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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6(2017)년 12월 24일
 

통일은 김정숙어머님의 절절한 념원이였습니다

 

- 허 숙 영 -


우리 인민과 겨레의 마음속에 백두의 녀장군으로 영생하시는 김정숙어머님의 탄생 100돐을 맞게 되니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에게서 들어온 김정숙어머님에 대한 하많은 이야기들이 떠올라 어머님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과 경모의 정이 가슴가득 넘쳐납니다.

항일의 녀성영웅이신 김정숙어머님께서는 해방후 저의 할머니 허정숙을 극진히 보살펴주시며 그가 위대한 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새 조국건설과 나라의 통일을 위해 충실히 일해나가도록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시였습니다.

할머니에게서 전해들은 김정숙녀사에 대한 이야기들가운데서도 류달리 감동깊었던 조국통일의 길에 수놓아진 어머님의 불멸의 헌신을 세상에 전하고싶은 충동을 억제할수가 없어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 ※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습니다.

어머님께서는 늘 조국통일을 먼저 생각하시며 모든 행복을 뒤로 미루시였습니다.

김정숙어머님의 가슴속에는 자나깨나 통일, 통일만이 자리잡고있었습니다.

1946년 1월 정초였습니다.

이날 할머니 허정숙은 위대한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고 저택으로 가게 되였습니다.

댁앞에 이르니 수수한 치마저고리를 입으신분이 조용히 걸어나오시는것이였습니다.

미소를 지으신 환하신 얼굴, 밝은 정기와 그윽한 정이 어려있는 눈길, 강직하면서도 부드러운 감을 주는 단정하신 외모…

그분이 바로 마음속으로 존경하며 언제부터 꼭 만나뵙고싶었던 김정숙어머님이시였습니다.

사실 허정숙은 해방후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뵙고 그이의 귀중한 가르치심과 따뜻한 은정을 받아안은 후로 항일의 녀성영웅이신 김정숙어머님을 만나뵙고싶은 충동을 억제할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령님을 몸가까이에 모시고 일하는 일군들을 만날 때마다 녀사를 만나뵙게 해달라고 떼질하군 했지만 그 당시 어머님께서 함경북도일대에 나가계신것으로 해서 소원을 이루지 못하였었습니다.

비로소 간절한 소망이 성취된 기쁨으로 몸둘바를 몰라하는 그를 다정히 손잡아주신 녀사께서는 오시느라 수고했다고 하시며 방으로 이끄시였습니다.

그의 건강상태부터 물어주신 어머님께서는 일가친척들에 대해 하나하나 물으시며 걱정해주시였습니다.

나라가 해방된 후에도 새 조국건설과 통일위업실현으로 분망하신 수령님의 곁을 떠날수 없어 수십년전에 헤여진 일가친척을 찾으시는것마저 뒤로 미루신 김정숙녀사이시였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서울에 두고온 자기의 혈육들을 걱정해주시는 김정숙녀사의 고결한 인정미에 그는 북받치는 격정을 억제할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날 어머님께서는 그와 오랜 시간 자리를 같이하시고 국내외정세도 알려주시고 조국통일과 관련한 귀중한 가르치심도 주시였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한주일이 멀다하게 녀사를 찾아가 뵙군 하였는데 그때마다 김정숙어머님께서 통일된 조선을 얼마나 절절히 념원하시는가를 페부로 절감하군 하였습니다.

1946년 8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머님께 북조선공산당과 신민당의 합당에서 채택할 강령에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고 토지개혁과 중요산업의 국유화, 남녀평등권 등 제반 민주개혁들과 민주주의시책들을 전조선적으로 실시할데 대한 문제들을 반영하려고 한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그때 어머님께서는 《우리가 산에서 투쟁할 때 전조선을 해방하자고 투쟁했지 나라의 절반땅만 해방하자고 그 고생을 했습니까.》라고 말씀올리시였습니다.

우리 수령님께서 백두밀영의 귀틀집에서 그으신 조국해방작전도의 붉은 화살표는 전조선을 해방하기 위한것이였지 결코 나라의 절반땅만을 해방하기 위한것이 아니였습니다. 우리 어머님께서 밀영의 우등불가에서 녀대원들과 함께 《사향가》부르시며 그려보신것도 해방된 전조선이였습니다. 그런데 그 조선이 외세에 의해 둘로 갈라졌으니 우리 수령님과 우리 어머님의 가슴이 얼마나 쓰리고 아프셨겠습니까.

하기에 어머님께서는 대회를 하나 조직해도 북과 남이 함께 하는 전조선적인 대회로 진행되도록 손잡아 이끌어주시였습니다.

1949년 1월 18일, 녀맹중앙위원회 확대회의에서는 국제민주녀성련맹 제2차대회에 참가하였던 우리 대표단의 활동정형을 총화하면서 국제민주녀성련맹대회정신에 립각하여 북조선민주녀성동맹열성자회의를 소집하는 문제가 토의되였습니다.

당시 녀맹중앙위원회 집행위원회 위원으로 사업하고있던 허정숙을 비롯하여 참가자들모두가 정말 좋은 발기라고 적극 찬성하였지만 녀사께서만은 생각을 달리하시였습니다.

다음날 확대회의진행정형에 대하여 료해하신 어머님께서는 《우리가 북반부의 녀맹열성자들을 모여놓고 국제민주녀성련맹대회사업결과를 알려주며 그들을 자기 맡은 일을 더 잘하도록 추동하는것도 필요한 사업으로 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것은 우리 조국의 남쪽땅을 강점하고 인민들에게 온갖 야수적만행을 감행하고있는 미제침략자들을 즉시 철거시키고 나라의 자주적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투쟁에로 모든 녀성들을 불러일으키는것이라고 봅니다.》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그러시면서 이번 회의를 북반부의 녀성열성자들만 모여놓고 할것이 아니라 남조선녀성대표들도 많이 참가시켜 전국적인 범위에서 진행하는 녀성대회로 되게 하는것이 좋겠다고 가르쳐주시였습니다.

어머님으로부터 이에 대한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의 명칭을 《전조선녀성열성자대회》라고 고쳐주시였습니다.

이렇게 되여 1949년 2월 9일 평양에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분렬사상 처음으로 전조선녀성열성자대회가 성대히 진행되게 되였습니다.

회의에서는 어머님께서 몸소 다듬어 완성시켜주신 호소문 《전조선녀성들에게 고함》이 만장일치로 채택되였습니다.

호소문에 접한 남조선녀성들은 미제강점군의 즉시철거와 리승만괴뢰정부반대투쟁에 용감히 떨쳐나섰습니다. 애국적인 녀성들이 지리산지구를 비롯하여 여러 지역에서 진행되는 인민유격투쟁에 참가하였으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면서도 《김일성장군만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를 불렀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목격하면서 녀맹중앙위원회 일군들은 어머님의 가르치심을 사업의 확고한 지침으로 삼고 일해나갈 결심들을 더 굳게 하였다고 합니다.

김정숙어머님께서는 탁월한 식견과 예리한 분석력으로 내외분렬주의세력들의 흉심을 까밝히시며 동포들을 어버이수령님의 자주통일로선관철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시였습니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3상회의에서는 미국의 《신탁통치》안이 부결되고 조선을 자주독립국가로 재건하기 위하여 쏘, 미, 영, 중 4개국의 5년이내의 후견(협력)제밑에 민주주의림시정부를 수립할데 대한 결정이 채택되였습니다. 이렇게 되자 교활한 미제는 흑백을 전도하여 《조선에 대한 신탁통치위원회가 설치되였다》는 허위보도까지 날조하며 남조선의 친미반동분자들로 《반탁총동원위원회》를 조작하고 《반탁》시위를 벌리게 하였습니다.

놈들의 교활한 책동에 넘어간 일부 학생들은 모스크바3상회의 결정을 반대하는 《동맹휴학》까지 벌리였으며 녀성운동안에 잠입한 불순이색분자들에 의하여 《신탁반대운동》까지 전개되고있었습니다.

허정숙으로부터 이러한 실태를 구체적으로 료해하신 어머님께서는 한몸의 위험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1946년 1월 29일 직접 평양시청년학생들의 강연회에 출연하시여 《신탁반대운동》이 우리 나라를 또다시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로 만들려는 반동들의 음모라는것을 명백한 사례를 들어가시면서 론리정연하게 폭로하시여 사태를 수습하시였습니다.

얼마후 그를 또다시 만나주신 어머님께서는 북조선민주녀성동맹 중앙위원회명의로 모스크바3상회의결정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도록 하시여 온 겨레가 미제의 반탁모략을 반대하는 투쟁에 떨쳐나서도록 하시였습니다.

비단 그뿐이 아니였습니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해방후 남조선의 각계각층은 민족의 태양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려고 물밀듯이 평양으로 찾아왔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수령님의 사업을 보좌해드리시는 그처럼 분망하신 속에서도 그들을 친히 만나주시고 수령님의 자주통일로선과 그를 실천하기 위한 방향과 방도에 이르기까지 세심히 가르쳐주시였습니다.

1946년 2월 하순 어느날이였습니다.

이날 허정숙은 서울에서 온 한 녀성인사와 함께 김정숙녀사를 만나뵙게 되였습니다.

서울에서 온 녀성인사는 녀사께 남조선의 녀성단체에는 중간파들이 조직한 녀성단체, 종교계통의 녀성단체, 지어는 리승만괴뢰도당의 어용단체까지 있으며 저마다 문맹퇴치와 미신타파가 급선무라고 하는가 하면 녀성운동은 녀성옹호와 아동보호가 기본이라고 역설하고있는데 도무지 갈피를 잡을수 없다고 말씀올리였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다 듣고나신 어머님께서는 물론 문맹퇴치와 미신타파도 필요하다, 그러나 현시기 남조선녀성동맹앞에 나서는 기본과업은 미군정의 기만정책과 리승만, 김성수매국도당의 반동적책동을 폭로단죄하고 통일적인 민주주의정부를 하루빨리 세우는것이라고 일일이 가르쳐주시였습니다.

어머님의 말씀을 전달받은 그는 무릎을 치면서 《앞길이 확 트입니다.》라고 환성을 올렸습니다.

어머님께서는 그와 헤여지기에 앞서 남조선녀성들이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압박밑에 사는것을 숙명으로 생각지 말고 일어나 싸워야 한다는 사상적각오를 가지도록 하는것이 중요하다고 다시금 강조하시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새 조국건설구상과 겨레의 자주독립국가건설지향이 반영되여있는 우리의 국호와 국기, 국장에도 김정숙어머님의 불멸의 로고가 깃들어있습니다.

1948년 봄 당시 북조선인민위원회 선전국장이였던 허정숙은 국기, 국장도안창작사업이 잘 진척되지 않아 고심하던끝에 녀사의 가르치심을 받으려고 댁으로 찾아갔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장군님께서는 공화국기가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하여 싸운 투사들이 흘린 붉은 피와 당의 두리에 뭉친 우리의 혁명력량을 상징하는 붉은색을 기본바탕으로 하며 우리 인민의 기백을 상징하는 표시와 미래의 승리를 상징하는 오각별은 반드시 넣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하시면서 국기와 국장도안창작에서 나서는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습니다.

이어 어머님께서는 우리의 국장과 국기가 북조선인민들뿐아니라 남조선인민들까지 모두 접수될수 있게 장군님의 새 조국건설에 대한 원대한 구상과 방침이 잘 반영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하시였습니다.

일부 종파분자들이 국장과 국기초안을 두고 시비질할 때에도 어머님께서는 그를 단호히 일축해버리시며 해당 부문 일군들과 여러차례 자리를 같이하시고 훌륭히 완성해주시였습니다.

백두의 녀장군 김정숙어머님께서는 뜨거운 인덕으로 우리 겨레를 민족대단결의 기치아래 굳게 묶어세워 통일애국의 한길로 이끌어주시였습니다.

1946년 7월 22일,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민주주의 정당, 사회단체대표자회의를 소집하시고 정당, 사회단체들의 상설적인 협의기관인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위원회를 창설하시였는데 회의에서 허정숙은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위원회 위원으로 선거되였습니다.

이 일을 두고 누구보다 기뻐하신분은 김정숙어머님이시였습니다.

바쁘신 시간을 내시여 일부러 허정숙을 만나주신 어머님께서는 동무가 민전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거되였으니 사업이 더 바쁘게 되였다고 하시면서 장군님의 의도를 받들고 어떻게 하나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하나로 굳게 묶어세워 통일적인 민주주의중앙정부수립을 위한 투쟁에로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절절히 당부하시였습니다.

사상과 정견, 신앙의 차이를 초월하여 온 겨레를 수령님의 두리에 굳게 묶어세워 민족대단결로 조국통일을 이룩해야 한다는것이 어머님의 뜻이였습니다.

1948년 봄 어느날이였습니다.

이날 김정숙어머님께서는 당시 남북련석회의 조직준비위원회 서기장사업을 맡고있던 허정숙을 저택으로 불러주시였습니다.

련석회의준비때문에 우리 서기장동무가 몹시 바쁜 모양이라고 하시며 그를 따뜻이 맞아주신 어머님께서는 회의준비실태를 구체적으로 료해하시였습니다.

참가인원수에 대해 하나하나 물으시던 어머님께서는 련석회의에 참가할 남조선녀성들의 수가 왜 이렇게 적은가고 하시며 련석회의에 참가하겠다고 신청한 녀성단체대표들은 다 들어오게 하는것이 좋겠다고 가르쳐주시였습니다.

어머님의 말씀대로 그는 남조선녀성단체대표들과의 사업계획을 작성하여 어버이수령님께 보고올리였습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민주녀성동맹을 비롯한 남조선의 녀성단체들에서 많은 대표들이 이번 련석회의에 참가하는것은 좋은 일이라고 하시며 그들이 이번에 평양에 왔다가면 새 조국건설로 들끓는 북조선의 현실도 알고 온 민족이 힘을 단합하여 조국을 하루빨리 통일하자는 우리 인민들의 절절한 념원도 몸으로 느껴 새로운 결심밑에 더 잘 싸워나가게 될것이라고 못내 만족해하시였습니다.

우리의 정성이 담겨진 초청장을 받아본 남조선의 녀성단체대표들은 기뻐하면서도 38°선을 넘어가는 일때문에 몹시 우려하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때 어머님께서는 10여명의 남조선민주녀성동맹 대표들끼리만 산발적으로 길을 떠나오려고 하지 말고 김구일행과 기자들이 떠날무렵에 녀성대표들도 함께 출발하도록 대책을 세워주시였습니다.

어머님의 명안에 허정숙은 탄복하였습니다. 미국놈들이 김구나 각 신문, 통신사의 취재기자들은 감히 다치지 못할것이였습니다.

녀성대표전원이 무사히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으신 어머님께서는 허정숙에게 그들에게 조선옷을 해입자고 하시며 그 조직사업까지 친히 해주시였습니다.

밤새 전투를 하여 만든 20여벌의 조선옷을 입고 력사적인 민족대회합인 련석회의장소로 들어서는 그들의 얼굴마다에는 기쁨의 미소가 한껏 어려있었습니다.

련석회의기간 남측의 대표들을 만나주시고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던 어머님께서는 4월 29일 남조선민주녀성동맹대표들도 친히 만나주시였습니다.

대표들이 남조선에 가서 해야 할 사업과 관련하여 가르치심을 주실것을 정중히 제의하자 어머님께서는 장군님께서 보고에서 하신 말씀을 지침으로 삼고 싸우면 될것이라고 하시며 사양하시였습니다.

녀성대표들이 또다시 정중히 청을 드리자 어머님께서는 생각한바를 이야기하겠다고 하시며 이번 련석회의의 기본사상은 조국분렬의 위기에 처한 이 엄중한 시기에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우려하는 모든 사람들이 당파와 종교의 소속, 정견의 차이를 가리지 말고 하나로 단결하여 일대 구국투쟁을 벌리자는것이라고 하시면서 더 많은 녀성들을 묶어세워 반미, 자주통일을 벌리며 당면해서는 《단독선거》, 《단독정부》수립책동을 파탄시키는데 투쟁의 화살을 집중해야 할것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시였습니다.

어머님께서는 그들만이 아닌 정치적립장이 중간세력에 속하는 자주녀성동맹대표들도 따로 만나주시고 자주녀성동맹은 중간층 녀성들을 더 많이 자기 대렬에 망라시키면서 남조선민주녀성동맹과 공동보조를 취하여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을 벌려나가야 한다고 활동방향까지 일일이 가르쳐주시였습니다.

언제나 통일만을 마음속에 안고사신 어머님께서는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에도 불편하신 몸이시였건만 나라의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데 심혼을 바치시였습니다.

1949년 9월 20일이였습니다.

이날 허정숙은 어머님의 부르심을 받고 저택으로 가게 되였습니다.

이무렵 어머님께서는 새 조국건설의 중하를 한몸에 안으시고 불면불휴의 활동을 벌리고계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사업을 보좌해드리는 바쁘신 가운데서 우리 녀성운동을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손잡아 이끌어주시느라 참으로 힘겨워하시였습니다.

잠시라도 쉬실것을 바라는 허정숙의 간절한 청을 굳이 사양하신 어머님께서는 그에게 녀맹중앙위원회 이름으로 내보내는 일본반동들을 단죄하는 항의문준비정형을 알아보시였습니다.

당시 일본반동들은 재일조선인련맹과 재일조선민주청년동맹을 강제로 해산시키고 재일동포들을 박해하고있었습니다.

이것은 조국통일의 주체적력량인 해외동포단체들에 대한 말살행위로서 도저히 용납할수 없는 일이였습니다.

일본반동들에 대한 적개심으로 분을 삭이지 못하시던 어머님께서는 허정숙을 부르시여 항의문초안을 작성할데 대한 과업을 미리 주시였던것입니다.

다 완성되였다는 대답을 들으신 어머님께서는 자신께서 보아주시겠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그가 어머님의 건강이 념려되여 중앙녀맹일군들과 책임적으로 완성하겠다고 대답올리자 어머님께서는 《내 몸에 대해서는 너무 걱정마세요. 산에서 싸울 때부터 버릇이 붙어놔서 그런지 나에겐 일이 곧 휴식입니다.》라고 하시며 문건을 받아보시고 초안의 부족점을 하나하나 바로잡아 완성시켜주시였습니다.

이어 어머님께서는 장군님의 결론을 받아 항의문을 빨리 내보내야 하겠다면서 필요한 대책까지 세워주시였습니다.

이렇게 되여 그날로 북조선민주녀성동맹 중앙위원회 항의문이 통신과 방송으로 일제히 보도되게 되였으며 각국에서는 일본반동들의 책동을 단죄하는 목소리가 세차게 울려퍼지게 되였습니다.

외세에 의해 국토가 갈라진 때로부터 70여년, 그 갈피에는 통일을 위한 길에 삶을 빛내인 녀성들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김정숙어머님처럼 하나가 된 삼천리강토를 절절히 념원하시며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통일을 위해 자신의 온넋을 초불처럼 불태우신 녀성혁명가는 없었습니다.

하기에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우리 어머님처럼 조국통일을 바라신분은 흔치 않을것이라고, 항일투사들이 찾아와 이제는 백두산시절과는 달리 령토도 있고 주권도 있는데 옷 한벌쯤이야 왜 못 해입으시겠느냐고 간절히 말씀올릴 때에도 통일이 되여 모든 겨레가 다같이 잘 입고 잘살 때 우리도 비단옷을 입고 잘살아보자고 타이르시였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던것입니다.

항일의 녀성영웅이신 김정숙녀사는 바로 이런분이시였습니다.

어버이수령님과 어머님의 념원인 조국통일을 기어이 이룩하는것을 자신의 필생의 사명으로 간직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국과 인민의 운명, 사회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선군혁명령도의 장정을 이어가시는 속에서도 통일을 늘 가슴속에 품고 사시였으며 력사적인 6. 15공동선언과 10. 4선언을 발표하시여 자주통일의 새시대를 열어주시였습니다.

우리 수령님과 어머님의 념원, 우리 장군님의 소원이였던 조국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성스러운 위업을 오늘은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원수님께서 진두에서 이끌고계십니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뜻과 유훈대로 민족자주, 민족대단결로 기어이 나라의 통일을 이룩하시려는것은 경애하는 원수님의팀없는 신념이고 의지입니다.

우리 민족이 맞이한 또 한분의 천출명장이신 김정은원수님을 조국통일의 찬란한 구성으로 높이 모시여 이 땅 삼천리강토에는 위대한 수령님들과 김정숙어머님의 념원이 꽃핀 주체의 통일강국이 반드시 일떠서리라고 온 겨레는 굳게 확신하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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