욱은 언제나 빛나고있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따를수 없는 혁명적의리의 최고화신이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 하늘땅을 다 합쳐도 비기지 못할 그 위대한 품에서는 살아도 영광, 죽어도 영광이기에 우리 인민과 인민군장병들은 오늘도 래일도 혁명의 한길만을 꿋꿋이 걸어갈것이다.

위대한 조선로동당을 위하여!

본사기자 조향선

본사기자 리건

이전 제목   다음 제목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되돌이 추천하기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