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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6(2017)년 9월 18일
 

한 녀성의 체험담을 듣고

 

얼마전 평양산원 유선종양연구소를 찾았던 나는 수만리 이역땅에서 불치의 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생사기로에서 헤매이던 한 평범한 녀성이 조국의 품에 안겨 소생의 기쁨을 되찾은 감동깊은 이야기를 듣게 되였다.

그의 치료를 맡았던 유선병연구실 실장 김순애는 나에게 그 녀성이 겪은 체험담의 일부를 전해주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의 참다운 우월성은 국가가 인민의 생명과 건강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돌보는 인민적인 보건제도에서 뚜렷이 나타나고있습니다.》

두해전 겨울이였다.

김순애실장은 해외출장중 불치의 병으로 하여 조국으로 돌아온 서영옥환자의 병력서를 보게 되였다.

조국을 멀리 떠나 위중한 병까지 앓았으니 마음고생인들 오죽했으랴.

그는 서영옥녀성에게 수술전후의 상세한 과정을 물었다.

서영옥녀성이 위중한 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은것은 그해 7월이였다고 한다.

간단한 진찰을 받는데만도 많은 돈을 물어야 하는 자본주의나라에서 수술을 받는다는것은 사실 간단한것이 아니였다.

병원측이 요구한 수술비는 너무도 엄청났다. 그것을 내놓고도 수술을 위해 필요한 각종 검진과 검사, 진찰 등 이런저런 명목의 치료비는 굴러가는 눈덩이마냥 불어났다.

병원에서는 약 한알 거저 주는것이 없었다. 결국 약처방도 병원의 돈벌이수단이였다.

그의 마음은 병에 대한 걱정보다도 치료비걱정에 더 시달렸다.

얼마후 그는 수술을 받게 되였다. 그런데 수술후 병상태는 점점 악화되여갔다.

바로 이러한 때 평범한 공민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한 조국의 은정깊은 조치로 그는 수만리 이역땅에서 돌아오게 되였고 평양산원 유선종양연구소로 오게 되였던것이다.

최신식의료설비들이 그쯘히 갖추어진 연구소에서 그는 의료일군들의 뜨거운 정성속에 수술을 성과적으로 받고 한달만에는 완쾌된 몸으로 병원문을 나서게 되였다. …






- 현대적인 평양산원 유선종양연구소 -


이야기를 마치며 김순애실장은 나에게 하나의 사실을 덧붙여 말하였다.

《퇴원하는 날 그가 나직이 노래를 부르던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조국찬가〉였습니다. 그가 부르는 노래소리를 듣느라니 우리 인민이 자기들이 받아안는 무상치료제의 고마움을 과연 얼마나 알가 하는 생각에 눈굽이 젖어들더군요.》

복속에서 복을 모른다는 말이 있듯이 늘 자기들의 곁에서 물과 공기마냥 흐르는 사회주의보건제도의 고마운 혜택을 어찌 다 헤아릴수 있으랴.

이처럼 훌륭한 사회주의제도에서 사는 우리 인민이야말로 행운아들이다.

김 복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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