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받은 나의 삶
《조국과 인민의 운명은
언제인가 국제경기에 참가하였던 나는 지난 시기 레스링종목에서 패권자였던 이전 사회주의나라의 한 선수가 돈에 팔려 다른 나라의 국기를 가슴에 달고 경기에 나선것을 목격하게 되였다.
경기가 끝난 후 나는 그 선수와 조용히 마주앉게 되였는데 그는 나의 앞가슴에 새겨진 공화국기발을 바라보며 이런 말을
어머니가 있을 때에는 그 귀중함을 미처 모르지만 어머니를 잃고서야 비로소 때늦은 후회를 하는 불효자식들이 있다. 나를 비롯하여 사회주의를 버린 우리가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이제는 국제경기에 참가하려고 해도 남의 나라 기발을 달고서야
그때 나는 조국의 귀중함과 함께 우리의 삶을 지켜주고 빛내여주는 어머니당에 대한 고마움을 한껏 느끼게 되였다.
돌이켜보면 평범한 소년에 불과하였던 내가 2중올림픽우승자, 인민체육인으로 성장하고 오늘은 나라의 레스링종목기술발전을 책임진 일군으로까지 자라나게 된것은 어머니당의 품을 떠나서 생각조차 할수 없는것이다.
당에서는 내가 돈 한푼 내지 않고 훌륭한 체육시설과 훈련조건이 갖추어진 청소년체육학교에서 마음껏 체육기술을 익히도록 해주었고 그후에는 소원대로 전문체육단에 보내주었다.
압록강체육단 레스링선수로 된 내가 처음으로 국제경기에 출전한것은 2년후였다.
세계청소년레스링선수권대회와 세계자유형레스링선수권대회를 비롯한 국제경기들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둔 나는 1992년
자유형레스링 48㎏급경기에 출전한 나는 맞다든 상대들을 모두 이기고 결승경기에 진출하게 되였다. 여기서 내가 맞다든
경기장에 나선 나는 가슴에 새겨진 공화국기발을 새겨보며 이렇게 생각하였다.
- 내 기어이 금메달을 쟁취하여 우리의 공화국기발을 세계의 하늘가에 높이 휘날리리라.
경기시작 10초만에 불의적인 공격으로 먼저 점수를 올린 나는 주도권을 쥐고 련속적인 공격을 들이대여 4:1의 성적으로
그때 나는 공화국기발을 우러르며
내
그후 제26차 올림픽경기대회 자유형레스링 48㎏급경기에서 또다시 금메달을 쟁취한 나는 인생의 모든 영광과 행복을 다 받아안게 되였다.
그 사랑, 그 믿음에 보답하기 위하여 나는 나라의 레스링종목기술을 더욱 발전시켜나가는데
로력영웅 인민체육인 김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