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나큰 신임, 높은 평가의 상징
주작봉마루에 자리잡고있는 대성산혁명렬사릉은 혁명전사들에 대한 절세위인들의 열렬한 사랑과 혁명적의리의 결정체이며 혁명전사의 삶은 조국과 더불어 영생한다는것을 보여주는 력사의 대기념비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혁명렬사릉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혁명전사들에게 돌려주신 크나큰 신임의 표시이고 선물이며 그들의 투쟁업적에 대한 높은 평가의 상징입니다.》

대성산혁명렬사릉은 항일의 눈보라만리, 혈전만리길에서 먼저 떠나간 혁명투사들과 건당, 건군, 건국을 위하여, 사회주의위업의 승리를 위하여 싸우다 희생된 전우들에 대한 숭고한 의리를 지니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의 발기와 세심한 지도에 의하여 조선로동당창건 30돐을 맞는 주체64(1975)년 10월에 꾸려졌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후에도 대성산혁명렬사릉을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대기념비로 빛내여주시려고 크나큰 로고와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대성산혁명렬사릉을 혁명전사들에 대한 당과 수령의 위대한 사랑의 기념비로, 우리 당의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의 상징으로 더욱 품위있게 완성하실 구상을 안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주체71(1982)년 10월 혁명렬사릉을 개건확장할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러시고는 그해가 다 저물어가던 12월 30일 혁명렬사릉개작사판을 보아주시며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지금의 혁명렬사릉은 종심이 깊지 못하며 협소한 감이 나고 반신상들도 앞뒤간격이 좁아 답답한 감이 난다고 하시면서 지대를 대폭 정리하여 교양마당과 반신상구역을 더 확장하며 릉대문을 조선식으로 잘 세우고 릉으로 올라가는 길도 넓혀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그리고 릉대문의 높이를 가까이에서 보는 효과만 타산하지 말고 먼곳에서 볼 때 릉이 가리우지 않겠는가를 잘 토론해보고 정해야 한다고 전문가들도 생각지 못한 문제들까지 세세히 일깨워주시였다.
이렇게 되여 대성산혁명렬사릉은 조선로동당창건 40돐을 맞는 주체74(1985)년 10월에 훌륭히 개건확장되게 되였다.


대성산혁명렬사릉이 세상에 없는 기념비로 훌륭히 완성되였지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떠나간 전사들에게 못다주신 사랑이 있으신듯 원림조성문제에 이르기까지 깊이 마음쓰시며 금수산의사당(당시)과 저택정원에서 10여년동안 손수 애지중지 키워오신 귀중한 정원수들을 혁명렬사릉에 보내주시였다.
혁명전사들의 위훈과 고결한 넋을 조국청사와 더불어 길이 빛내여주시려는 우리 수령님의 념원은 이토록 절절하고 숭고한것이였다.
하기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께서 항일혁명투사들이 생각날 때마다 금수산의사당(당시)의 전망대에 오르시여 혁명렬사릉을 바라보군 하시였다고, 지난날 수령님을 호위하던 항일혁명투사들이 오늘도 가까이에서 호위하고있으며 수령님께서는 그들의 호위속에서 영생하고계신다고 절절히 교시하시였다.
오늘도 대성산혁명렬사릉은 위대한 수령을 높이 모셔야 혁명전사들의 값높은 삶도, 행복과 영광도 있고 찬란한 미래도 있다는 고귀한 진리를 천만의 심장마다에 깊이 새겨주고있다.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