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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세위인들을 모시여 금강산은 통일의 명산으로 빛날것입니다

비전향장기수 김동기


울긋불긋 단풍든 가을이 오니 금강산 일만이천봉우리가 절세위인들의 애국애족의 위대한 사랑에 드리는 하나의 거대한 꽃바구니가 된듯싶고 그속에서 뿜어져나오는듯싶은 자연의 열기는 온 겨레의 거세찬 열화의 통일념원으로 안겨와 이 가슴을 뜨겁게 달구어줍니다.

아름다운 금수강산인 내 조국에는 어딜가나 뛰여난 명산, 명소가 많고많습니다.

그중에서도 금강산은 천하 으뜸가는 절승의 하나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명산중의 명산입니다.

예로부터 웅장하고 수려한 천태만상의 일만경치가 그리도 특이하여서 《금강산을 보기 전에는 산수의 아름다움을 말하지 말라.》는 명구도 생겨나게 되였고 세계의 한 저명한 문인은 조선의 금강산을 한번 보았으면 죽어도 원이 없겠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세계명승의 절정에 솟아있는 민족의 명산 금강산이 겨레의 가슴속에 통일열망의 봉우리로 자리잡은것은 아마도 력사적인 금강산관광길이 열린 그때부터일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전인 주체87(1998)년 11월 18일, 바로 이날이 있어 금강산은 분렬의 비극으로 응어리졌던 민족의 한을 가셔주는 통일의 명산으로 겨레의 가슴속에 자리잡게 되였습니다.


《금강》호의 첫 고동소리

천변만화의 경치로 하여 풍악산이라 불리우는 가을의 금강산을 찾으면 저는 반드시 외금강과 해금강으로 발걸음을 옮기군 합니다.

그러면 일망무제하게 펼쳐진 동해의 푸른 물결우에 은은히 울려퍼지는 배고동소리에 심신을 맡기군 합니다.

제가 이렇게 배고동소리에 귀를 강구는 남다른 취미를 가지게 된 리유가 있습니다.

유정한 배고동소리를 들으면 만단사연이 전해오는듯싶어 울렁이는 마음을 진정할수 없습니다.

그리고 20년전 잊을수 없는 추억의 갈피를 감회깊이 되새겨보게 됩니다.

《판문점소떼방북》으로 북남관계사의 한페지를 장식한 남조선 현대그룹 전 명예회장 정주영은 북에 태줄을 묻었으나 고향을 떠나 오랜 세월 일신의 치부를 위해 발이 닳도록 뛰여다닌 풍운아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평양으로 찾아와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을 직접 만나뵙는 무상의 영광을 지니고 금강산관광이라는 특전,특혜를 받아안은것은 주체87(1998)년 10월이였습니다.

당시 이 사실은 남녘땅을 벗어나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금강산지구는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쌍방의 방대한 무력이 대치되여있는 군사적긴장도가 가장 높은 최전연지대입니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포병부대에서 복무했던 제가 구분대와 함께 한치의 땅을 두고 적아간의 치렬한 공방전을 벌렸던 곳도 바로 여기 금강산일대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곳에 위치한 금강산지구를 남녘동포들에게 활짝 열어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대용단에는 불보다 뜨거운 겨레사랑이 깃들어있었습니다.

민족분렬의 비극을 하루빨리 끝장내시려는 숭고한 사명감, 금강산이 인민의 명산으로 빛을 뿌릴수록 이 훌륭한 명승지를 남녘겨레들도 향유하게 해주시려는 열렬한 동포애를 지니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인생말년에 나라와 민족을 위해 조금이나마 기여하려는 남조선 현대그룹 전 명예회장 정주영의 애국심을 소중히 여기시고 금강산관광사업을 통채로 안겨주시였으며 나이많은 그를 가운데 세우시고 사랑의 기념사진까지 찍어주시였습니다.

환희와 충격속에 남조선으로 돌아간 정주영은 기자회견에서 반공화국광풍이 살벌하던 시국이였건만 위대한 장군님을 《장군》이라고 높이 칭송하면서 《민족공동의 리익을 그 무엇보다 우위에 놓으시며 년로자에 대한 례의를 지키시는 매우 지성적이고 매혹적인 지도자》이시라고 격정을 토로하여 남조선민심을 격동시켰습니다.

그때 감옥에서 이 사실을 전해들은 저는 이것은 사상과 정견보다 민족을 우위에 놓으시고 돈과 재부보다 민족적량심을 중히 여기시며 민족의 통일과 부강번영을 위해 모든 심혈을 다 기울이시는 우리 장군님의 위인적풍모에 대한 진정의 고백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의 한량없는 믿음과 은덕은 고령의 명예회장에게 불타는 애국열의와 청춘의 활력을 부어주는 자양분이 되였습니다.

직접 금강산관광준비사업을 주관하며 남과 북을 오고간 정주영의 모습은 당시 남조선언론의 지속적인 특보감으로 되였습니다.

마침내 주체87(1998)년 11월 18일 그처럼 바라고바라던 남녘인민들의 소원을 안고 첫 관광선 《금강》호가 고동을 울리며 동해항을 출발하였습니다.

남녘동포들은 가고싶어도 갈수 없고 오르고싶어도 오를수 없던 금강산, 마음속으로만 그려보던 금강산관광길에 올라 절경의 극치, 민족의 향취를 직접 보고 느끼였습니다.

통일의 꿈을 안고 찾아오는 남녘의 정치인들과 종교인들, 대학생들과 기업인들을 비롯한 각계층의 인파로 금강산은 련일 끓어번졌습니다.

6. 15자주통일시대는 금강산을 민족의 화해와 단합의 상징으로,6. 15통일시대의 《오작교》로 더욱 빛을 뿌리게 한 전성기였습니다.

북과 남의 로동자통일대회, 농민통일대회, 청년학생통일대회를 비롯하여 얼마나 많은 계층별 통일행사들이 이곳에서 열렸습니까.

우리 겨레 누구나 그러하듯이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이 년로한 몸에도 금강산을 사랑하며 거듭 찾은것은 비단 그 아름답고 기묘한 자연의 절경때문만이 아닙니다.

주체89(2000)년 9월 2일 조국의 품에 안긴 첫날 나보다 여섯살이나 우인 74살의 김중종동지가 금강산관광안내원을 시켜달라고 요청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한것도 바로 6. 15시대의 벅찬 숨결이 맥동치는 민족의 명산에서 통일을 구가하는 선도자가 되여 여생을 바치려는 일념에서였습니다.

6. 15공동선언발표기념일을 비롯한 주요계기들에 금강산에서 진행된 민족통일대회들과 각계층 단체들의 상봉모임들은 민족의 혈맥을 뜨겁게 이어주었고 북남상급회담과 적십자회담을 비롯한 대화와 접촉들도 겨레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해주었습니다.

그때 우리 비전향장기수들도 《우리는 하나》의 노래를 합창하며 금강산에 굽이치는 통일의 대하에 합류했습니다.

위대한 장군님의 배려로 금강산탐승길에 올랐던 우리는 온정각에 세워져있는 《김정일국방위원장 금강산방문기념비》도 돌아보았습니다.

《2000. 9. 30

김 정 일

국제관광특구 금강산에서.》


통일된 조국을 상징하여 조선지도모양으로 세워진 독특한 기념비, 그 중심에 활달하게 새겨져 빛을 뿌리는 위인의 친필이였습니다.

그 친필을 우러르나니 력사적인 평양상봉이 열렸던 그해 9월 금강산관광지구를 몸소 찾으시였던 김정일장군님의 절세의 위인상이 숭엄히 어려왔습니다.

현대관계자들과 함께 고성항을 비롯한 여러곳을 돌아보시며 시작이 절반이라는 말이 있는데 현대에서 시작한 금강산관광을 잘 조직해보는것이 좋겠다고 크나큰 특전을 안겨주시고 싱그러운 해풍이 불어오는 배갑판우에서 오찬도 베푸시고 기념사진도 찍어주시며 정과 사랑을 아낌없이 부어주시던 김정일장군님이시였습니다.

현대관계자들은 그때 김정일장군님께서 몸소 남기신 친필을 영원히 전하고저 화강석에 새기여 금강산현지에 기념비로 세웠다고 합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관광사업으로 조국통일성업에 이바지하려는 정주영, 정몽헌, 현정은회장을 비롯한 현대일가의 마음을 소중히 여기시고 그들을 북남경제협력사업의 개척자로 민족과 세계앞에 높이 내세워주시였습니다.

주체90(2001)년 3월 정주영명예회장이 사망하였다는 비보를 받으시였을 때에는 하해같은 은정이 자자구구 어려있는 조전과 함께 민족분렬사상 처음으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조의대표단을 서울에 파견하시여 온 남녘민심을 감동시키시였습니다.

정주영기업인이 단지 한 경제인으로서 생을 마무리했다면 누가 말했듯이 그의 이름은 말그대로 수완좋은 사업가가 돈을 세는 속도만큼 빨리 잊혀졌을지도 모릅니다.

남녘의 동포들은 지금도 《정주영을 잊지 못하고있는것은 그가 김일성주석님, 김정일장군님과 특별한 인연을 맺고 민족통일을 위한 참다운 마지막 인생길을 걸은데 있다.》고 이구동성 말하고있다고 합니다.

주체92(2003)년 2월 군사분계선의 지뢰밭을 헤치고 낸 길로 금강산시범륙로관광이 시작된것은 이렇듯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동포애, 통일의지에 받들려 마련되게 된것입니다.

금강산관광이 시작되여 10년간 민족의 명산 금강산을 관광한 사람만도 근 200만에 달한다고 합니다.

6. 15시대 금강산은 명실공히 북과 남의 통일기운을 고조시키고 화해단합을 이어주는 《오작교》였습니다.

수많은 남녘동포들은 6. 15공동선언이 있어 오늘의 금강산관광길도 있다고 하면서 세계적명산을 가진 조선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안고 통일애국사업에 심혼을 바쳐갈 결의들을 피력하였습니다.

참으로 남조선인민들의 금강산관광은 북과 남의 온 겨레를 통일애국의 넓은 품에 안으시고 남조선인민들에게도 아름다운 금강산을 안겨주어 조선민족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한껏 느끼게 하고 민족대단합과 통일의 길로 이끌어주신 우리 장군님의 뜨거운 겨레사랑이 낳은 빛나는 결정체였습니다.


금강산에 울려퍼지는 통일의 메아리

미국과 남조선보수패당에 의해 금강산관광이 중단된지 10년세월이 흘렀습니다.

흐르는것이 세월이고 지나면 잊혀지는것이 사실이라지만 지금 돌이켜보아도 치솟는 분격을 금할수 없습니다.

관광대가가 《군사비로 전용》되고 《핵과 미싸일개발에 사용되여 미국의 안보를 해친다.》고 훼방을 놀아댄 미국도 그러하고 우리와의 관광사업을 추진하던 남측기업가를 죽음에로 내몰고 《관광객사건》을 조작하여 금강산관광을 끝내 중단케 한 리명박역적패당의 망동을 어느 누가 용납할수 있겠습니까.

해마다 수십만명의 남녘동포들이 금강산으로 물결쳐오가던 그 화폭은 추억으로만 남고 그동안 남조선에서는 관광중단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고 생사기로에 선 기업가들과 주민들의 울분이 차넘쳤습니다.

미국과 남조선보수세력은 아직도 《금강산관광은 북의 돈줄이였다.》고 낡은 레코드판을 돌리듯이 줴쳐대고있습니다.

묻건대 과연 금강산관광을 하고 돌아간 남조선인민들의 가슴속에 자리잡은 조국의 명산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 통일에 대한 열망을 몇푼의 돈잎으로 계산할수 있겠습니까.

당초에 조국애와 민족애가 무엇인지 표상도 없는자들, 오직 당리당략과 부귀영화밖에 모르는 속물들의 치사한 계산법으로는 금강산을 그리워하는 겨레의 마음을 언제가도 헤아릴수 없는것입니다.

지나온 력사는 금강산이 겨레의 만남으로 흥성이면 북남관계도 전진하고 우리 민족끼리의 함성이 메아리칠 때 화해단합도 그만큼 앞당겨졌다는것을 보여주고있습니다.

오늘 우리 민족은 앞날을 락관하고있습니다.

위대한 장군님 그대로이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금강산의 새 력사는 이 땅우에 련련히 이어지고있기때문입니다.

이 세상 그 어느 위인도 따를수 없는 열화의 민족애와 동포애를 천품으로 지니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천만뜻밖에도 민족의 어버이를 잃은 대국상의 나날 조의를 표시하기 위해 불원천리 평양으로 찾아온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일행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시고 위로연까지 차려주시며 다심한 사랑을 부어주시여 온 겨레의 마음을 세차게 울려주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의 서거 3년상을 맞으며 현정은회장이 온갖 성의를 다하여 화환과 조의문을 보내왔을 때에는 친히 자신의 명의로 《정주영, 정몽헌선생들이 민족과 통일을 위한 길에 남긴 애국적소행을 온 겨레는 잊지 않을것입니다.》라는 감사편지까지 보내주신분이 우리의 경애하는 원수님이시였습니다.

정녕 한번 잡으신 손 끝까지 놓지 않으시고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애국의 한길로 이끌어주시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숭고한 믿음과 사랑, 고결한 의리의 세계에 온 민족이 감복하고 매혹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올해 새해의 첫아침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열렬한 민족애와 투철한 통일의지로 심장을 끓이시며 북남관계대전환방침을 엄숙히 천명하시고 대결로 얼어붙었던 북남관계에 화해와 대화의 훈풍을 불러오시였습니다.

뜨거운 포옹력으로 북남관계개선과 조국통일위업의 새로운 전환적국면을 열어나가고계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원대한 구상과 의지에 의해 올해 북남관계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력사적사변과 기적이 마련되게 되였으며 우리 민족은 화해단합과 평화번영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나가는데서 중요한 리정표로 되는 판문점선언과 《9월평양공동선언》을 받아안게 되였습니다.

금강산관광정상화를 추진할데 대한 내용도 들어있는 평양공동선언의 자자구구에서 온 겨레는 남녘동포들을 위해 금강산관광개시의 대용단을 내리시던 위대한 장군님의 존귀하신 영상이 그대로 어려와 격정을 억제할수 없었습니다.

9월북남수뇌상봉때 남측수행원으로 평양에 와서 경애하는 원수님을 뵈온 현대그룹의 현정은회장은 자기의 격동된 심정을 이렇게 터놓았다고 합니다.

… 금강산관광이 시작된지 20년, 중단된지 10년이 넘었지만 북과 남에서 금강산관광이 북남협력의 상징으로 여전히 기억되고 중요하게 여긴다는 사실에 정말 감사했습니다. 북남경제협력의 개척자, 선도자로 내세워주신 당사자로서 북남경제협력에 적극 나설것입니다. 북남간 평화와 공동번영에 작지만 혼신의 힘을 보탤것입니다. …

8천만 온 겨레는 잊지 못할 평양상봉의 나날 백두산천지를 배경으로 굳게 잡으신 두손을 높이 쳐드신 북남수뇌분들의 모습을 우러르며 너도나도 함께 백두령봉에 올랐고 한나산까지 뻗어내린 백두대간의 중심에 우뚝 솟은 금강산일만이천봉우리에도 통일함성이 메아리칠 그날을 가슴벅차게 그려보았습니다.

올해만도 세차례의 력사적인 북남수뇌상봉을 충격과 환희속에 목격하며 누구나 가슴뭉클 느꼈듯이 경애하는 원수님의 마음속에는 분단선이 따로 없으며 그 자애로운 품은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를 안아주는 한없이 따사롭고 넓은 품입니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남녘인민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불신과 대결로 지속된 동토대를 녹이고 판문점에 화창한 봄을 안아오고 풍요한 가을을 안아왔듯이 그 사랑의 손길에 이끌려 금강산에 다시 오르고싶어하는 남녘인민들의 소원도 머지않아 실현될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지금 금강산을 지척에 둔 남강원도 고성지역 주민들은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과 관광관련업체들이 실행될 금강산관광재개에 대비하여 들뜬 마음으로 그 준비사업을 다그치고있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우리 민족을 위해 활짝 열어주신 평화번영의 새시대에 금강산은 온 겨레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통일의 명산으로 나날이 빛을 뿌려가고있기때문입니다.

올해 8월 금강산에서는 8. 15계기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이 지난 시기와는 대비할수 없는 참으로 류다른 감격속에 치르어졌습니다.

3년전인 2015년에만 해도 이제 헤여지면 영영 다시 만날수 없다는 리별의 슬픔으로 눈물에 젖었던 상봉장이 력사적인 판문점선언을 마련해주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에 대한 열화같은 숭배열풍, 민족의 위대한 태양을 모시여 가족, 친척들이 다시 만날 그날이 멀지 않았다는 환희의 열기로 뜨거운 상봉장으로 화하였던것입니다.

얼마전에는 바로 이곳에서 판문점선언과 《9월평양공동선언》리행을 위한 북남민화협련대모임도 성대히 열렸습니다.

수백명의 북과 남의 대표들이 손에 손을 맞잡고 봉우리가 떠나갈듯 하나의 목소리로 통일노래를 불렀고 통일아리랑에 춤가락을 맞추어 하나의 마음으로 세차게 끓어번진 대회장의 광경은 곧 겨레의 통일열망의 축도판이였습니다.

그날에 울려퍼진 우리 민족끼리의 만세소리는 온 삼천리강토를 크게 진감시켰고 8천만의 가슴마다에 화해와 단합, 통일의 열의를 더욱 북돋아주었습니다.

저는 보고있습니다. 아니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가 보고있습니다.

금강산의 만폭동, 구룡연, 비로봉으로 온 겨레가 줄지어 오르고 삼일포와 해금강의 맑은 물에 풍덩 뛰여들며 봉마다 골마다 떠나갈듯 웃고 떠들면서 통일조국의 래일을 그려볼 환희로운 그 광경을 말입니다.

아마도 금강산에서 울려퍼질 화해단합과 통일번영의 메아리는 날이 갈수록 온 강토를 진감할것입니다.

절세위인들을 모시여 명산이 지켜지고 그 빛 또한 찬란한것입니다.

금강산은 위대한 태양의 뜨거운 애국의 열과 밝은 빛발아래 겨레의 통일념원과 의지를 안은 민족의 명산,세계의 명산으로 더욱 빛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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