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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내가 본 두 제도》에서

 

인권천국과 인권지옥

 

정 규 진

 

인권이란 사회적존재로서의 사람이 응당 가져야 할 권리를 말한다. 다시말하면 정치, 경제, 문화, 도덕 등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을 누리기 위하여 마땅히 가져야 할 권리인것이다.

북에서는 이러한 인간의 권리가 철저히 보장되고있다.

이북의 인민들은 나라의 주인이 되여 국가관리에 적극 참가하고 성별과 직업, 재산과 지식정도, 정견과 신앙에 관계없이 선거할 권리와 선거받을 권리를 행사하고있다.

나는 20대의 세계마라손녀왕 정성옥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 되고 세계유술3중녀왕 계순희가 평양시인민회의 대의원이 된 사실을 통하여 이북에서는 누구나 다 맡은 일을 잘하면 대의원으로도 될수 있고 국가간부로도 될수 있다는것을 깨닫게 되였다.

북에서는 또한 모든 사람들이 언론, 출판, 집회, 시위를 비롯한 온갖 사회정치활동의 자유와 권리도 마음껏 행사하고있다.

특히 공화국의 인민들은 국가로부터 로동과 휴식의 권리를 보장받으며 누구나 자기의 희망과 능력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고 안정된 일자리에서 마음껏 일할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있다. 그러니 북에서는 일자리가 없어 헤매는 실업자가 없으며 류랑걸식자도 없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의거입북한 초기에 아무리 평등한 사회라 하더라도 실업자와 거지가 없겠는가고 하여 제눈으로 확인해보고싶었었다.

하여 나는 보통강려관으로부터 가까운 곳에 있는 신서다리와 지하철도에 흥미를 가지고 가보았다.

그런데 신서다리밑에서는 실업자, 거지는커녕 낚시군들이 잉어, 붕어, 메기 등을 연방 낚아내고있었으며 많은 로인들이 주패와 장기놀이를 하고있었다. 웅장하게 꾸려진 지하철도에는 밝은 인상을 한 사람들이 퇴근길에 오르고있었을뿐이였다.

로숙자가 있는가 하여 밤에는 공원이나 평양역대합실에도 가보았으나 내가 찾아보려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공화국에서는 모든 근로자들이 8시간 일하고 퇴근하며 일요일에는 문화정서생활도 하면서 즐겁게 휴식을 하고있다.

그들은 또한 년에 꼭꼭 유급휴가제의 혜택을 받아 가정에서나 각지에 훌륭히 꾸려진 휴양소, 정양소들에서 문화적휴식을 즐기고있다.

녀성들은 남자와 꼭같은 사회적권리와 보수를 받고있으며 산전산후의 휴가혜택도 받고있다.

특히 3명이상의 어린애를 가진 녀성들은 하루에 6시간을 일하고도 8시간에 해당하는 보수를 받고있다.

공화국인민들은 또한 전반적11년제의무교육제, 무상치료제의 혜택을 받으며 아무런 근심걱정없이 살아가고있다.

인민적인 사회보장제도에 의하여 로동재해자, 늙은이 등 로동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에게도 국가적인 혜택이 차례지고있다.

특히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복무하던 영예군인들에 대한 국가적인 배려와 사회적인 관심은 대단한것이다.

우선 그들을 부르는 이름자체가 긍지로웠다.

이남에서는 《상이군인》이라고 천하게 부르는데 북에서는 《영예군인》이라고 존중해 부르고있다. 존경과 천시의 이름 자체가 벌써 시책의 반영이라는것을 알수 있게 한다.

영예군인들은 직업도 주택도 생활조건도 다 우선적으로 보장받는다.

편의봉사망, 교통운수수단 등의 리용에서도 우선권을 보장받는다.

처녀, 총각들이 영예군인들과 일생을 같이하는것을 하나의 의리로 여기고 그들의 손발이 되여 같이 살아가고있다.

영예군인들은 혁명의 꽃은 계속 피여야 한다는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높이 받들고 자기 맡은 초소에서 뜨거운 애국심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고있다.

나는 얼마전 통일거리에 있는 영예군인수지일용품공장을 찾아가본 일이 있다.

공장주변을 보니 공원과 같았으며 공장안은 궁전과 같았다.

그들은 해마다 년간계획을 넘쳐 수행하고있었으며 군중문화사업과 대중체육도 활발히 벌리면서 락천적으로 생활하고있었다.

나는 영예군인들의 이러한 행복넘치는 생활을 보면서 이남 상이군인들의 불우한 처지를 생각하게 되였다.

이남에서는 상이군인들을 돌봐주는데가 없다. 어느 직장에서나 그들을 받아주지 않고있다.

결혼에서도 차별을 당하고있다.

그러니 그들은 자연히 범죄의 길로 굴러떨어지고있다.

내가 포천군에서 중학교 교장을 하고있을 때였다.

포천에서 미장원을 하는 누이가 찾아와 상이군인들의 행패때문에 심장이 활랑활랑해서 못살겠다고 하면서 그 사연을 말하는것이였다.

그들은 떼를 지어 다니면서 쇠갈구리로 손을 만들어 얼굴을 향해 위협하면서 돈을 내놓으라고, 안내놓으면 집안을 모조리 들부시겠다고 위협하면서 끝내 돈을 받고서야 가는데 하루에도 몇번씩 오며 또 그 다음날에도 계속 온다는것이다. 그 바람에 머리단장하러 왔던 손님들이 다 도망치고 이제는 혼자 영업하는 자기에게는 손님들이 오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누이와 함께 24km 떨어진 누이네 집으로 달려가보았다.

가보니 모든 사실이 다 옳았다.

아니나다를가 왼쪽팔이 없는 한 상이군인이 한쪽손에 쇠갈구리를 들고 나타나 누이더러 돈을 내라고 강박해댔다. 내가 옆에서 왜 이러는가고 말렸더니 그는 너희들때문에 이렇게 팔병신이 되였는데 응당 돈을 줘야 할것이 아닌가, 어디에서도 돌봐주는데가 없지, 팔병신이라고 취직도 안시켜주지, 처자식들을 먹여살려야 하는데 앉아죽느니보다 이렇게 해서라도 살아야 할것이 아닌가고 땅땅 큰소리치는것이였다. 그래서 내가 그러면 경찰서에 같이 가자고 위협했더니 그는 오히려 백번이라도 가자고 하면서 한수 더 뜨는것이였다.

할수없이 나는 혼자서 그길로 경찰서에 가 신고했다. 그랬더니 경찰서에서 하는 말이 그 사람들을 경찰서에 데리고 와봐야 골치만 아프지 그들을 달래는 방법이 없다, 적당히 돈을 줘서 돌려보내는수밖에 없다는것이다.

이와 같이 범행을 막아나서야 할 경찰까지도 피해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정도이니 그들의 범행이 그칠 날이 없는것이다. 그래 하는수없이 또 500원을 줘서 돌려보냈다.

하도 어이없어 피우지 않던 담배를 꼬나물고있는데 또 머리를 빡빡 깎고 색안경을 낀 상이군인이 쌍지팽이를 짚고 찾아와 같은 방법으로 행패질을 하는것이였다. 그래서 내가 조금전에 상이군인이 왔다갔는데 다음에 오라고 하였더니 그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쌍지팽이를 휘둘러대며 출입문의 큰 유리창을 들부시였다. 내가 화김에 《왜 이러는가.》고 했더니 이번에는 그놈의 쌍지팽이가 내 머리우로 날아드는것이였다. 나는 벼락같이 날아드는 쌍지팽이를 피하면서 이자가 대구의 살인소굴에서 닥치는대로 재물을 빼앗고 사람들을 마구 죽이는 그 《막가파》의 패당이 아닌가 하는 공포감도 생겨 도무지 어찌할바를 몰랐다.

할수없이 또 적당한 돈을 주어 가까스로 돌려보냈다.

이것이 바로 이남 상이군인들의 실상이다.

누이는 더이상 영업을 할수가 없어 문을 닫아매고 영업을 중지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우에서 보는바와 같이 북에서는 성별, 년령, 직업, 계급, 계층, 지식정도 등에 관계없이 국가로부터 똑같은 정치적권리와 물질적혜택을 받고있다.

이북인민들이야말로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인권천국에서 부럼없이 살고있다.

그러면 이남의 인권상황은 과연 어떠한가.

돈이 판을 치는 이남에서는 돈이 곧 인권이다.

돈만 있으면 모든 권리를 다 누릴수 있지만 돈이 없으면 모든 권리를 다 박탈당한다.

우선 돈없는 절대다수 민중은 선거받을 권리를 빼앗기고있으며 오직 착취와 억압의 대상으로만 되고있다.

또한 이남에서는 악명높은 《보안법》과 《련좌제법》을 비롯한 수많은 악법들에 의하여 인권을 무참히 유린당하고있다.

1967년에 해병대에서 제대된 나는 처음에 공무원이 되여보겠다고 친구와 함께 공무원시험에 응시하였다. 그런데 친구는 나보다 시험도 잘 치지 못하고 몸도 건강하지 못한편인데도 합격되였는데 나에게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하도 답답해 경기도경찰국에 찾아갔댔는데 신원조회중이니 가서 기다리라는것이였다. 한달이 되여도 무소식, 두달이 되여도 무소식, 1년이 되여도 아무런 기별이 없었다. 나는 창피도 하고 분하기도 하여 도경찰국에 아는 선배를 찾아가 알아보았더니 그는 이런 말을 해서는 안될 일이지만 하면서 《련좌제법》에 해당되여 불합격이 되였으니 앞으로도 취직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것이였다. 나는 그때에야 우리 형제와 친척모두가 취직을 못하고있는 리유를 알게 되였다. 지어 조카까지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으로 취직하려고 하였으나 역시 이 《법》에 걸려 거부당하게 되였다.

취직할 길이 막혀 고민하고있는 나에게 어머니는 눈물을 머금고 《그놈의 〈련좌제법〉이 원쑤로구나. 이모때문에 온 집안이 이렇게 천대를 받고있으니 이 어미가 자식들 볼 면목이 없구나. 이제는 별수가 없으니 너도 형들처럼 장사를 하면서 살아가려무나.》고 하는것이였다.

이남에서 인권은 또한 《국정원》을 비롯한 파쑈적인 폭압기구에 의해서도 참혹히 유린당하고있다.

도처에 《국정원》의 정보망이 그물처럼 뒤덮여있어 그 어디에서나 속마음을 터놓고 말할수가 없다.

말 한마디때문에 숱한 사람들이 밥을 먹다가 잡혀가고 일하다가 끌려가며 길가다가 쇠고랑을 채우고 잠자다가 붙잡혀가 갖은 고초를 당하고 처형당하고있다.

《대통령》을 한바 있는 김대중도 지난 1973년에 일본 도꾜의 한 호텔에서 대낮에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의하여 검은 자루속에 묶이워 랍치당하여 서울 지하감방에 끌려왔던 사실은 그의 한 대표적실례이다.

《국정원》의 정보, 모략, 사찰기능은 날이 갈수록 확대강화되고 1차폭력수단인 경찰의 력량과 탄압수법은 비상히 강화되였다.

내가 의거하기 전 3년동안에만 해도 인민들의 투쟁을 탄압하기 위해 출동시킨 경찰수는 연 1 232만여명이고 발사한 최루탄은 무려 71만 6 000여발로서 그 절대량에 있어서 세계적인 기록을 보여주었다.

시위자들에 대한 야만적인 최루탄발사로도 부족하여 최근에는 물대포까지 쏘아대는 비인간적행위도 서슴지 않고있다.

경찰패거리들은 공공연히 《새로 나온 물대포는 아주 평화적인 시위진압장비이다. 처음 경고할 때는 곡사로 쏘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직사로 갈겨야 한다.》고 떠벌여댔다.

하여 몇해전에 경찰청은 초불집회참가자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할것을 명령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에 얻어맞아 고막과 장파렬을 일으키는 등 커다란 참사가 빚어졌었다.

당시 참상이 얼마나 처참하였으면 현장에 있던 한 시위진압경찰까지도 《시위대 바로 머리우에서 직접 내리꽂는 살수는 그야말로 살풍경이여서 우리 경찰들이 보기에도 소름끼쳤다.》고 실토했겠는가.

이남에서는 또한 체포구금한 사람들에 대한 비인간적, 반인륜적고문과 처형이 세계적기록을 내고있다.

5 000여명을 수용하는 세계최대규모의 서울구치소를 비롯하여 600여개이상의 감옥들에서 무고한 애국자들과 인민들이 야만적인 고문과 학대에 신음하다가 죽어가고있다.

내가 군대에 복무하던 1965년에도 기합의 종류가 48가지였는데 그해말에 미국에서 12가지를 더 수입하여 무려 60가지나 되였다.

나와 같이 훈련소에서 생활하던 동기생 300명중에서 비인간적인 고문에 못이겨 자살한 사람이 2명, 바다로 헤염쳐 도망가다가 물에 빠져죽은 사람이 2명, 철조망을 뚫고 도망치다가 총에 맞아죽은 사람이 3명 등 7명이나 되였다.

나도 군대에서 비인간적학대를 당한 사실을 생각하면 구역질이 날 지경이다.

내가 신병훈련을 받은 곳은 남해가 진해였다. 훈련은 12주일동안 받았는데 말이 훈련이지 실지는 훈련보다 기합을 더 많이 받았었다.

훈련기간에 면회는 단 한번뿐이였다.

그날 허기진 배에다 온종일 먹어놓으니 배가 편안할리 없었다.

밤이 되니 변소에 들락날락하는 바람에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그런데 새벽 5시에 기합비상이 내려졌다.

운동장에 나간 순서대로 서면서 번호를 크게 부르는데 나는 10번째였다.

훈련생 300명중에서 10번째이면 비교적 빠른셈이였다.

족제비얼굴에 서슬푸른 기상을 한 직일관놈이 화단과 벽에 대소변을 본 놈이 있겠는데 대렬앞으로 나서라고 호통을 쳤다. 변소가 하두 멀리 있으니 누가 도중에 본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두세번 고아대도 당사자는 나올리 만무했다. 그놈은 《그러면 좋다. 너희들중에서 한짓이니 너희들이 공동으로 치워야 하겠다.》고 하면서 늦게 나온 꼴찌부터 대변을 찍어 혀에 바른 뒤 저뒤에 가 서라는것이였다.

하여 세상에 없는 비인간적인 기합이 시작되였다.

10번째로 나온 나는 290번째로 당하게 되였다. 내앞으로 289명이 찍어먹었는데 웃부분만 약간 없어졌을뿐이였다. 나도 살짝 찍어 혀에다 발랐다. 300명이 한바퀴 돌았는데도 별로 없어지지 않은것을 본 족제비상의 직일관놈은 《모두 엎드려 뻗쳣.》하더니 이번에는 곡괭이자루로 엉덩짝을 한대씩 후려치는 기합을 들이대는것이였다. 다시 2회전이 시작되였다. 련이어 3회전, 4회전…

대변을 다 치우고난 다음에 우리는 또다시 소변을 치우는 기합을 받게 되였다.

소변은 납작 엎드려 혀로 핥아먹으라는것이였다. 하는수없이 300명이 다 달라붙어 한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핥아버렸다. 인간의 탈을 쓰고는 도저히 상상할수 없는 이런 비인도적인권유린행위가 공공연히 벌어지고있는 사회, 이것이 바로 이남의 인권상황인것이다.

내가 의거입북할 때까지에만도 사회에 알려진 고문종류는 전기고문, 비행기고문, 뱀고문, 고추가루고문, 칭기스한고문, 통닭구이고문, 손톱, 발톱뽑기고문, 잠안재우기, 약물투입, 물고문, 거짓말탐지기적용, 성고문, 불빛고문 등이 있었고 그외 알려지지 않은 고문도 수십종이나 되였다. 나의 처남도 이런 고문의 피해자였다.

그때 저의 처남이 집을 나간지 한주일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아 기다리고있었는데 8일째 되는 날 밤 12시에 얼굴이 백지장이 되여 우리 집에 나타났다.

나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그동안 어데 갔다가 왔는가고 물었더니 그는 말을 잘하지 못하고있었다.

나는 그냥 자라고 하고 아침에 일어나 이야기를 들으려고 깨웠는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계속 자기만 하였다. 그는 만 이틀동안을 자고나서야 일어나 내가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꼭 미친 사람처럼 말하는것이였다.

내가 차근차근 물어보았더니 그제야 정신을 가다듬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처남이 뻐스를 타고 가다가 서울과 경기도의 분기점에 있는 도봉검문소에서 검문을 받게 되였다. 이 검문소는 중앙정보부, 기무사, 헌병, 경찰들의 합동검문소이다. 순경이 뻐스에 올라와 주민등록증을 보자고 해 집에 두고 왔다고 했더니 내리라고 했다. 처남은 할수없이 뻐스에서 내려 그 순경을 따라 검문소지하실로 들어갔다.

캄캄한 계단을 내려가는데 솜털이 일고 바람부는 소리도 나 혹시 여기서 죽는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는것이였다.

그가 한참 끌고가는대로 가서 의자를 주길래 앉았었다. 순간에 불이 퍽 켜지더니 앞에는 귀신처럼 분장한 중앙정보부 수사관놈이 떡 앉아있었고 불은 껌벅껌벅하는데 밑을 보니 독사같은 뱀들이 왔다갔다하고있었다.

(아이쿠, 이젠 죽었구나.) 하고 생각하고있는데 수사관놈이 고향이 어딘가, 몇살인가, 왜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가, 너 혹시 간첩이 아닌가고 하면서 계속 따지더라는것이다.

그래서 처남이 아니라고 했더니 수사관놈은 좀더 조사할것이 있다고 하면서 그 방에서 있으라는것이였다. 밥은 하루에 한끼밖에 안주는데 밤에 자려고 하니 뱀이 욱실거려 도무지 잘수가 없었다.

게다가 옆방에서는 비명소리가 터지는데 그러한 방이 몇개인지는 몰라도 여기저기서 사람 살리라는 소리가 들려오더라는것이다. 처남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의자에 앉아있는데 수사관놈과 웃통을 벗어제낀 두놈이 나타나 《어데로 가려고 했는가.》고 하면서 때리고 짓밟고 하더라는것이다. 이러기를 며칠이 지났는지 모른다. 해빛이 스며들지 않는 캄캄한 방에서 하루에 한끼로 겨우 목숨을 이어가는데 한번은 의자에 바줄을 얽어매놓고 몽둥이로 비틀어대는 고문도 받았고 고추가루물을 코안에 부어넣는 고문도 받았으며 지어 어떤 날에는 콩크리트바닥에 빤쯔만 입고 누운 알몸에 뱀들을 올려놓고 득실거리게 하는 뱀고문도 받았었다.

한것은 처남이 군대에 있을 때 혹독한 기합에 못이겨 탈영하다 붙잡혀 3년간 감옥살이를 한적이 있었는데 제나름대로 무기를 가지고 월북하려고 하지 않았는가고 하여 이런 비인간적인 고문을 들이댄 모양이였다.

나는 처남의 말을 듣고 소스라쳐졌다. 처남은 가혹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정신병자가 되였고 2년동안 병원에서 숱한 돈을 들이며 치료받다가 끝내 죽고말았다.

특히 이남의 인권유린은 생존권과 로동의 권리를 박탈당하고있는데서 찾아볼수 있다. 이남에서는 로동할 나이가 되여도 직장에 들어갈수 없으며 로동자들은 14∼16시간의 로동을 강요당하고있다.

최근에 발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통계년보에 의하면 2006년 기준으로 이남근로자의 년평균 근로시간은 2 357시간으로서 기구의 30개 회원국의 년평균 근로시간보다 근 4배나 더 길다고 한다.

나는 1970년 10월 중학교 교장으로 있을 때 학생들을 데리고 서울 중구 청계천에 있는 평화시장의 피복공장에 견학을 간바 있다.

5∼6평이 되나마나한 좁은 방들에서 10여명의 녀성로동자들이 앞을 볼수 없을 정도의 뽀얀 먼지속에서 옷을 만들고있었다. 머리와 눈섭에는 먼지로 덮여 함박눈이 내린것 같고 련속 맞물려 돌아가는 일감에 파묻혀 휴식도 없이 16∼20시간의 로동을 강요당하고있었다.

내가 돌아온 후 한달도 못되여 이 공장 로동자 전태일이 《로동시간단축》, 《주휴제실시》, 《다락방철페》, 《환풍기설치》, 《임금인상》, 《로동조건개선》 등의 구호를 웨치며 투쟁하다가 당국에 항거하여 분신자살하였다.

이남의 로동자들은 휴식할 권리도 유린당하고있다.

이남에서는 유급휴가제, 휴양제, 정양제, 료양제 등이 없을뿐만아니라 일요일휴식제도 없는 형편이다.

나는 지난해 1월 주간잡지 《한겨레21》에 실린 기사를 보고 로동조건이 1970년대 평화시장 피복공장의 실태와 같다고 생각했다.

한 로동자는 자기가 당한 육체적, 정신적고통을 이렇게 토로했다.

《밥먹는 시간 20분외에 쉬는 시간이 없는 곳이였다. 한번 해보면 진짜 눈물난다. 작업 첫날에 있은 일이였다. 비지땀을 흘리며 일하던 나는 은근히 점심시간이 기다려졌다. 이 기대가 헛된짓이라는것은 얼마 못 가 알게 되였다. 그 이후 일이 더 지독했다. 밥먹고 3∼4분정도 될가말가한 때 <시작합시다.>라는 작업구령이 또 떨어졌다. 그야말로 먹는 시간까지 포함해 20분정도에 불과했다. 말이 점심시간이였다. 또 휴식시간이기도 했다.

시작구령과 함께 또다시 작업에 내몰려 쉴새 없이 돌아쳤다. 하루작업이 끝나니 발을 옮겨놓을 기력조차 잃었다. 이렇게 짬시간조차 없는 로동강도는 하루하루 나의 맥을 쭉 뽑아놓았다. 허약해지는것이 내스스로가 느낄 정도였다. 날이 갈수록 피기없어지는 나의 모습을 회사측이 가만있을리 만무했다. 그러던 어느날 마침내 해고장이 내앞에 떨어지고말았다.》

특히 녀성들의 인권은 더욱 참혹하게 유린당하고있다.

력대로 진행된 《국회》의원선거에서 당선된 녀성들이 얼마 안되는데다가 주요관리직 녀성공무원도 전체 공무원의 몇%밖에 안되는 사실을 통해서도 그것을 잘 알수있다.

2008년 《세계경제포럼》이 세계적으로 이남의 남녀평등순위가 108위에 불과하다고 폭로한것은 이남녀성들의 사회적처지가 얼마나 한심한가 하는것을 그대로 실증해주고있다.

이남출판물들도 《이남은 녀성차별의 표본지대》, 《손상되는 녀성존엄》 등의 제목으로 사회적지위와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있는 녀성들의 처지를 개탄하는 글들을 련이어 싣고있다.

이남에서는 녀성들이 취업에서도 차별을 당하고있으며 설사 일자리를 가지고있다 하더라도 로동시간도 남성근로자들보다 하루평균 1∼2시간 더 길며 작업조건이나 환경도 남성들보다 형편없이 나쁜 상태에 있다.

그러면서도 직업녀성들의 평균임금은 남성의 70%밖에 안되여 경제협력개발기구에 속한 나라들중에서 성별에 따르는 임금격차가 제일 크다고 한다.

날로 심화되는 경제위기로 실업문제가 커다란 사회적문제로 나서고있는데 그 첫번째 희생자가 바로 녀성들이다.

2009년 1월에만도 녀성일자리 8만 4 000개가 줄어들었는데 그것은 남성일자리 1만 7 000개 줄어든것과 비교하면 4배가 넘고있다.

자료를 보면 4월까지 녀성들의 일자리가 55만여개나 줄어들었으며 특히 2009년 5월에 줄어든 일자리 21만 9 000개중 녀성들의 일자리가 21만 1 000여개나 되였다. 해고당한 녀성들의 대다수는 20, 30대이며 그 주되는 리유는 임신 및 해산때문이였다.

가뜩이나 살아가기 힘든 판에 일자리마저 떼울가봐 우려하는 녀성들이 아이낳는것을 극력 피하다보니 녀성들의 평균 해산률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자리를 차지하고있다.

이와 관련하여 신문 《한겨레》는 《현재와 같은 낮은 출생률이 지속되면 2100년에 가서 이남인구는 현재의 3분의 1로 감소될것》이라고 우려하면서 《녀성들의 해산포기현상은 이남사회의 곳곳에 뿌리내린 녀성차별적구조에서 나오는 필연적인 현상》이라고 개탄하였다.

2008년 11월 유엔인구기구기금과 인구보건복지협회가 발표한 《세계보건통계 2009》는 이남에서 녀성 1인당 평균 출생률은 1. 2명으로서 193개 나라가운데서 최하위라고 하였다.

그에 대해 《동아일보》는 《낮은 출생률이 국가적재앙이 될것이라는 경고음이 높아지고있다. 치렬한 입시경쟁, 취업경쟁에 아이를 내몰고싶지 않다는 생각이 아예 아이를 낳지 않도록 만든다.》고 하면서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않고있는 당국을 비난하였다.

이남에서는 산전산후휴가제도가 없으며 아이를 가진 산모는 즉시에 퇴직을 당해야 한다. 녀성들은 이북처럼 탁아소, 유치원의 혜택도 받지 못하고있다.

녀성들의 처지가 날로 악화되는 속에 많은 녀성들이 리혼하거나 혼자 사는 세대수가 계속 늘어나고있다.

2008년말에 1만 800명의 녀성들이 리혼하였는데 이것은 전해보다 1 100명이나 늘어난것으로 된다.

2008년에 녀성들이 혼자 사는 세대수는 전체 세대수의 20. 1%에 달하였으며 이들중 60%가 가족부양과 자녀양육때문에 생활이 곤난하여 최하층으로 전락하였다.

녀성들은 또한 강간, 살인 등 갖가지 범죄의 대상으로 인권을 참혹히 유린당하고있으며 목숨까지 빼앗기고있다.

2008년에 녀성들을 살해한 범죄는 2005년에 비해 3. 2%로 증가하였다. 오죽했으면 경제협력개발기구까지 이남을 《녀성치안위험지대》라고 락인했겠는가.

하기에 살아갈 길이 막힌 녀성들속에서 자살하는 현상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있다.

2008년에 녀성들의 자살률은 전해에 비하여 13%나 증가하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의 《2009년통계년보》에 의하면 이 기구에 속한 나라와 지역들가운데서 2007년을 기준으로 이남녀성들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11. 1명으로 가장 높았다.

정치적으로 무권리하고 경제적으로 불안한 속에서 사는 이남사회에서는 인간의 권리란 찾아볼수 없다.

하기에 2008년 7월 국제인권운동단체 엠네스티는 이남의 인권상황을 조사하고 《인권의 불모지》라고 락인하였으며 국제대사령 사무총장은 《세계에서 인권이 가장 혹심하게 유린되고있는 곳이 바로 남조선》이라고 비난하였고 세계의 여론은 《인권지옥》, 《인권유린의 왕국》이라고 규탄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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